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맞는데, 깨끗한 건 '글쎄'
부자는 맞는데, 깨끗한 건 '글쎄'
  • 김종희
  • 승인 2007.11.07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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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를 읽고

김동호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돈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한다. 그의 설교에는 돈 얘기가 별로 빠지지 않는다. 그 내용들의 결정판이 그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깨끗한 부자>다. 그는 여기서 "예수 믿고 복 받자"는 단순무식한 축복론을 주창하지 않는다. 무식한 기복주의자들은 ‘무작정' 예수 잘 믿으면 복 받아서 부자가 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대개 교회 일에 충성하고, 헌금 많이 내고, 목사 잘 섬기는 것 정도다.

'부자 되는 것'보다 '어떤 부자로 사느냐' 강조

그러나 김동호 목사는 다르다.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비판한다. 그만의 특유한 균형감각을 중시하는 편이긴 하지만, 교회생활보다는 차라리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더 잘 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는 점에 무게중심을 두는 편이다. 물질에 대한 그의 관점도 균형을 강조하는 편이다.

또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자가 되는 과정이 깨끗하게 해야 하고, 부자가 된 다음에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똑바로 바치고 이웃의 몫을 넉넉히 나눌 것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현재 한국 교회에 만연한 노골적인 기복주의 설교와 목사와 교회에 충성하면 복 받을 것이라는 목사중심주의를 거부하면서, 민주적인 교회 구조를 바라면서 적당히 물질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안에 집어넣어

아무튼 부에 대한 김동호 목사의 생각에 동의하는 기독교인들이 꽤 많으며, 이 책은 이러한 생각이 만연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중에는 꼼꼼히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몇 군데 있다.

<깨끗한 부자>를 읽노라면 유난히 눈에 띄는 표현이 있다. '무조건'이라는 단어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부자를 정죄하지 않으셨고", "부자는 무조건 소유형의 인간이고", "기독교에서 부함은 무조건 악한 것이고 가난함은 무조건 선한 것인가", "무조건 부를 부정하거나 부자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어 인위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무조건'이라는 단어 속에 ‘무조건’ 집어넣는다. 편 가르기를 할 때 아주 유용한 방법이나 옳은 것은 아니다. '부자를 무조건 소유형의 인간으로 보거나, 기독교가 무조건 부를 악한 것이고 가난을 선한 것으로 여긴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무조건’이라는 단어 속에 다 집어넣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여러 생각들을 한데 묶어 버린다. 부자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자발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려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에 집어넣는다. 이 책을 읽을 때 ‘무조건’이라는 단어에 유의하지 않으면 그 논리에 그냥 넘어가고 만다.

<깨끗한 부자>에 소개된 부자, 정말 깨끗한가

또, 김동호 목사가 소개한 깨끗한 부자의 예를 보면, 교회 안에서나 깨끗할 뿐이지 세상으로 나오면 그다지 깨끗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식으로 깨끗하게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그것은 김동호 목사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령,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개인적으로 깨끗하게 살고 청렴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존경하고 박수를 보낸다. 또 뇌물 주지 않고 탈세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수입의 1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최근 발표를 보면서(지금까지도 그렇게 사회봉사를 많이 해왔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모범을 보인다는 칭찬을 아낄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방식을 사업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탈세, 뇌물 등 더러운 방법을 빼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 문제다. 올해 터진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는 이랜드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할 커다랗고 심각한 과제다. 김동호 목사가 그토록 칭찬하던 박성수 회장은 기독교인 여부를 떠나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방법을 선택했다. 이랜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고, 그 돈을 ‘깨끗하게’ 썼다. 헌금 많이 하고 구제 많이 하고…. 그렇게 돈을 벌고 쓴 사람을 지금도 깨끗한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김동호 목사에게 다시 묻고 싶다.

한국 기업에서 노동력 내지 인건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대부분 공감할 수 있다.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만 되어도 얼마나 훌륭하냐" 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끗한 부자의 모델이라고 말한다면, 돈에 환장한 기복주의자들 외에 누가 선뜻 그 가치관에 동의할 수 있을까.

또 부산의 헌금 많이 하고 부자가 된 어느 장로에 대해서 '의로운' 부자라고 단정하는 것도 객관적인 정보가 부족하다. 그가 헌금을 많이 하는 검소한 부자인지는 몰라도, 기업 운영에 있어서 '의로운지' 여부는 신중하게 검증할 사안이다. 김동호 목사가 개인적으로 확인을 했을 수는 있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책 내용 어디에서도 그렇게 판단할 만한 내용이 없다.

그런 식으로라면, 김동호 목사 말대로,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깨끗하고 반듯하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없다. 물론 절대로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흐름'이냐 '회복'이냐, '우선순위'냐 '선택이냐

가난하게 태어난 경우와 부자로 태어난 경우,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경우와 비장애로 태어난 경우,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경우와 재능 없이 태어난 경우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라고 한다. 신체적 장애는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장애를 정상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적 구조를 개선할 수는 있다. 그래도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돈 문제는 전혀 다르다. 태어날 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될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 이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곤란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개인이 타고난 운명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통계는 많다. 구조적 개선이 이뤄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김 목사는 불공평을 전제하고, 거기서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흘러야 한다는 '흐름'을 강조한다. 그것이 성경적 원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공평한 구조를 그대로 놔두겠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그냥 가난의 구조에 묶어두겠다는 말이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김동호 목사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의 경우를 높은뜻숭의교회가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라민은행과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과정이 더 깊고 넓은 각성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성경의 정신은 '흐름'이 아니라 '회복' 아닐까 싶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그대로 두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져서 모두가 공유하도록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성서는 어느 쪽을 지지하고 있을까.

* 이 글은 2003년에 쓴 서평으로,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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