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 이응도
  • 승인 2007.12.14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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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사회에서 자녀 교육 (5)

얼마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재미있는 글을 하나 봤습니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글에서는 단순하고 쉬운 대답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결혼은 사랑으로 할 수 있지만 부부가 살아가는 데는 그 사랑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지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글에서 근거로 제시한 것이 'I LOVE YOU'라는 말이 생활화되어 있는 서구 사회와 요즘 한국 사회의 이혼율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얼마 전만 해도 유교의 엄숙주의가 가정을 지배하는 정서가 많았습니다. 부부 사이에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구 문화의 영향과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적극적인 감정의 표현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한국 사회의 이혼 증가율은 세계에서도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글에서 제시하는 것은 사랑 뒤에 숨겨진 '기대'입니다. 사랑의 표현은 숨겨진 기대를 갖게 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랑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 글에서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부는 '부부의 도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각자가 '도리'에 맞는 생각과 삶이라는 것이지요. 남편이 남편으로서, 아내가 아내로서 삶의 자리를 지키고 의무를 다할 때,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들어준 사랑이 더욱 두터워지고 든든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만 있습니까. 혹시 그 사랑 뒤에 숨겨진 엄청난 기대를 생각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듬뿍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가 삐뚤어진 길로 나가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 자녀, 혹은 청소년들을 보면서 왜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지 않을까 고민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상담을 하고 있는 완이(가명)라는 10학년의 남자 아이가 있습니다. 가정의 배경을 살펴보면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높은 학력과 능력을 소유하고, 가정을 책임질 줄 아는 아버지와 가정적이고 따뜻한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신앙적으로나 경제적, 혹은 정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정인 듯 보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외동아들로 자란 완이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자신을 포기했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학생으로 삶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좋은 아들이기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부모를 향한 대화의 창을 닫아버렸을뿐 아니라, 혹시 어머니가 그 창을 열어보려고 하면 폭언과 자기 학대를 통해서 더 굳게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부모님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완이에게 "우리 아들, 사랑해"라고 말할 때 그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정말 사랑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숨겨진 메시지입니다. 어머니의 사랑한다는 메시지 뒤에는 사랑 받는 아들로서 충족시켜야 하는 기대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해, 우리 아들…엄마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완아, 사랑해. 그런데 이러는 건 완이답지 않은 거야."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은 늘 이런 단단한 기대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이는 어머니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는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고, 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도저히 도전할 수 없는 크고 높은 벽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이가 어렸을 때는 그 기대를 만족시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르고 착하게 자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점점 자신이 이루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완이는 자신을 잃고 만 것입니다. 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사랑 표현은 사랑이 아닌 분노를 자극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채워지지 않은 기대감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통제되지 않은 분노가 되어 자신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해 좀더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대상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므로 너는 나의 기대를 채워줘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자녀는 부모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의 기쁨과 면류관이 되는 것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하고 그 소원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까. 자녀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과 기대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가정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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