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 이응도
  • 승인 2007.12.31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민 사회에서 자녀 교육 (6)

어릴 적 저는 싸움을 꽤 많이 했습니다. 싸움을 할 때마다 가장 겁이 나는 것은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성탄절 준비로 교회가 바쁠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해운대의 윗동네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교회로 왔습니다.

교회당에 와서 와글거리는 것을 보다 못한 저는 그중에서 6학년 친구 하나를 패주었습니다. 당시 제 생각으로는 그 친구가 분명히 잘못했고, 저는 정의의 편에서 그 친구를 혼내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저는 아버지와 그 친구 부모 앞에서 그 친구에게 잘못을 빌어야 했고, 밤늦게까지 종아리를 맞아야 했습니다. 제 기억에 친구들과의 싸움이 부모님의 귀에 들어갔을 때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저의 편을 들어준 적은 없습니다. 참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억울함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 놀고 있을 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저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집 마당에 중요한 물건을 놓아두고 대문을 열어두었는데, 그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집 주변에서 놀고 있던 저희들을 의심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은 의심을 받은 사람이 저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 더 컸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저를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난감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너희 집에 가자. 너희 부모를 만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당당하게 교회당 옆에 있던 사택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나오셨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가 앞마당에 놓아둔 물건을 들고 갔어요."

저는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싸움만 해도 벼락이 떨어지는데, 물건이 없어졌다니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말이 사실이냐?"

저와 같이 따라갔던 친구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제게 물어보셨고, 저는 결코 물건을 훔치지 않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물건을 찾아보시지요. 저희 아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얘가 제 앞에서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조용하면서도 굳은 표정에 그 아주머니는 주춤거리면서 다시 알아보겠다며 돌아섰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온 친구들과 제게 먹을 것을 주셨고, 우리는 계속 어울려 놀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의 표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아, 비록 내가 개구쟁이지만 어머니가 나를 믿어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이전에 친구들과 싸움을 하고 혼이 났던 모든 기억은 다 사라졌습니다. 모든 불만과 의문도 사라졌습니다. 나는 정직함을 인정받는 아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부모에게 귀하지 않은 자녀는 없습니다. 모든 자녀는 모든 부모의 자랑이요, 기쁨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녀의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무엇에 대해 기뻐하고 있습니까? 속담에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민 사회에서 이 말은 진리입니다. 이민 사회는 가정 중심적으로,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자녀 중심적으로 움직입니다.

자녀의 성공과 실패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내 자녀에게 작은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하고, 내 자녀의 큰 잘못이 발견될 때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녀의 결점을 알게 될까 최선을 다해 숨겨주기도 하고, 내 자녀가 기죽을까봐 무조건 모든 것에 대해 이겨버리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녀들의 마음의 밭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 망가진 마음 밭에서 무성한 삶의 엉겅퀴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달려있습니다. 어릴 때 무조건적인 관용과 절제되지 않은 사랑 속에 자란 자녀는 성장해서도 같은 인간관계를 원하게 됩니다. 어릴 때 모든 잘못을 부모가 책임져버리는 경험을 하고 자란 자녀는 커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게 됩니다. 성장하는 자녀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그 가치관과 함께 성장하는 자녀를 지켜보며 믿어주는 것만큼 중요한 교육은 없습니다.

요즘도 가끔 어머니의 굳은 얼굴을 기억합니다. "저희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편에서 저를 꾸짖던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제 마음에 남았던 모든 억울함을 지웠고, 천 번의 사랑의 표현보다 더 강하게 저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가정상담연구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