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선교활동, 사라지는 선교
넘쳐나는 선교활동, 사라지는 선교
  • 김동문
  • 승인 2007.08.31 0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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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없는 열정은 파괴다…이슬람 이해 부족이 핵심

주저함과 망설임 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을 잘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 이번 아프간 인질 사건을 두고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해왔다. 나 또한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써야할 것 같은 의무감과 사명감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침묵’을 선택하여야 했다. 고 김선일 씨 사건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이른바 지역 전문가들, 이슬람 전문가들도 분주했다. 그러나 탁상공론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답답했다. 이른바 기독교계의 이슬람 전문가들이 언론과 미디어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이었다. ‘우리들만의 전문가’로 취급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한국 교회의, 한국 교회에 의한, 한국 교회의 선교'가 이뤄지는 측면도 많았다.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선교를 마무리하여야 한다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뒤엉켜지곤 했다.  
 
우리들만의 전문가

이 글은 이번 사건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사건 보도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슈들 중 교훈을 삼아야할 것 같은 몇 가지 소재를 다루고자 한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안티 기독교인들이나 일반 누리꾼들이 토해내는 ‘개독교’ ‘악플’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악플러들의 마음 바닥에 깔려있는 반기독교 정서의 상당 부분은 나와 우리들, 기독교인들이 이제껏 보여준 어떤 말과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의 해외선교에 얽힌 악플러들의 비판이나 한국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도 적지 않았다.

2년 전 홍성사에서 <이슬람 신화 깨기 무슬림 바로 알기>를 펴냈다. 책 편집 과정에 스스로 삭제한 꼭지들도 적지 않았다. 민감할 수도 있고, 이른바 ‘덕’을 위하여 알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한 몫 했다. 얼마 전 두바이에서 다른 이슬람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그는 이 책의 뒷부분에 민감한 내용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후배의 지적은 책에 담은 내용들이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들을 전달해줄 것 같다는 비판을 담고 있었다.

우리들만의 이슈

“그곳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언론 관계자나 이 지역 밖의 주변 분들로부터 종종 받았다. 종종 한국 언론에 이슬람 지역 곳곳에서 탈레반을 비판하고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성명서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사실 중동 지역 언론에 아프간 한국인 인질 납치 이슈는 크게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아프간 한국인 인질 관련 뉴스는 이 지역 언론들의 ‘이슈’가 되지 못했다. 관심을 끄는 사안도 아니었다. 가까이 지내는 이라크 교인들은 물론이고 이곳의 언론 관계자들에게서도 이번 이슈에 대한 관심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스라엘 점령 지역 곳곳의 유혈 충돌 뉴스와 이라크에서 이어지는 테러 소식이 이 지역 언론을 채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한국군이 이곳에 있나요?” 한국군 파병을 다수의 이라크인들이나 레바논인들이 모르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이 근본적 원인

얼마 전 이곳 한국 대사관에서 공문을 받았다. 물론 이곳의 한국인들 모두에게 전달된 이메일이었다. 철수를 권고하는 이메일이었다. 이곳 요르단만의 일 같지 않았다. 이곳에서 이달 말에 갖기로 한 중동 지역 한인 선교사들의 모임도 진지한 토론 끝에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아프간 현지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그곳의 한인들 모두가(정부 파견 요원들을 제외한다면) 그 땅을 떠나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 사역자도 있고, 정말 훌륭한 한인들도 그들 가운데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는 안타까움과 아픔이 그들에게 있다.

어디서부터 이번 문제를 봐야할 것인가? A단체의 책임자인 B선교사(이 분은 직함이 너무 많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모든 것이 수습될 것도 아니다. 언론에 의해 몰매를 맞고 있는 C 교회나 D목사님이 짊어져야 할 것도 아니다. 파병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아니면 C교회 단기팀이 아프가니스탄을 간 것을 탓할 수만도 없다. 또 아니면 한국 교회의 저돌적인 이슬람 권 선교로 인해 반기독교 정서가 퍼졌다고 주장하는 한국 정부나 언론의 은근한 책임 전가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외형상의 여러 이유보다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지 못한 이슬람권이나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지식과 지혜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선교 열정은 죄가 아니다. 칭찬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열정을 아름답게 발휘되도록 하는 것은 그들을 동원해내고 돕는 단체의 몫이다. 협력 단체는 이들의 열정에 건전한 지식과 지혜로 무장시켜 줘야 한다. 지식 없는 열정의 파괴성은 대단하다. 그 파괴력을 제거하고 선한 지식과 지혜로 무장함으로 그것이 문명 충돌이나 기독교 과업성취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넘쳐나는 선교활동 사라지는 선교

고 김선일 씨 사건 당시에도 그랬지만 다시금 한국 기독교가 세계 유수 언론에 특집 면을 장식하였다. 부러움 가득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비판의 시선이 가득했다. 기사의 논조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판의 중심에는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독교로 비난을 받는 일이 늘어나는 와중에도 한국 교회의 이른바 해외선교는 해마다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선교사도 증가했고, 선교 지역도 넓어졌다.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 인원이나 횟수도 많아졌다. 복음의 능력의 충만해지는 것의 한 결과로 한국 선교가 확장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선교활동은 증가했지만 선교 정신은 퇴색되고 약해졌다는 생각을 현장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선교 열기는 ‘한국 교회의 선교가 식으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없다’는 다급한 심정으로 선교 동원을 하고 선교 현장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손길들은 절박해보였다. 선교 대국의 자리를, 그 축복을 중국 교회나 필리핀 교회에 내주어서도 안 된다는 선교 운동가들의 위기감도 그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 교회의, 한국 교회에 의한, 한국 교회의 선교’가 이뤄지는 측면도 많았다.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선교를 마무리하여야 한다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뒤엉켜지곤 했다.

   
 
  ▲ 탈레반은 명분이야 어찌되었든 미국을 몰아내고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집권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을 종교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탈레반은 정치적 집단일 뿐

탈레반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인질을 확보하려고 애를 써왔다. 인질 확보의 목적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 거기에 종교적인 이유는 없었다. 종교적인 명분을 내걸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허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사건으로 오해하고 그 전제에 맞춰 사건 해결을 모색해왔다.

정부는 아프간 정부의 요청에 다른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 언론과 피랍자 가족들과 교회 관계자들에게 종교 활동이나 선교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도록 요청했다. 피랍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조언에 따라 피랍자 관련자들은 단기선교나 선교활동을 애써 부인하고 나서야 했다. 이것을 두고 말 바꾸기니 비겁한 행동이나 하는 악플러나 일반 누리꾼들이나 시민들로부터 공격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한국 언론은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자처하며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절대적 근본 원칙으로 삼아 왔다고 주장한다. 한술 더 떠서 탈레반이 ‘여성 포로 보호’라는 이슬람 전통을 끝까지 준수할지 주목된다는 토까지 달기도 했다. 여성 보호 전통을 언급하면서, 탈레반이 남성을 먼저 살해한 이유는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 포로는 절대로 살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식의 해석까지 내놓았다.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 같은 언론 보도는 마치 탈레반이 이슬람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애를 쓰는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탈레반 정권이 전 세계 이슬람권에서 유례없이 여성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억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슬람권에서 반미 투쟁과 정권 쟁취를 위하여 무장 투쟁을 하고 있는 무장 투쟁 조직들의 목표는 명분이야 어찌되었든 미국을 몰아내고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집권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을 종교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글을 맺으면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이다. 선교의 열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성취하는 과업이 아니다.

* 이 글은 <복음과상황>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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