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밟기'로 '성시화'한다는 말 믿어도 될까요?
'땅밟기'로 '성시화'한다는 말 믿어도 될까요?
  • 박지호
  • 승인 2009.10.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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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성 선교 행사가 '영적 한탕주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1. LA 다민족성시화운동, 그 이후

2008년 LA다민족성시화대회가 열린 지 꼬박 1년이 흘렀다. LA 지역을 성시화하자는 '거룩한 대열'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장장 6시간에 걸쳐 진행된 작년 행사는 정치인들을 불러다 통성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회개, 화합, 용서, 부흥을 부르짖었고, 낙태, 동성애, 파괴의 영을 물리쳐달라고 외쳤다. 영적 전쟁을 선포하며 타락한 문화에 대한 변화와 각성을 선포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사회적으로 실천되고 구현되는 전 복음(whole Gospel)"을 전하자며 다양한 기도 제목을 외쳤다.

"도시의 각종 악한 영향력을 물리쳐 주시고 도시 각 영역에 진정한 부흥을 주소서"
"미혼 청년들이 성적 순결을 지키고 십대 자녀들이 탈선하여 미혼모가 생기지 않게 하소서"
"어둠의 영들, 물질주의와 폭력과 전쟁의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게 하소서."
"각 도시마다 학교 교육이 성경을 바탕으로 세워지도록 하소서."

   
 
  ▲ 작년에 열린 다민족성시화 대회 때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당시 참여한 정치인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LA다민족성시화대회가 끝난 뒤, 지난 1년 동안 어떤 후속 조치가 있는지 계속 살펴왔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대회 때 나왔던 다양한 이슈와 관련해 실천과 운동으로 연결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며칠 전 열렸던 '인천국제성시축전'에 120명의 미주 지역 목회자들이 참여했던 게 LA성시화운동본부 측이 전하는 후속 행사의 전부다. '성시화'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대형 집회 한 번으로 해결하려는 '영적인 한탕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2. 또 다른 형태의 성시화운동, '땅밟기'

'땅밟기' 기도 역시, '하나님나라가 지역적이고 영역적'으로 임하길 기도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성시화운동에 해당한다. 일명 '여리고 기도'라고도 불리는 '땅밟기 기도'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가 밟는 땅을 다 주시겠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생긴 것"이다.

얼마 전 이란에서는 땅밟기 기도를 한다며 주변을 반복적으로 돌며 서성이던 한인 선교팀이 현지 경찰에 붙잡혀 곤혹을 치렀다. 2006년, 어느 한인 선교팀이 이슬람 국가 시내 한복판에서 '악한 영들을 대적한다'며 열심히 통성으로 방언 기도해 현지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땅밝기 기도의 기저에는 악한 세력과의 '영적 전쟁'을 치른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한 지역에 영적인 어둠의 세력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다고 보고 강력한 기도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여긴다.

   
 
  ▲ 최바울 대표는 "예루살렘의 주변 반경 3000KM에는 거대한 이스람 블록이 강한 진을 형성하고 있다며 사단은 이와 같은 원형의 어둠의 진을 만들어서 예루살렘을 향한 복음의 행진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터콥이란 선교단체다. 인터콥의 최바울 대표는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계속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행한 것뿐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 믿음으로 외쳤을 때 여리고 성이 일시에 붕괴되었다. 이처럼 10/40창을 향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어둠의 진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고 말했다.

현지 선교사들이 "수십 년에 걸쳐 사역해온 모든 것을 1주일 만에 파괴하는 짓"이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평화 행진'이니 '평화 축제'니 하는 것을 강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프간 사태 이후, "작년에 평화축제가 열렸으면 탈레반이 사라졌을 것"이라는 최바울 대표의 푸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영적 전쟁'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풀러신학교 김세윤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바울이 언제 버가모 교회에게 신전에 가서 뺑뺑이 돌면서 땅밟기 하라고 했나. 아테네 신전에 가서 뺑뺑이 돌았다는 말이 요한계시록 어디에 나와 있나. 땅밟기식 선교 방식이 한국 교회에 들어와서 난리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함으로 예수의 주권에 순종해서 사랑을 베풀고, 의를 행하고,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이다." (2008년 8월 4일, 남가주 목회자 학술 세미나에서)

중동 지역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김동문 목사는 "땅 밟기는 땅만 밟는 행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생활'을 뜻한다"며 삶이 없는 땅 밟기는 무의미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땅 밟기의 바른 의미는 그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을 품는 과정이고, 품고 사는 삶 그 자체라고 본다.…땅 밟기의 중심은 하나님의 그 땅의 백성들을 향한 관심을 품고, 그 땅의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함께 서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뉴스앤조이> 2006년 12월 20일자 '땅 밟기와 땅만 밟기' 중에서)

3. '땅을 밟으려면 이렇게 밟아야지'

그런 점에서 LA 근교 패서디나 빈민가를 변화시킨 하람비(해당 기사 보기)는 진정한 의미의 '땅밟기'를 보여준 경우다. 하람비는 매춘 소굴을 없애겠다고 음란의 영을 대적하며 땅밟기기도를 벌이지도 않았고, 갱단끼리의 총격전을 막겠다며 평화대행진을 벌이지도 않았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퍼킨스 박사의 삶이, 하람비의 존재 자체가 마약 딜러와 갱단을 밀어냈다.

   
 
  ▲ 지역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이 되어준 하람비. (사진 제공 : 하람비)  
 
하람비를 세운 퍼킨스 박사는 '도시의 각종 악한 영향력을 물리쳐달라'는 기도뿐 아니라, 빈민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음란한 영, 폭력의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기'보다 죽음의 교차로 한 모퉁이에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이웃이 되었다. '성적 순결을 지키고, 낙태가 없어지고, 이혼하는 가정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부르짖기보다 지역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이 되어주었다.(실제로 하람비 졸업생들은 흑인 가정은 물론이고, 일반 미국 가정의 이혼률보다 훨씬 낮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는 "왜 하나님은 스스로 고난을 당하지 않고서 사람을 구하실 수 없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되물었다. '왜 하워드(영국 형무소 개량운동가)는 유럽의 감옥을 변혁할 때 자기 집에 편히 거하면서 하지 않았냐'고, '무엇 때문에 리빙스턴은 고국에서 흑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으로 아프리카를 구원하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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