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쟁이' 전도사, 마약중독자에게 안방 내주기까지
'약쟁이' 전도사, 마약중독자에게 안방 내주기까지
  • 박지호
  • 승인 2009.03.08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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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단체 탐방] LA 아가페홈미션 이강원·이정환 전도사 부부

   
 
  ▲ 이강원 전도사 부부와 마약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홈리스 들이 함께 모여 사는 아가페홈미션 센터.  
 
"어서 오세요. 여긴 약 빨지 않고(마약 안 하고) 맨 정신으로 오기 힘든 곳인데. 허허."

마약중독자 재활 공동체인 LA 아가페홈미션에 들어서자 이강원 전도사가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넸다. 9년 전 아가페홈미션을 세우고 오늘까지 마약중독자들과 함께 뒹굴며 살아가는 이 전도사는 LA 지역 '약쟁이'들 사이에선 대부(代父)로 통한다.

현재 50여 명이 함께 지내고 있는 아가페홈미션은 말 그대로 '홈'이다. 이 전도사의 가정에서 시작했고, 마약으로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 집에서 지내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마약중독자에서부터 정신 질환자와 알콜 중독자들이 대부분이며, 아직 1살도 되지 않은 갓난아기서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10여 년 전부터 LA 시내 마약 소굴을 뒤지며 마약중독자들을 끌어다가 선교단체나 기도원에 데려다놓기 시작한 이 전도사는,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마약중독자 두 명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가페홈미션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신 딸이 몹쓸 짓이라도 당하면 어떡할 거냐"

오갈 데 없는 마약중독자들이 그렇게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20여 명에 이르렀다. 당시 이 전도사 내외는 방이 두 개 딸린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딸이 한 방을 쓰고, 이 전도사 내외가 나머지 한 방을 썼다. 노숙자 20여 명이 거실에서 함께 지냈다. 겨울에 히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때 사람들이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냐고 묻더라. 어떤 사람은 '당신 아내야 그렇다 쳐도 저 어린 딸들은 어떡할 거냐. 몹쓸 짓이라도 당하면 어쩔 거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 전도사는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됐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노숙인이 하룻밤만 다녀가도 악취가 진동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물건을 때려 부수면서 서로 싸워대니 지역 주민이 배겨낼 리 만무하다.

아파트에서 쫓겨난 이 전도사는 다른 집을 얻었다. 딸들은 따로 살도록 내보내고, 새로 얻은 집에는 노숙자들을 재웠다. 함께 머물기엔 집이 비좁았기에 이 전도사 부부는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그해 비는 왜 그리 자주 오는지 텐트가 마를 새가 없었고, 이 전도사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당시 이 전도사는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 마약중독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지내는 이강원 전도사 부부. 그 부부 사이에는 이 전도사를 그림자처럼 따라디니는 '반짝이'가 누워 있다.  
 
"저도 한때 약쟁이였거든요"

부모도 마다하는 마약중독자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역시 한때 마약의 늪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 그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탓이다.

마약에 손을 댔다가 돌아선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나 다른 이들을 돕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상도 하기 싫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나머지 마약중독자들을 경멸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경우다. 이 전도사는 전자에 해당한다. 

이민 생활이 한창 익숙해질 무렵, 유난히 부부 싸움이 잦았던 이 전도사는 홧김에 도박을 시작했고, 도박을 하면서 돈을 잃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어느새 자신이 마약의 마수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어느 순간 내가 마약쟁이가 되어 있더라. 그때 그 절망감이란….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마약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내게 1%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에 다다랐을 때 이 전도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느꼈던 기쁨과 평안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느낌이었다." 당시 이 전도사는 '마약 때문에 내가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기도원과 교회를 오가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마약중독자들이 눈에 어른거렸고, 이 전도사는 다시 마약 뒷골목을 찾기 시작했다.

이 전도사는 한인들이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는 곳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LA 다운타운에 있는 맥아더공원에서 출발해 8가를 거쳐 벌몬 뒷골목을 훑고, 크랙하우스(crack house: 마약을 거래하는 곳이라는 뜻의 속어)나 마약중독자들이 근거지로 삼는 모텔에 들른 뒤 집에 돌아온다. 그런 일을 하루에 두세 번씩 반복했다.

매일같이 험악한 뒷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처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아마 1년 안에 죽을 거"라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곤 했다고 아내인 이정환 씨가 대신 대답했다.

