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은혜를 받으려? 영광을 드리려!
예배, 은혜를 받으려? 영광을 드리려!
  • 정용섭
  • 승인 2008.02.12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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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신앙적 특징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예배가 자주 드려진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모이기에 힘쓰라는 가르침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며, 신앙적 열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보다야 자주 드리는 게 낫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예배가 바르게 드려진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조금 비판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너무 많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는 데서 오는 역작용인지 모르겠다. 주일에 진정한 마음으로 한 번 예배를 드렸다면 사실 더 이상의 예배는 필요하지 않다.

   
 
  ▲ 은혜 지상주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의 근본을 허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은혜까지도 세속화한다.  
 
군것질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줄 모르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니까 결국 자주 군것질을 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서 지나치게 자주 드리는 예배 행위와 잘못된 예배는 일종의 악순환인 것 같다.

이런 악순환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예배 개념의 왜곡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참된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에서 신자들의 종교적 욕구인 은혜가 더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말이 “은혜를 받으러 간다”는 말과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분명히 예배에 대한 몰이해이며, 변질에 이르는 첩경이다. 영광을 돌린다는 말과 은혜를 받는다는 말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지평이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면 당연히 은혜를 경험하겠지만,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진정한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배에서 은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은혜는 예배에서 결코 주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영적인 선물일 뿐이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한민족의 전통적 전례인 제사 행위를 예로 들겠다. 우리의 전통적 제사 행위가 조상신에 대한 숭배이며, 신약의 예배 및 구약의 제사가 야훼 하나님에 대한 경배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형태에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양측 모두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모든 걸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사 행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조상에게 집중한다. 그들은 제사 행위에서 어떤 반대급부를 원하지 않고 최선으로 그 행위에 천착할 뿐이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적 요구를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만 집중해야 한다.

제사는 엄격한 절차와 의식에 따라서 진행된다. 제상에 음식을 올리는 방법이나 술 따르는 방법도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다. 제사의 방식이 이렇게 일정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조상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드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배도 역시 그런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예전이라고 한다.

그 예전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하나님에게 최대한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선택한 종교적 의식이다. 기도·찬송·말씀 봉독·교독·성찬·설교 등등, 예배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순서는 오직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에게 맞춰져 있다.

그런 모든 예전도 역시 역사 과정에서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니까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그래서 그 시대에 맞도록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전통적 예전 예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완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쉽게 상대화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늘 소위 ‘열린 예배’라는 방식의 예배는 이런 전통적 예전을 상대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하다. 이런 예배의 무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은혜에 놓인다. 예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의 영적 만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은혜 지상주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의 근본을 허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은혜까지도 세속화한다. 은혜의 주체인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은혜에 종속되어야 할 인간에 대한 관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 더 심각하게 말해서, 은혜를 인간의 종교 심리적 차원으로 끌어내릴 위험성마저 보이고 있으니, 은혜의 세속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우리가 지금 로마 가톨릭의 미사가 빠지기 쉬운 형식주의나 엄숙주의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예배의 주체를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단순히 청중들의 종교적 친교 모임인지, 아니면 참되게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송영(doxology)인지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라. 모든 실상이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다.

정용섭 / 샘터교회 목사·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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