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일방적 의사소통도 '가정폭력'
남편의 일방적 의사소통도 '가정폭력'
  • 이응도
  • 승인 2008.06.05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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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사회에서 자녀 교육 14 대화는 가장이 먼저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함께 고민한 7학년 S가정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S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이혼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가정의 모든 문제를 부모의 감정을 따라 결정해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잘못된 일 아니겠습니까?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미국에 오기로 결정한 것은 그 자녀가 가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두 사람이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가정의 문제에 대해서 자녀들의 의견과 입장이 존중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가정이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있다면, 바로 자녀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7학년인 S와 아직은 어린 2학년의 S 동생이 부모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정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혼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남편의 음주와 폭력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구타를 시도할 때 많은 경우 열등감 혹은 위기감이 그 내적 동기가 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폭력 가정에서 자랐거나, 아내가 극단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에 다른 대응의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 폭력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폭력은 아내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가장 원시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에 불과합니다.

S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온 뒤 위기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능력을 인정받았던 전문인이었는데, 미국이라는 사회는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가정을 책임지는 안정된 가장으로서 자기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S의 아버지는 가정 밖에서 무너진 자신의 안정감을 가정 안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는 좀 더 권위적이 되고, 좀 더 자기중심적이고, 좀 더 감성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내와 자녀들에게서 번번이 거절당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내가 좀 지나쳤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가 어떻게 계속 나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밖에 나가서 무시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안에서까지 무시당하고 살란 말입니까?"

결국 S의 아버지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느낀 자신의 위기감을 가정에서도 함께 느끼게 되었고, 그 모든 불안과 분노를 술과 폭력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S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의사소통' 혹은 '대화'입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단순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이요,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그와 반대되는 것이라면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S의 아버지는 사회와의 의사소통에도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아직 미국이라는 사회와 이민자로서 한인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쌍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미국 사회가 어떤 사람의 어떤 능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국 S의 아버지는 자신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자신이 사회와 가정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면 아내에게 솔직하고 분명하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의사소통은 가정의 기본인 성격과 관계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편이 위기감을 느낄수록 의사소통은 단절되기 마련입니다.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진행되었을 때 자신의 위기감과 무능력함이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남편으로서 자존심과 권위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을 안정감 있게 지키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아내와 함께 가정과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폭넓은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의사소통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린다면, S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얼마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는데 과연 지금 아버지의 결정이 자녀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사랑한다하면서 그 자녀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소원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 사랑은 번번이 거절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의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S의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술에 의지하게 되고, 그 술이 요구하는 대로 폭력이라는 일방적인 방법의 의사소통을 아내와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S의 아버지도, S의 어머니도, 그리고 아직은 어린 S와 동생 중에 그 누구도 불행한 가정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불행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발걸음을 돌이키기 위해 누군가 먼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일입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초대교회, 청소년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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