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이란 골리앗에 물맷돌 던지는 아시아계 젊은이들
헐리웃이란 골리앗에 물맷돌 던지는 아시아계 젊은이들
  • 박지호
  • 승인 2007.10.11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헐리웃에서 아시안 보기 힘든 이유?…결국은 '돈'이다

   
 
  ▲ 대만계 미국인 저스틴 린 감독. 그는 돈이 지배하는 헐리웃의 상업 논리에 반기를 들고, 아시아계 영화라는 미개척 영역을 일궈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왜 아시안들로 구성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느냐. 아무도 안 볼 것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배우들을 백인들로 바꾸면, 200만 불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상업과 예술이 충돌하는 현실 앞에 직면해야 했다. 그래서 난 영화를 만들 때 후원금을 모으는 대신 신용카드 10장을 만들었다. 빚이 몇 십만 불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결국 우리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어냈고, 성공을 거뒀다.” (저스틴 린 감독)

괴상한 기합 소리와 현란한 무술 실력으로 악당을 때려눕히는 액션 배우. 악센트 심한 영어를 쓰며 돈만 밝히는 델리 가게 주인. 차이나타운 밤거리를 누비며 총질을 해대는 갱들. 공부 잘하고 착하지만 여자에게 외면당하는 안쓰러운 모범생. 헐리웃에 등장하는 아시안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그래서 헐리웃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인종차별? 문제는 ‘돈’이다

   
 
  ▲ <Better Luck Tomorrow>는 착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아시안 청소년들의 전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해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는 정체성 혼돈과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저예산 독립영화다.  
 
하지만 헐리웃은 영화 제작사들이 음흉한 정치적인 의도로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곳이라기보다 상업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물론 헐리웃 초기에는 백인을 정의의 화신으로, 유색 인종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돈이었다. 브레드 피트나 톰 크루즈 같은 배우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에 고용하는 것이다.

대만계 미국인 저스틴 린 감독은 이런 헐리웃의 상업 논리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최초의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인 <Better Luck Tomorrow>라는 영화를 만들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영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개봉 3주 만에 200만 불을 벌어들여 작품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그가 이번에 새로 제작한 <Finishing The Game> 영화 홍보를 위해 뉴욕을 찾았다. 저스틴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한국계 미국인 배우 성 강, 중국계 미국인 배우 라저 팬 등도 동행했다. 3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성 강은 저스틴 감독이 만든 <Better Luck Tomorrow>와 <The Fast And The Furious3 - Tokyo Drift>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고 최근에는 <Die Hard 4>에도 출연했다. 라저 팬도 저스틴 감독의 <Annapolis>와 <Finishing The Game>에 출연했다.

저스틴 감독은 동양인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헐리웃은 어떤 영화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사들이 동양인들을 차별하려고 공모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업을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비중 있는 소비자라는 것이 입증되고, 우리 자신을(아시안을)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고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당나귀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 한 해에 10편 이상도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헐리웃 제작사들이 모험하려고 사업하는 것이 아니기에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아시안에게 다면적인 역할을 맡기려면 그런 역할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 제작사들의 귀엔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백인 혹은 흑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 강도 저스틴 감독의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헐리웃은 공평을 지향하는 집단이 아니지 않나. 할리웃은 돈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어떤 에이전트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니가 어떤 인종이든지 상관없다. 돈만 많이 벌어들여라’ 사람들이 아시아계 배우를 요구하는가? 그들을 썼을 때 표를 많이 팔 수 있나? 이런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헐리웃은 아시아계 배우를 선택할 것이다.”

   
 
  ▲ 한국계 미국인 배우 성 강. 3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성 강은 저스틴 감독이 만든 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다.  
 
문제는 ‘인종’이 아니라 ‘기회’

문제는 이런 헐리웃이 상업 논리가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할 기회마저 앗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멍청이 같은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아야 살아남는다는 자조석인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라저 팬도 그런 고충을 털어놨다.

