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설자리 잃게 만드는 섣부른 정치 발언
교회 설자리 잃게 만드는 섣부른 정치 발언
  • 박문규
  • 승인 2008.12.23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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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교계 지도자들 정확한 정보 근거한 정치 발언해야

기독교회가 언제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가 3.1 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분명한 정치 행위였지만 의로운 일이었다고 믿는다. 미국 기독교의 주류 세력이 노예 해방 운동을 벌인 것이나 한국의 진보적 기독교와 천주교가 민주화 운동의 일부였음도 정치적 행동이었지만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가 반낙태 운동, 반동성애 운동을 정치 이슈화시키는 것도 그들의 종교적 입장을 고려해본다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 참여는 우선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야 한다.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동성 결혼 반대 주민발의안(프로포지션 8)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목사가 동성애자들의 주례를 거부할 경우 고소를 당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니면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미국에서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금지는 1962년의 대법원 판례로 결정된 것인데 케네디 대통령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을 하며, 그 가계를 저주하는 것은 거짓 정보에 의거한 인신 공격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촛불 집회가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로 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그 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반공 시민들을 모독하는 일일 것이다.

심지어 노태우 정권 밑에서의 한국 정부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1980년의 광주 시민 반독재 투쟁을 공산 폭도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한 대형 교회 목사가 있어 문제가 생겼다고 하니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편협성과 천박함, 그리고 발언의 경솔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지난 대선 기간 캘리포니아에서 이슈가 되었던 프로포지션 8에 찬성표를 찍었고, 그것이 통과돼 기쁘지만 그것을 지지하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접근법에 대해 무척 실망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기독교회의 상당수가 이 주민발의에 반대하고 있고 그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음을 성도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 결혼이나 낙태를 불법화 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목사의 설교는 교인들이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기독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대해 항상 전문적인 식견을 가져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발언은 영향력이 적지가 않다. 특별히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이민자들에게 목사님의 정치 해설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 그 책임감은 막중하다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 지도자는 정치 발언을 할 때 먼저 정확한 정보에 의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교인들을 오도하는 것은 죄짓는 일이다. 둘째로 자기의 견해가 스스로의 주관이 아니라 명명백백히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고민이 있어야 한이다. 그리고 자기 의견과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은 없는가, 그들 중에 기독교인들은 없는가, 다른 의견의 논리는 무엇인가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또 자기가 정치 발언을 하면 그 영향력은 무엇일까 하는 것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이런 연구와 고민을 하고도 하나님이 시키신다는 확신이 들 때는 용기를 갖고 발언을 하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주관적·감정적 정치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교회 지도자의 섣부른 정치 발언은 기독교를 세상 논의 와중에 휩쓸리게 만들고 기독교의 세상에서의 입지를 좁히는 역할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문규 / 캘리포니아인터내셔날대학 학장 

* 이 글은 LA 기윤실 소식지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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