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 우리는 누구인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우리는 누구인가?
  • 박경환
  • 승인 2007.09.08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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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뛰어넘어

답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일일지 모릅니다. 이제부터 풀어나갈 재외 한인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그 정답을 모르는 주제입니다. 앞으로 더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이 주제는 근대에 이르러 나타난 특유한 일이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무엇보다 너무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있는 주제 자체의 성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부터 역사, 언어,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교육, 가정, 종교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주제들은 독립적으로 연구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나라, 시기, 배경, 사람들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한 사람, 한 가정, 한 집단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스스로 이민을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픈 과거의 역사적인 이유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독립국연합, 중국 등지로 흩어져야 했던 고려인과 중국 동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과 일본 정부의 모호한 정책들로 어느 곳에서부터도 외교보호권이 없는 무국적 상태에 놓여 있는 재일 한인들, 심지어는 절대적인 생존 자체가 절박한 화두인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우리와 같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입니다.

프로젝트의 목적과 얼개

총 3번에 걸쳐 이어지는 이번 특집 기사의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독자들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생각은 해보았지만 쫓기는 삶에 관심 둘 여유가 없었거나,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 가운데 있거나, 관심도 있고 노력도 기울여보았지만 얻은 것이 없어서 실망했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디아스포라로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이 질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도입과 함께 코리안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전반적인 현황, 디아스포라와 관련한 간략한 역사, 이민 사회와 한국 사회의 현실, 재미 한인의 위치와 시대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야기, 그리고 더욱 깊이 있게 재미 한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 번째는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 개인, 민족, 국가에 대한 이야기, 이 시대와 디아스포라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맺겠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일반 현황과 간추린 역사

재외동포재단의 2005년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6,638,338로 약 700만 명에 이릅니다. 이는 남북한을 합한 인구의 1/10에 달하는 것으로, 절대적인 숫자로는 5,500만 중국인, 1,000만 유대인보다는 적지만 미국, 캐나다, 일본,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퍼져있어 흩어져 있는 국가의 수로는 가장 많습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참 놀라운 일이지요.

보통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이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간 자체만으로 볼 때에 다른 민족들에 비해서 짧습니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식 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시기는 1860년대부터 국권 침탈이 일어난 1910년까지입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농민이나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떠나 생존을 위한 이주였습니다. 1902~1903년에 있었던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주도 이 시기에 속합니다.

두 번째 시기는 1910년부터 한국이 일본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1945년까지입니다. 이때에는 일제의 억압을 피해 만주와 일본으로 피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난민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외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일본이 식민 통치 기간 만주지역 개발이나, 광산, 전쟁터로 끌려가는 일로 한인들의 대규모 집단 이주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1945년부터 남한 정부가 이민 정책을 처음으로 수립한 1962년까지 입니다. 이 시기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입양, 유학 등의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떠났습니다.

네 번째 시기는 1962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입니다. 이 시기부터는 정착을 목적으로 한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국내의 과잉 인구분산과 외화를 버는 것이 그 목적이었지만, 동시에 이 시기부터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한인이 새로운 신분상승의 기회를 찾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정점으로 이민이 감소하였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각 시대에 각각 다른 이유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이동한 사람들, 이주 동기, 상황적 정황들이 모두 다르므로, 각 거주사회에서 적응하는 방식과 과정 또한 다르고 부딪히는 문제들의 양상도 다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기사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정체성의 고민이 필요 없었던 한국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모국인 한국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도 늘 다른 나라에 막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섬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와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연스레 다른 민족과의 교류나 이동이 드물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한 땅에서 한 민족이 한 언어와 한 문화로 살았던 우리나라는 다민족이 어우러져 살아야 했던 나라들과는 달리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있는 모두가 다 한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 나라는 한 민족으로 구성된다는 생각, 즉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한국인이라는 것이죠.

   
 
   
 
단일민족의 신화와 진실

여기에 큰 몫을 하는 것이 바로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입니다.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노래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릴 때부터 노래도 부르고 공교육을 거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신화는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단일민족 신화는 식민 통치를 막 벗어난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를 거칠 때, 국민을 통합시키려는 정치적인 의도로 더욱 강조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약한 국가로 식민 통치를 받았으니 강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 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힘들고 어려워도 참으라는 정치적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역사적 논리로 사용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민족이 유전적으로 북방계(동북아시아) 유전자 60%와 남방계(동남아시아) 유전자 40%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단일민족의 신화는 과학적으로 허상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게 믿어왔던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뿌리, 즉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것처럼 다가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듯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일민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거나 우리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 저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이것이 민족의 소중한 유산을 한꺼번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허상과 거짓을 벗어버렸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되고 바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신화가 빚어낸 부조리 - "당신들의 대한민국"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됩니다. 2006년 SBS에서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단일민족의 나라 -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는 단일민족 신화가 현대의 한국을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흑인 여성,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와 그들의 2세들. 귀화를 해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 놀라울 만큼 유창한 한국어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 문화와 역사를 잘 알고 한국을 사랑해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신화는 백인 우호주의라는 반대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와 백인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상반되는 반응을 비교해서 보여주는데, 피부가 하얀 백인은 우대하고 피부가 검은 동남아인이나 흑인은 박대하는 것이 우리 단일민족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줄어드는 한국인, 늘어나는 외국인

이 와중에서 한국 사회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이젠 한국은 활발한 세계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면서 서울대 보건학과 조영태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추세가 지속할 경우 산술적으로 2800년에 지구상의 마지막 한국인이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외국인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다름 아닌 시골입니다. 현재 시골에서는 10명 중 4명이 외국인 며느리를 맞고 있는데, 농촌에 여자가 없어서 총각들이 국제결혼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올해 5월 1일을 기준으로 작년보다 34.7%가 증가한 72만 2,68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렇듯 한국이 아직 단일민족 신화의 허구에 갇혀 그것이 빚어내는 부조리들을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등을 통해 한국 내 외국인이 증가하는 국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아직도 옛날의 감옥에 갇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 민족이 가진 소중한 유산을 부끄럽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의 필요와 재미 한인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곧 머지않은 미래에 이와 같은 일련의 문제들이 수면으로 드러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기존의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이 시대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안적인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열쇠는 어쩌면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정체성의 고찰에 대한 책임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먼저 디아스포라 자신의 필요입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한국인으로서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나라라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정체성처럼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거나 묻혀 갈 수 있는 것들이 디아스포라들에게는 삶에 직접 관련된 일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디아스포라의 처지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떠났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를 알게 되는 경험처럼, 직접 다른 세계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면서 얻은 디아스포라 삶의 체험들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풍부한 자원들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재미 한인들은 디아스포라 중에서 수적으로 크고,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풍족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즉 재미 한인들은 강한 자의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한다면 이 과제에 대한 일종의 시대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력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70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이 일은 분명히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박경환 기자 / <코넷>

* 이 글은 <미주뉴스앤조이>와 기사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코넷>의 창간 1주년 기념 특집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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