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우리의 구원
한미FTA와 우리의 구원
  • 박득훈
  • 승인 2008.02.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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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7장 1~11절 / 한미 FTA를 저지해야 할 신앙적 이유

한미 FTA를 저지하는 신앙적 당위성을 주제로 설교한다는 것은 교회 형편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우선 예배 참석자 간에 이와 관련하여 상당한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견해차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습득해온 신앙에 근거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가 그 견해차를 공적으로 언급하면서 어느 한편에 기우는 설교를 할 경우, 설교자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은 부당하게 억압당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찬반으로 갈라져 교회가 분란과 갈등을 겪을 위험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한미 FTA는 신앙적인 옳고 그름과 관련이 없는 정치·경제적 사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정책적으로 적절 혹은 부적절의 문제라는 것이죠. 이들에겐 그런 사안을 설교 주제로 삼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성경적 진리를 곰곰이 살펴보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한미 FTA에 대하여 신앙적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한미 FTA를 저지하는 일에 동참해야 하는지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저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도 마음을 열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하십니다. 첫째,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의 거짓된 신앙과 종교 행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 공동체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 요청이 한국그리스도인들이 한미FTA를 저지해야 할 신앙적 이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거짓된 성전 중심적 신앙과 종교 행위를 버리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 앞에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외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성전과 관련된 거짓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첫째, 주님은 성전이라는 건물에 무조건 임재하신다는 거짓말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당시 타락한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신앙적 관심을 예루살렘 성전 건물에 온통 집중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 반복 인용하신 것처럼 그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다’는 점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어 그 말을 믿게 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심성입니다. 표어라는 것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물 자체가 주님의 성전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 듣다가 그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 주님은 이 성전 건물에 무조건 계시는구나’ 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이 거짓말이니 절대로 의지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도 이런 거짓말이 횡횡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약교회도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게 되면 교회 건물을 강조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개혁실천연대에 교회 상담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힘든 사정을 호소하러 오는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목사와 일부 유력한 지도자들이 담합하여 무리하게 교회 건물 건축을 하다가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공사비가 늘어가면서 성도들에게 무리한 헌금을 강요합니다. 자연히 큰돈을 헌금할 수 있는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교회 건물 짓는 데 집중하다 보면 다른 데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사하게 지어놓은 건물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그 건물에 임재하시고 그리고 거기에만 계신다는 거죠.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교회 건물 밖 영역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하나님은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앙과 연관해서 성찰한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런 가르침에 길들여지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시야와 그 삶의 영역은 교회 건물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런 가르침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결코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미FTA는 신앙의 본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거짓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한미FTA 체결은 한국 사람들의 경제생활에는 영향을 미치겠지만 성전 예배와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한미FTA를 신앙과 연관해서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런 주장이 거짓말이므로 그런 거짓에 근거한 종교 행위를 청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 밖에도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건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도 깊은 신앙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지하게 관찰하고 신앙에 걸맞은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한미FTA에 대하여 신앙적 관심을 가져야 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성전 밖에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성전 예배만 잘 드리면 구원받는다는 자기도취의 거짓에서 벗어나라고 요청하십니다(8~10절).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주님이 성전에만 계신다는 거짓말은 거짓된 구원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전 밖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전에 들어와 주님 앞에 서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의존하였습니다.

원래 자기 욕심을 채워주는 말은 믿기 쉬운 법입니다. 하여 그들은 실컷 죄를 져 놓고는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 있게 고백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성전 밖에선 죄악 된 삶을 즐기고 성전 안에선 영적인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분 좋고 긍정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인들에겐 성전 예배란 편한 마음으로 죄악 된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왜곡되고 이원화된 성전 중심의 신앙은 허구일 뿐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원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막상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모르신다고 한다면 얼마나 난감한 일이겠습니까? 한미FTA에 대하여 신앙적 관심을 가져야 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미FTA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구원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한미FTA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맘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요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억압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기꺼이 자행하고 나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구원받았다고 기뻐하며 고백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한미FTA 찬반의 문제는 우리의 구원 여부와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이는 소위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구원은 입술로만 거짓되게 고백하는 믿음으로는 주어지지 않고 진정한 믿음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것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그에 동반되는 실천을 제시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바울 그리고 야고보가 공통적으로 가르친 내용입니다(마 7:21-27; 25:31-46; 갈 5:6; 약 2:20-26).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한미FTA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정말 진지하게 살펴봐야 하고, 그에 따라 바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개혁하라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길이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와 방식을 의미하고, 행위란 그 길을 걸어가면서 드러나게 되는 공동체적 삶의 구체적 모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개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혁을 수행해야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체의 길과 행위의 개혁 여부에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혁의 핵심적 내용을 말씀해주십니다(5~7절).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첫째,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에게 부여하신 권리들을 서로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웃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보면 그 다양한 권리를 알 수 있습니다. ① 임금을 밀리지 않고 받을 수 있는 권리(레 19:13; 신 24:14, 15) ② 금융과 관련해선 가난한 자가 무이자로 대여 받을 수 있는 권리(출 22:25; 레 25:35-37; 신 15:7-11; 23:19), 전당 잡힌 옷을 해지기 전에 돌려받아 침구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출 22:26, 27), 칠 년 단위로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권리(신 15:1-3) ③ 음식과 관련해서는 매해 가난한 사람들이 밭에 남겨진 곡물과 포도의 일부를 취할 수 있는 권리(레 19:9, 10; 23:23; 신 24:19-22) ④ 노예 생활 6년 후에는 후한 독립자금과 함께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권리(신 15:12-15) 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원래의 땅을 되찾아 온전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레 25:10).

