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커맹'에서 탈출하자
교회여, '커맹'에서 탈출하자
  • 박지호
  • 승인 2008.03.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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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육전문가 김성학 목사, "의사소통 부재는 분쟁 지름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직접 땅을 찾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웃들과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건만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심각한 ‘커맹’(커뮤니케이션 맹인)을 앓고 있다. 교회라는 구조에 갇혀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직분에 얽매여 공동체 구성원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전 사무국장인 구교형 목사도 교회 분쟁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교회 내에 합리적인 의사소통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교회, 기업, 정부기관, 대학교 등을 상대로 교육기획법과 셀프리더십,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을 강의하고 있는 김성학 목사(에듀웨이 대표∙서울여성가족재단 교육위원)는 교회 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정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 그 결정에 '자신'이 소외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교회 내에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은 선포되는 것이라는 신정주의와 교회 리더십의 폐쇄성”을 꼽았다.

김 목사는 또 “‘궁금한 사람은 와서 보라’는 것은 보지 말라는 완곡한 거절이나 다름없다”며,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자료를 지정된 장소에 공개하거나 인터넷에 게시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당회나 제직회의 등도 일반 교인들에게 공개해서 의사소통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라”고 제안했다. 다음은 김 목사와의 서면 인터뷰 전문이다. 
 

   
 
  ▲ 김성학 목사는 "합리적인 소통에 실패하면 물리적 소통이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 의사소통의 부재로 발생하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가 있다면.

소통의 단절은 곧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말문이 막히면 인간관계는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교회 공동체에서 흔히들 “가장 힘든 것은 사역이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말을 한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큰소리가 나는 이유도 내려진 결정이 잘못되어서 그렇다기보다 그 결정에 '내'가 소외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누군가 소통의 반대말은 ‘소외’ 혹은 ‘외로움’이라고 정의했다. 사전에 서로가 소통했다면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을 텐데 충분한 교감이 없었기에 분쟁으로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소통은 그 교회의 성격과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 공동체 내에서 의사소통의 실패가 가져오는 결과는.

'소통'이란 서로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혼자라면 소통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모든 공동체는 둘 이상이기에 소통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둘 이상이 모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가 토론하고 소통했다면 문제가 해결되었겠지만, 이러저런 이유로 소통에 실패하게 되면 결국 물리적 소통(행동, 편 가름, 비방, 위협, 실력 행사)을 선택하게 되고, 급기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공멸로 치닫게 된다. 

― 한국 교회 내에서 건강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문화적 혹은 구조적 장애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의사소통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은 선포되어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 신정주의 요소가 강하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은 선포되는 것이기 전에 공유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의사결정의 폐쇄성도 주요한 요인이다. 소위 교회의 어른(당회, 기관장 회의)이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토록 비밀스럽게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의사결정의 과정이나 결과를 제한적으로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개하더라도 대개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만한 결정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 공동체 내에서 의사소통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보통 의사소통을 활성화해야 하는 당위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인지(How to communication)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소통이란 단순하게 ‘자기표현’과 ‘경청’으로 이루어진다. 자기표현을 잘못하고 경청하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커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권을 행사하는 중직자가 ‘커맹’이라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제대로 사역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커맹 탈출 방법은 자기표현 잘 하고 남의 말을 잘 들으면 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에서 출발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말씀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문에 공동체 내에 의사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교회의 어른들은 아랫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고, 아랫사람은 어른에게 조리 있게 자기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할 것이다. 

― 의사소통의 장애물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사소통하려면 먼저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교회의 생사와 관련된 긴급하고 중요한 것과 개인에 대한 비밀보장이 필요한 내용은 제외하더라도 당회나 제직회의, 기관장 회의 등은 일반 회원들에게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반 회원들에게 결정권은 주지 않더라도 참석권이나 발언권은 줄 수 있다고 본다.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주요 안건에 대한 결정 내용이 특별히 비밀을 요하는 중대 사안이 아니면 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궁금한 사람은 와서 보라’는 것은 보지 말라는 완곡한 거절이나 다름없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지정된 장소에 공개하거나 인터넷에 게시해야 한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면 정보를 얻게 되고, 정보를 가지고 일해야 통제력 있는 일을 하게 된다. 열심히 사역을 하고도 칭찬 받지 못하고 심지어 욕을 먹는 이유는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질문하지 않으니 정보 결핍을 앓게 되고 정보 결핍 상태에서 일하다보니 결국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처리되기 십상이다. 결국 일을 열심히 안 해서 욕먹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고 정보 없이 일하다 보니 통제력을 잃었기에 욕을 먹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은 아랫사람이 윗사람(물론 교회가 상하구조가 아니지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목사는 장로, 권사, 집사, 청년, 어린이에게 물어야 하고, 장로는 목사, 권사, 집사, 어린이에게 묻고 들어야 한다. 질문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통제력 잃은 사역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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