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에서 '희망'을 볼 수는 없다
쇼에서 '희망'을 볼 수는 없다
  • 김종희
  • 승인 2008.02.11 22: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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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았지만 반갑게 만날 가족도 없고, 잠잘 곳도 없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먹을 데 없는 외롭고 굶주린 노숙자들을 위해서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 낮고 추한 지하 서울역에 몸소 가서 이들에게 사랑이 듬뿍 담긴 밥을 정성껏 담아 주었다.”

   
 
   
 
냉랭하고 싸늘하게 식어 있는 내 가슴에 벅찬 감동의 물결이 몰아치고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주룩 흘러내려야 하는데, 코웃음 몇 번 치다가 그만 콧물이 주룩 나오고 말았다.

‘한국교회희망연대’라는 단체가 작년에 만들어졌다. 한국 교회가 연대해서 희망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작년 12월에 출발했다. 한국 교회가 그동안 좋은 일을 참 많이 했는데, 언론이 기독교에 대해서 왜곡 보도를 해서 기독교 전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랑과 희망이 필요한 ‘낮은 자리’에 찾아가 사회봉사에 장단기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때를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마침 태안반도에서 유조선이 엄청난 기름을 유출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우리는 참사 현장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척하면서 카메라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탤런트들이나 정치인들 말고, 대형 교회 목사들이 얼굴에 기름을 묻히고는(평소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기름 말고) 쪼그리고 앉아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기름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왜 그리 어색할까. 역시나. 어쩌다 한 번 가서 기름 한 번 닦고는 설교 시간에 얼마나 우려먹으면서 생색을 내던지.

   
 
   
 
희망연대가 1월에는 외국인노동자와 만나는 이벤트를 열었다. 설에는 노숙자들을 만나는 이벤트를 열었다. 3월에는 어떤 이들을 만날까. 4월에는, 5월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솟아나야 할 텐데. 그래야 우리 이벤트도 계속 될 테니. 이벤트의 번창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가난과 좌절의 굴레를 저들이 끊어낼 수 있는 길은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

큰 교회 목사들이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좋은 일 하는데, 긍정적으로 표현은 못할망정 비아냥거리는 글을 써대고 있으니, 참 한심하게 보일 것이다. 이 글이 한심하게 보여도 할 수 없다. 할 말은 해야겠다. 그것도 제법 오래 참고 참다가 쓰는 것이다.

봉사를 하려면 조용히 할 일이지, 동네방네 떠들어댄다.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한다. 행사 전 보도자료를 계속 보낸다. 봉사활동을 하는데 상임대표가 한 명 있고, 공동대표가 다섯 명 있고, 일곱 명의 본부장이 필요하다. 이래서 한국 교회가 욕을 얻어먹는 거다. 애먼 매도가 아니다.

   
 
   
 
   
 
   
 
소리 내지 않고, 티 내지 않고, 숨어서 조용히 봉사하면 좀 좋은가. 감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었던가. 봉사 활동 한다고 기자들 앞에서 설명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정녕 남우세스럽지 않은가. 정말이지 궁금하다.

제법 인기 있는 연기자가 있다. 그는 좀 더 뜨고 싶었다. 인기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그러면 연기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머리를 엉뚱한 쪽으로 돌렸다. 어느 날 노숙자한테 먹을 것을 주면서 “사람들한테 OOO가 주었다고 얘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은밀한 선행으로 가장한 쇼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인기가 오르기를 바랐던 것이다. 자기가 한때 그랬다는 얘기를 텔레비전 쇼 프로에 나와서 솔직히 고백하는 그는 그래도 낫다. 스스로 이상한 스캔들을 만들어서 퍼뜨리는 인기 중독증 환자보다는 낫다.

목사들도 이런 쇼를 해야 세상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진면목을 바로 알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일까. 봉사 열심히 하는 한국 대형 교회 목사들의 참 모습을 몰라서 저들이 교회를 욕하고 있다고,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일까. 그러니까 안 되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주걱질 열심히 해봐라, 사람들이 감동하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한 10년 동안 “나 죽었소” 하고 섬기고 섬기고 또 섬겨도 될까 말까 하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 그런데 한큐에 끝내려고 한다. 안 된 일이지만, 10년 동안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길 수 있는 내공 자체가 저들에게는 아예 없다. 김명혁 원로목사가 “한국 교회는 회개할 힘조차 없다”고 한 탄식은 정말 맞는 말이다. 내공이 없으니 찰나에 불과한 쇼에 매달리는 것이다.

더 불행한 것은, 실력 없이 쇼만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벌거숭이 임금님 보고 속으로만 웃었지만 지금은 아예 드러내놓고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권상우처럼 몸매라도 좋으면 눈이라도 덜 피곤할 텐데. 정말 남우세스럽다.

‘한국교회희망연대’,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희망’은 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깊은 절망에 대한 그보다 더 깊은 탄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도무지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무력함을 못 이겨 몸부림치고 소리 죽여 절규할 때 어디선가 들리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어설픈 사이비 희망 쇼를 보여줄 때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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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2012-04-12 20:48:43
Your answer lifts the intelligence of the det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