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부담인가 축복인가
청년, 부담인가 축복인가
  • 박지호
  • 승인 2008.01.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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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2] 둘째 날 오전 전체 토론…'한인 디아스포라와 청년 사역'

킹덤 컨퍼런스 둘째 날 오전에 '교회와 청년 사역의 시대적 상황'을 주제로 전체 토론이 열렸다. 패널들이 있었으나, 청중들의 자발적인 의견 개진이 비중을 많이 차지했다.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교회 현실에 대한 청년들과 목회자들의 다양한 고민이 진솔하게 나왔다.

   
 
   
 
- 청년과 교회, 곧 나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자. 서로 원하는 것이 있는데, 뭔가 모를 간격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

- 평범한 청년 중에 한 사람이다. 교회의 여러 모임과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불분명한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교회에서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지도를 받기가 쉽지 않다.

- 교회가 솔루션을 제공하기보다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부담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사들이 일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이들의 시야는 교회 안에 고정되어 있다. 1세 목회자들에게는 당연한 상황이다. 반면 청년들은 교회와 세상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에서 넘나든다. 그것에 대해 목회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주기가 쉽지 않다.

- 1세들이 1.5세나 2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하면 대화가 안 된다. 먼저 마음을 열면 좋겠다.

-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 꼭 목회자에게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중에는 멘토, 모델이 될 만한 선배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가서 대화하면 좋겠다.

- 목회자 입장에서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교회로 끌어들이고 싶은 유혹이 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도전을 주지 않는다. 교회에서 양육 받은 다음 세상에 나가서 사역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교회가 양육의 장도 아니고 사역의 장도 아닌 셈이 되어 버렸다.

- 교회가 청년들은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기 때문에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청년들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많이 오면 일꾼도 늘어나고, 분위기가 밝아진다는 것 때문에 청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양육에 대한 프로그램은 부족하고 어떤 일에 투입해서 지칠 때까지 뺑뺑이만 돌리고 만다. 옛날 성경공부 교재 가지고 양육이 제대로 되겠나. 일만 시키고, 성경공부도 안 시켜주고, 양육도 안 시켜주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하든가 나가떨어지든가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리타분한 성경 교재로 변화된 사람이다. 본질은 똑같다. 청년들에게도 왜곡되고 갇혀 있는 시각이 많다.

- 우리 교회 안에도 청년들의 갈등이 많다. 대개가 유학생들이다 보니까 3년 단위로 물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도 언젠가 떠날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쟤들은 헌금도 안 하고 밥만 축내고 놀다 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청년 사역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선교사를 키운다는 전제로 양육하는 개념을 세우고 노력하고 있다.

- 양측이 씨름하는 구도로 서 있는데, 교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봤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양육 받지는 못하고 일꾼으로 쓰이기만 한다는 두려움과 불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길을 통해 내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나의 경우는 청년부도 없던 교회에서 청년부가 60명으로 늘어나면서 활발하게 자라가고 있다. 어른들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은 점이 있다. 주일 오후에 어른들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는다. 나중에는 청년회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그것을 통해 어른들이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미처 몰랐다. 청년을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 얼마나 받을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그 일을 바라봤을 때 어른들이 시킨 일, 교회가 시킨 일이라는 생각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이라고 봤으면 좋겠다.

- 청년이라는 시기의 특수성이 있다. 그 시기가 전부가 아니다. 청년이기 이전에 성도이고 지체이다. 청년 사이에 패배의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얘기하는데 왜 안 듣지 않을까 하는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성도로서 요구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성도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 한인 교회에서 한국어권 청년 사역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 교회가 모든 사역을 다 하려고 하기보다 특수화되고 전문화된 청년 전문 그룹을 지원하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내 교인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선교 단체와 지역 교회가 함께 가야 하지만, 청년들이 다른 교회나 선교 단체로 가면 목회자로서 섭섭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 1.5세다. 지역교회와 선교 단체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20대를 보냈다. 양쪽 다 각자의 부르심이 있다. 교회와 청년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평생 청년으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청년이라는 점에만 집중하는 것이 건강한 생각일까 싶다. 교회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시작한 것은 개척 교회를 섬기면서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다. 하나님나라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관점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가끔 교회 어른들이 다른 곳에서 수준 높은 행사를 보고 온 다음 너희는 왜 저렇게 못하냐고 재촉하기도 한다. 인원도, 역량도, 재정도 부족한데, 단순 비교를 한다. 대신 그런 교육을 받고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우리가 어른이 됐을 때는 교회의 모델이 지금하고는 달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동하는 세대다. 이동하는 사람을 유통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이 됐을 때는 한 사람에 의존해서 유지되는 교회가 아니라 유통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 4년 전에 청년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하면서 청년들에게 안타깝게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짧은 사역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는데, 롱 텀으로 해야 하는 부분,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지점에서는 매우 힘들어하더라. 1세 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감투를 벗으려고 하는 것이다. 짐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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