"하루는 아내하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마약 딜러들끼리 총싸움이 붙었다. 우리를 골목 중간에 두고 양쪽에서 총질을 하는데, 희한하게 우리는 안 맞았다. 뒤로 돌아보고 아내한테 엎드리라고 말하려고 했더니 벌써 엎드렸더라." (웃음)

   
 
  ▲ 아가페홈미션에는 구급차와 경찰차가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든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공동체의 한 식구가 문제를 일으켜 경찰이 출동했다. 공동체 다른 식구들에게 무슨 큰 일이라도 났냐고 물었더니, "뭐 늘 있는 일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이 전도사가 경찰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밥 팔아 공동체 살림 꾸리며, 타 선교단체 돕기까지

나중에는 마약 판매상들도 이 전도사가 나타나면 마약 판매를 멈추곤 했다. 갓 들어온 마약 판매상이 멋모르고 이 전도사에게 마약을 팔려고 했다가, 다른 이들에게 혼쭐 난 일화도 있다. 마약중독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모텔의 주인들도 이 전도사에겐 누가 어느 방에 있는지 귀띔해주곤 했다.

LA 지역에서 마약을 하는 이들에겐 전도사가 타고 다니던 '시에나'(도요다에서 나온 차종)와 그를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 '반짝이'도 덩달아 유명하다. 옆에서 이 전도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공동체 식구는 "우리 '반짝이'는 필드에서 유명한 개다. 모텔에서 마약을 복용하다가 개 짓는 소리가 들리면 '야, 반짝이다, 숨어' 하고 소리치곤 했다"며 웃었다.

이 전도사가 지난 시간을 더듬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아내인 이 씨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고, '맞아, 그때 그랬지' 하면서 이 전도사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태기도 했다.

아가페홈미션을 막 시작할 무렵에는 이 전도사가 벌어놓은 돈과 가게를 처분하고 남은 돈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갔다. 그 돈이 바닥나고 재정이 어려워지자, 2004년부터는 김밥을 만들어 내다 판 돈으로 공동체 살림을 꾸려왔다.

아가페홈미션은 그렇게 빡빡한 살림살이를 쪼개 몇몇 선교단체까지 돕기도 한다. 애리조나에서 인디언 선교를 하고 있는 안맹호 선교사는 아가페홈미션으로부터 선교 후원금을 받았던 사연을 들려주며,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기에 차마 그냥 쓸 수 없어서 고심을 거듭하다 지역 인디언 마약중독자들을 위해 사역하는 단체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 아가페홈미션 센터 거실에는 스케줄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마약이나 폭행 등으로 문제된 사람들 중 일부를 법원에 요청해서 감옥 대신 센터로 데리고 온다. 재활하기 위해서다. 그럴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법원에 가서 확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스케줄을 적어놓은 것이다.  
 
"차라리 감사해라, 드러나지 않은 죄가 더 무섭다"

아가페홈미션은 매일 세 번씩 예배를 드린다. 하루에 세끼 밥 먹는 건 당연해도 예배를 세 번 드리는 게 쉬울까 쉽지만, 아가페 식구들에겐 자연스런 일상이다. 예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찬양 신청곡이 쏟아졌다.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자신의 고백이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어느 때나 나를 바라보시고."

이 전도사의 설교는 거칠고 투박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때론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지만, 그가 욕하는 대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다시 마약에 손을 댄 공동체 식구들을 향한 욕설이 아니었다. 그 비판의 대상은 이제 마약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난 너보다 낫다고 여기는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마약쟁이들은 현대판 문둥이다. 사회에서는 물론, 가족에게서도 격리된다. 부모들로부터 '이 새끼는 평생 감옥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놈은 죽어야 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럼 내가 그런다. '이 모습이 바로 나와 당신의 모습'이라고."

"마약 끊고 나면 그런다. '난 이제 괜찮아. 더 이상 약도 안 하니까.'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니까 이제 다른 사람을 더럽게 여긴다. 사람들이 문둥병자를 더럽게 여겼듯, 드러난 죄만 더럽게 여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죄가 더 무섭다. 드러난 죄는 오히려 감사해라. 겁내지 말고 부끄러워 마라.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수년째 마약중독자들과 뒹굴어온 이 전도사도 마약중독에 정신 질환까지 겹친 사람이 가장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그런 친구들에게 맞아서 입술이 터지고 코피를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이 전도사는 그런 사람을 위해 아가페홈미션이 존재하는 거라고 연거푸 말했다.

* 아가페홈미션 (2205 S, Hobart blvd, LA CA 90018.  Tel : 323 - 734 - 7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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