이를 종합하면 모든 공동체 구성원은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 즉 몸의 자유, 땅 그리고 일정한 소득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 공동체는 이를 보장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 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정의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면 안 됩니다. 이는 정의 실현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한 것입니다. 당시 대표적 사회적 약자 그룹인 이방인, 고아 그리고 과부를 보호하는 율법을 무시한 채 그들을 억누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선 안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땅을 강제수용하기 위해 그를 모함해 처형한 사건입니다(왕상 21:1-10).

넷째, 다른 신을 따라가는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가 바로 우상숭배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십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러한 개혁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이 그리스도인의 한미FTA 저지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길과 행위를 개혁하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즉 한미FTA의 경우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 사이에 상당한 견해차가 있고 비전문가들은 누구의 분석을 믿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자신은 이념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분석은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FTA는 자유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통한 개인의 이익 추구가 공익을 극대화한다는 신념, 즉 신자유주의라는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이념적 배경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사실을 말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망에 유리하도록 사실을 적당히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한미FTA 추진 세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놓고 판단하면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한미FTA를 적극 추진하는 당국자들은 그 체결에 따라 미국은 법 개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반면 한국은 최소한 40여 개 이상의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미국의 스탠더드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 경제는 어떻습니까? 물론 총량적인 면에서 세계 최강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개혁의 기준으로 볼 때 참으로 불의한 경제입니다.

첫째, 이웃들 사이의 정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야말로 선진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가장 심한 사회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올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의하면, 조사 대상 회원국(20개 국) 가운데 미국은 헝가리에 이어 소득 격차가 두 번째로 큰 나라로 드러났습니다. 미 일간 <매클래치>는 2007년 2월 24일, 미국의 2005년 인구센서스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 보도하면서, 미국의 극빈층 인구가 1600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극빈층이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 기준선 수입의 절반인 9903달러(약 928만원)도 1년 동안 벌지 못하는 계층을 말합니다. 극빈층 인구수는 2004~2005년 사이에 26% 늘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빈곤층의 증가보다 56%나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웃 간에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둘째, 이방인, 고아 과부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은근히 압제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 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지 않는 나라이며, 이에 따라 근로 연령 인구 중 약 6분의 1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셋째, 무죄한 자들이 피 흘리는 사회입니다. 미국은 경쟁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은 패배자로서 설 자리가 없는 냉정한 나라입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삶을 포기한 채, 소위 지하문화라는 함정에 빠집니다. 법망에 걸려 죄인이 됩니다. 물론 이들 개인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상당 부분 이는 사회의 책임입니다.

사회적 양극화의 대물림 현상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의 경쟁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미국 사회는 표면적으론 거의 완벽한 법치국가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론 무죄한 이들이 옥에 갇혀 피를 많이 흘리는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표면적으론 기독교 국가적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 맘몬 숭배의 진원지일 뿐 아니라 맘몬 숭배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부터 16년 전인 1991년 12월 31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미 미국 사회의 성격을 정확하게 간파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신(神)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顯現)은 뉴욕의 주가지수 즉 다우존스인덱스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 조정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레믈린의 지도자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보편 문명이다.’

미국에 대하여 제가 너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적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평가를 마음에 깊이 담아둘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미국에 대하여 순진할 정도로 우호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FTA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한국 사회는 위에서 언급한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점점 더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양심에 근거해 한미FTA를 저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공동체적으로 바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사회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만일 이를 외면하고 앞서 언급한 성전 중심의 거짓된 종교 행위에 몰두하며 거짓된 평안을 누리게 된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11절). 교회를 도적들이 마음 놓고 숨을 수 있는 은신처로 제공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한국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처럼 예수님의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박득훈 / 언덕교회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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