“아시아계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배우가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나를 쓴다. 코리아타운 또는 차이나타운의 장면에서 갱에게 5초 만에 살해당하는 중국 식당 요리사 역할이 전부다. 대사도 단지 ‘you die’ 같은 것이 전부다.”

때문에 저스틴 감독의 문제의식도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결국 문제는 인종이나 재능이 아니라 기회라는 것이다.

“내가 친구들과 일하는 것은 내 친구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재능이 문제가 아니라 기회가 문제다. 재능이 있어도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장할 수가 없다.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가능성도 없다.” 

라저 팬도 “전에는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를 이뤄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며,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명작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털어놨다.

   
 
  ▲ 브루스 리가 32살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남긴 미완의 영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새로운 브루스 리를 찾는 과정을 그린 풍자 코미디 영화다.  
 
누가 기회를 만들 것인가?

아시아계 영화라는 미개척 영역을 일궈낸 저스틴 감독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저스틴 감독은 <Better Luck Tomorrow>를 찍으면서 10개가 넘는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엄청난 빚도 졌다. 그런 저스틴 감독의 도전은 많은 동양인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냥 25번 갱스터(조연) 역할만 했었다. 그래서 연기자의 길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는데, 저스틴의 이런 시도로 우리(아시아계 배우들의)의 연기자로서의 꿈이 정당화됐다. 우리가 큰 변화를 일으키려면 저스틴처럼 해야 된다.”

이렇게 힘들게 확보한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재생산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헐리웃은 아시안들이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재능 있는 아시안 감독과 배우들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스틴은 흑인 커뮤니티를 예로 들었다.

“80년대 들어서 <The Mighty Quinn>이란 영화가 나왔다. 그제야 미국이 흑인 주연배우를 쓸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흑인 커뮤니티는 ‘우리가 영화표를 많이 사고, 영화 산업에 많은 기여를 하기 때문에 너희도 우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은 흑인 배우가 주연을 맡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잖은가. 기가 막힌 모델이다.”

   
 
  ▲ 저스틴 린은 자신의 모습을 부인(denial)하는 동양인의 내면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내 자신을 영화에서 보고 싶었다”

헐리웃을 지배하는 시스템을 역행하는 저스틴의 행보는 계속 됐다. <Better Luck Tomorrow> 이후 저스틴 감독은 상업영화 <Annapolis>를 찍어 일부 혹평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박스오피스에 진입했다. 또 <Fast And Furious3 - Tokyo Drift>라는 오락 영화를 찍어 흥행을 일궜다. 두 영화 모두 상업 영화였지만 라저 팬과 성 강과 같은 동양인 배우들이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그에게 1억 달러 수준의 영화 제의가 수차례 들어왔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신 두 편의 상업 영화로 얻은 수익으로 아시아계 독립영화인 <Finishing The Game>을 찍었다.

<Finishing The Game>은 브루스 리가 32살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남긴 미완의 영화 <Game Of Death>를 마무리 짓기 위해 새로운 브루스 리를 찾는 과정을 그린 풍자 코미디 영화다. 자신의 모습을 부인(denial)하는 동양인의 내면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200만 불을 거절하고 빚까지 지면서 아시아계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스틴 감독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백인을 쓰건 동양인 배우를 쓰건 내 관점은 항상 동양인의 관점이다.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영화를 위해 10개가 넘는 신용카드를 거는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을 때 , 나는 ‘내 자신을 영화에서 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나 자신을 영화에서 보고 싶었을 뿐”이라는 알다가도 모를 저스틴은 선문답 같은 대답은 성 강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필름 페스티벌에 갔는데 거기 동양인 아이들이 사자춤을 준비했다며 꼭 봐야 된다고 했다. 아이들이 사자탈을 쓰고 하는 거였는데 정말 형편없고 엉성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걸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당신들이 하는 일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동양인 모델을 찾을 수 없었는데 당신들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자춤으로 너희들을 축복해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 이 기사는 지난 9월 27일 YKAN이 주최한 필름 패널과 10월 5일 열린 <Finishing the Game> 시사회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