아프간 선교사의 두 번째 편지
아프간 선교사의 두 번째 편지
  • ○○○ 선교사
  • 승인 2007.08.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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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회의 회개에서 이 사태의 해법을 찾자

   
 
  ▲ 이번 사태는 파수튠족의 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지 못한 인솔자들의 판단 착오, 지방으로 이동하기엔 많은 인원으로 인해 쉽게 노출된 것, 전년에 비해 악화된 지역 치안 상태와 이를 감안하지 못한 준비의 결여 등이 총체적으로 결부 되어 벌어진 것이다. (알 자지라 방송 갈무리)  
 
피랍 26일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탈레반의 협상 전략에 말려든 한국 정부는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잘 되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언론은 남북정상회담 문제로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고, 교회들도 점점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지난 며칠 동안 많은 분들과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랍자들을 지척에 둔 상태에서 일종의 자책감으로 고통당하는 심경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이곳의 여러 사역자들에게 동일하게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사태는 이곳 사역자들에게, 피랍자들에게 그리고 조국 교회에게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조차 모를 난감하고 어려운 문제로 다가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매일 아침 동료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로 나아가면서 이번 사태를 하나 둘 정리해봤다. 먼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생각해본다.

이동하기엔 인원이 너무 많았다

보통 단기팀을 구성할 때 현지 사역자와의 의사소통을 통해 적정 인원을 선정하게 된다. 인원 선정에는 보통 단기팀의 사역 성격, 현지의 조건 등이 참작된다. 현지의 지방간 주요 운송 수단은 8인승 미니버스와 택시, 대형 버스 등이다. 이동 수단과 인원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쉽게 눈에 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인솔자들 입장에서는 모 교회에서 단기팀이 온다는데 ‘이동 중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니 인원을 줄여달라’고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인솔자들이 속한 단체는 여러 차례 대규모 인원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 정도 인원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아프간 남부지방을 이동하는 경우, 20명이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숫자다. 대형 버스 외에는 대안이 없기 마련이다. 일부 비난하는 목소리 중에 이용했던 차가 고급 대형 버스라서 문제가 됐다고 비난하는 것을 읽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눈에 쉽게 띄는 인원 규모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숙지하지 못했다

카불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다는 것이다. 카불-칸다하르 노선은 보통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400Km에 달하는 이 노선은 어느 한 곳도 안전지대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카불 쪽으로는 가즈니가, 칸다하르 쪽으로는 자불이 위험지역에 속한다. 또 이 팀은 카불에서 11시 즈음 출발해서 지방 경찰력이 부실한 1~2시 사이에 가즈니 지역을 지나갔다. 낮에는 무더운 날씨로 인해 아프간 경찰이 제대로 순찰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물론 늦게 출발한다고 반드시 사고가 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선은 금년 봄부터 치안이 악화되면서 현지인들도 탈레반들에게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던 까닭에 누구나 위험부담을 가지고 다녀야했던 길이었다.

   
 
  ▲ 타종족에 비해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파슈튠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아프간의 가장 큰 종족임에도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한국인 사역자들이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저 열악한 곳에서 살아남는 것에 만족하고 이런 악조건에서 사역자로 있는 것에 정체성을 두지는 않았나 하는 때늦은 자성을 할 뿐이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파수튠 족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

‘중간 정차’가 중요한 악재로 작용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 참 지나 <뉴스위크>에 이 팀이 가즈니-카라바흐 지역의 작은 시장에 위치한 식당에서 30여 분간 정차한 기사가 실렸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지역 주민들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번 사태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 제공이 되었을 것이다.
 
언론에는 민소매 차림이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이 카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문 한국 식당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범한 한국의 여름옷에 여자들은 치마와 스카프를 착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평범한 옷이다. 즉 팔의 일부분이 나온 여름옷 등이 이 지역에선 문제였던 것이다. 아프간의 북부 지역이라면 큰 문제없이 끝날 수 있는 것이지만 아프간 제1 종족이면서 남부의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파슈튠 지역에서 이런 복장하고 다닌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파슈툰 지역에서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 한인 비상대책위 미팅에서도 이 부분은 강하게 지적이 되었던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파수튠족의 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지 못한 인솔자들의 판단 착오, 지방으로 이동하기엔 많은 인원으로 인해 쉽게 노출된 것, 전년에 비해 악화된 지역 치안 상태와 이를 감안하지 못한 준비의 결여 등이 총체적으로 결부 되어 벌어진 것이 이번 피랍사건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대비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동안 아프간을 다녀간 많은 팀과 이곳의 사역자들의 다수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이 땅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타종족에 비해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파슈튠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아프간의 가장 큰 종족임에도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한국인 사역자들이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저 열악한 곳에서 살아남는 것에 만족하고 이런 악조건에서 사역자로 있는 것에 정체성을 두지는 않았나 하는 때늦은 자성을 할 뿐이다. 

