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인'은 없다
'유색인'은 없다
  • 강희정
  • 승인 2008.01.04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엿보기 14 -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것들이 미국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피부, 머리카락, 눈 등의 색이 어떤 색깔인가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단일 혈통에 대한 신화는 깨어져 가고 있지만 인종의 문제는 아직 표면에 떠오르지 않아서 아직까지 피부색이 사람의 정체성을 논하는 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전쟁 이후에 '혼혈인' 차별의 역사가 존재했었고, 지금은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피부색 또는 인종의 문제가 한국에서도 점차 이슈가 되어 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서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아서 피부색이나 인종 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증을 만들거나 학교 또는 병원 등 각종 기관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 인종과 눈의 색을 표시해야 한다. 이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인종에 대해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라는 다소 광범한 영역에 표시를 했지만 눈의 색깔을 어떻게 표시해야 옳은가 하고 잠시 주춤해야 했다.

검정으로 표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갈색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갈색이라고 표시하기는 검고 검정색이라고 하자니 갈색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검정이라고 표시를 했고 그 이후로는 고민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검정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머리카락 색이 노란 여자 아이들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아이 둘 다 그런 식으로 그리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이 아이들이 주변에 머리가 노란 아이들 틈에 있다 보니 자신들조차 그런 아이들인 양 착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그런 모습이 부러웠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우리 머리카락 색깔이 검정색인데 왜 그렇게 그리니?” 하고 지적한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머리카락 색과 눈의 색을 표현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우리 아이 하나가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 눈의 색깔이 무슨 색깔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검정이라고 답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당시 초등학교 1학년짜리였던 우리 아이는 갈색이라고 고집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 눈의 색에 대해 검정이 아니라 갈색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은연중에 인종에 따른 신체적 차이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백인'의 신체적 특징에 보다 가까운 갈색을 검정색보다 선호하게 된 탓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처럼 인종적인 차이에 대해 민감하게 되는 것은 사회 구조에 붙박혀 있는 인종차별의 문화들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면서 차별의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게 자라야 한다.(강희정)  
 
유럽계 미국인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백인'과 '유색인'으로 분류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하다. 사실 정부 기관이나 그 어느 곳에서도 이 두 가지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흑인'이건 '아시안'이건 '히스패닉'이건, 소위 '유색인종' 안에서 구별되는 다양한 차이들은 주류 문화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색인'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따라 서로 다른 경제적 계급, 직업,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하나로 묶어버리는 기능을 한다. 그저 '백인'이 아니라는 한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 지위, 지식, 인품 등이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부자이건 높은 지위에 올랐건 또는 지식을 많이 쌓았든지 덕이나 인품이 뛰어나든지 간에 그런 것들의 의미는 퇴색해버리고 인종 또는 피부색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색인'이라는 표현은 그 범주 안에 드는 사람들을 '그것'으로 대상화하는 '낙인'이 된다. 낙인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유색인'이라는 말이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 안에서 사람들을 차별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향해 '깜둥이'(negro)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던 '고상한' 말이었으나 이제 '유색인'이라는 표현은 피부색이 흰색에 가까운 유럽계 미국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 되면서 주류인 '백인'과 그밖의 다른 사람들을 비주류의 사람들로 둘로 나누는 차별의 언어가 되어 버렸다.

말의 뜻으로만 따져 보면 '유색인'이라는 그룹에서 제외되는 '백인'은 피부색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백인'들은 피부색이 없는 투명인간이라는 말인가? 피부색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백인', '흑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흰색 피부나 검정색인 피부는 없다.

피부색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은 이제 '백인'들의 피부색을 흰색이 아니라 '복숭아 색'이라고 하며 '흑인'들의 피부색에 대해서는 '마호가니 색'으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황인종'이라 불리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피부색과 인종의 문제가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현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회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까닭에 우리의 언어는 인종차별의 사회 구조를 반영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는 변화된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언어가 변화하면 사회도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언어를 선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차별의 언어'를 쓰지 않는 대신 '평등의 언어'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의 언어는 사회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동시에 사회 구조를 바꾸어 가는 힘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아이의 학급에서 만든 문집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인도 출신의 여자 아이가 썼던 말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자신의 피부색을 표현하면서 '갈색 계통의 흰색'(Brownish White)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그 아이는 무척 똑똑하고 얼굴도 예쁜 아이였다. '흑인'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는 인도계 여자 아이의 고민 끝에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색깔'이 만들어졌다.

그 여자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사람들이 '백인'과 '유색인'으로 나뉘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적인 구조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 아닐까?

덧붙이는 말 : 백인, 흑인, 황인, 유색인 등 피부색에 따른 인종 구분은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주자들의 나라'인 미국의 경우에는 출신 대륙에 따라 유럽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인도계 미국인 등으로 부르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