피랍 관련 단체들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아쉬움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이후 관련 단체들의 반응에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샘물교회는 담임목사가 한국 교회를 향해 두 번의 기도 부탁을 하면서 사과 성명까지 발표했지만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가지 못했다. 인질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이해하지만, 이번 팀은 선교사가 아닌 봉사팀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샘물교회에서 말하고자 했던 진실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기독교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드려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간 국민들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갔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으로 나갔냐고 책망하시지만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곳이기에 나갔고 앞으로도 나갈 것입니다. 예수 사랑의 빚진 심정을 아는 자라면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다만 이런 지역에서 직접적인 복음 전파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그저 말씀에 바탕을 둔 사랑의 실천으로 내용들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복음 전파만을 선교라고 생각한다면 이 팀은 단기선교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폭넓게 선교의 범주에 넣는다면 이 팀은 분명 단기선교팀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안위를 생각하여 자극적인 표현에는 자중을 부탁드립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다. 특히 선교의 역사는 그렇다. 17~19세기 아프리카로 갔던 선교사들은 여행기간을 포함하여 1년 안에 50% 넘는 선교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 순교와 고난의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날 아프리카에도 복음의 진보라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는 것이다. 어디 아프리카뿐이랴. 세계 기독교 역사에는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의 영성이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팀은 분명 단기팀이다. 안전을 고려하여 봉사팀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기독교 역사를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초청장을 발급하여 비자 발급을 도운 한민족복지재단에 대해서다. 아프간의 문이 열리면서 한민족재단본부는 초기에 이런 저런 투자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난 2년 동안 본부는 이곳 지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곳 회원들이 없는 살림에도 십시일반으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지부를 운영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본부는 이곳을 자신들의 활동 지역이라고 알리고 다녔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본부 책임자는 이곳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는 샘물교회 측도 마찬가지다. 한민족복지재단이란 단체야 일반 비정부기구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되지만 책임자 되는 분이 기독교인이라면 (목사라고 알고 있다) 먼저 그동안의 아프간 지부를 향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정직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굳이 이름을 언급을 하지 않아도 아시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모 단체의 대표는 한국의 대표적인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번 사태의 3명의 인솔자가 자기 단체 사람들임을 방송 전에 인정했으면서 방송에 들어가자마자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 단체장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어디 그 단체만의 문제이랴. 작년에 그 단체의 주장에 1,000여 개의 조국 교회가 동참해 빚어낸 몰상식한 행동(대행진)에 대해 어느 교회 하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겁쟁이 아프간 선교사들”이라며 조롱하던 그 많은 조국 교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런 그들에게 도덕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기대일까?  
            
해법은 조국 교회의 진정한 회개로부터

   
 
  ▲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을 조국 교회의 회개로부터 찾았으면 한다. 순간적인 회개가 아닌 지속적인 회개로 말이다. 그래서 빛과 소금을 좀 보여 달라고 아우성치는 수많은 비난이,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로 바뀌는 그 순간까지 경주를 하기 바란다. (사진 제공 양국주)  
 
무엇을 더 말해야 하나…. 부끄럽게도 한국 기독교계는 너 나 할 것 없이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갖가지 변명과 거짓과 위선으로 무장되어 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성경의 가르침을 판단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고난을 피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거짓을 경계하고 진실할 것을 명하고 있다.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목적을 위해 과정이 생략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샘물팀과 한국 교회가 받는 현재의 고난은 주와 복음을 위한 고난이요 핍박임과 동시에 부끄러운 행적에 대한 대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또한 깨달아 가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는 아주 일부에서, 그것도 그 정당성에 의구심이 있는 몇몇 분이 앞장서서 한국 선교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것으로만 대안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는…. 위험한데는 가지 않겠다는 지극히 비성경적인 논리로 너도나도 지상명령을 생매장하고 있다.

평양 부흥 100주년 행사에 앞 다투어 단상에 오르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 갔는가? 그 부흥 100주년을 진실로 기념하고 다시 부흥이 오기를 원한다면 오늘 진정한 회개와 무릎 꿇음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그런 움직임은 아무런 곳에서도 감지되지 않는가?

이번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조국 교회의 회개로부터 그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순간적인 회개가 아닌 지속적인 회개로 말이다. 그래서 빛과 소금을 좀 보여 달라고 아우성치는 수많은 비난이,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로 바뀌는 그 순간까지 경주를 하기 바란다.

그 지난한 고난과 참회의 길을 위해 지금도 21인은 고난의 길을 가고 있고, 아프간 사역자들은 한국 정부의 강제출국 명령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장막의 짐을 싸고 있다. 만약 조국 교회와 해당자들의 참회가 없이 넘어간다면, 그리고 예수 십자가의 도와 능력을 교회와 단체와 개인이 자기의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성경은 그들에게 이런 말로 준엄한 심판을 대신하고 있다.

“만약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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