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은 가볍게
서론은 가볍게
  • 김기현
  • 승인 2010.02.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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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신앙'(2)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돌베개)에 나오는 일화다. 같이 징역 살던 분은 목수였다. 그가 집을 그리는데 순서가 우리와 영 달랐다. 대개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그런데 목수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도리·들보·서까래·지붕의 순서로"(90쪽) 그렸다. 여기서 선생은 현실과 괴리된 공부와 이론이 세운 구조물이 한순간에 붕괴하는 낭패감을 느꼈고, 건축이라는 단어를 보면 목수를 상기한다고 한다.

선생과 달리 나는 글쓰기의 서론을 생각했다. 시작이 너무 무거워서 아래가 받쳐 주지 못하는 그런 서론 말이다. 글을 열 때,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작하거나, 의욕이 넘쳐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늘어놓다가 용두사미가 되는 서론 말이다. 그런 글은 필시 주저앉거나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못한다. 해서 어떤 글을 쓸지를 계산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지붕부터 그리고, 기초부터 파헤치면,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였구나"(눅 14:30)라는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그런데 다름 아닌 바로 내가 망신을 당하는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내 속내는 '이쯤하면 잘 쓴 거지'라는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이참에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도 한 수 지도할 요량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의 눈높이를 배려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러니까 아내는 주부, 아들은 청소년의 대표 선수인 셈이다. 두 사람이 오케이하면, 그만큼 편안하게 술술 읽힐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돌베개)에 나오는 일화다. 같이 징역 살던 분은 목수였다. 그가 집을 그리는데 순서가 우리와 영 달랐다. 대개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그런데 목수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도리·들보·서까래·지붕의 순서로"(90쪽) 그렸다. 여기서 선생은 현실과 괴리된 공부와 이론이 세운 구조물이 한순간에 붕괴하는 낭패감을 느꼈고, 건축이라는 단어를 보면 목수를 상기한다고 한다.

선생과 달리 나는 글쓰기의 서론을 생각했다. 시작이 너무 무거워서 아래가 받쳐 주지 못하는 그런 서론 말이다. 글을 열 때,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작하거나, 의욕이 넘쳐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늘어놓다가 용두사미가 되는 서론 말이다. 그런 글은 필시 주저앉거나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못한다. 해서 어떤 글을 쓸지를 계산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지붕부터 그리고, 기초부터 파헤치면,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였구나"(눅 14:30)라는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그런데 다름 아닌 바로 내가 망신을 당하는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내 속내는 '이쯤하면 잘 쓴 거지'라는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이참에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도 한 수 지도할 요량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의 눈높이를 배려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러니까 아내는 주부, 아들은 청소년의 대표 선수인 셈이다. 두 사람이 오케이하면, 그만큼 편안하게 술술 읽힐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도 혼이 나서 수정하고는 예의 그 원고를 버린 통에 정확하지는 않은데, 대략 이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반응이라는 씨줄과 날줄이 교직하며 빚어 내는 드라마다." 내 기억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화려했다. 아내는 첫 문장부터 생각해야 할 단어가 대체 몇 개냐고 볼멘소리다. 아들은 첫 문장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하며, 충고를 곁들이기를 잊지 않는다. "아빠는 만날 책만 파지 말고 영화나 야구, 뭐 그런 취미 활동을 열심히 해서 글 쓸 때 자연스럽게 이용하도록 해 봐요. 그러면 정말 좋은 글이 될 텐데요." 당시 저서만 5권이었던 내 자존심이 일순 무너졌다. 서론의 시작이 무거우니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그래서 이렇게 고쳤다. "성경에는 무수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끈적끈적한 땀 냄새가 나고 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누굴까? 교우들에게 물어보았다." 현재 퇴고 중인 원고인데, 다시 보니 "성경에서 누가 가장 인간적인 인간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그다음은 "성경의 많은 인물 중,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끈적끈적한 땀 냄새가 나고 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누굴까? 해서 교우들에게 물어보았다." 이쯤하면 괜찮으냐고 다시 아내와 아이들에게 물어볼까?

아무튼 기억하자. 서론은 집으로 치자면 지붕이 아니라 대문이다. 열고 들어가 계속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서다. 사람으로 보자면 얼굴이다. 얼굴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지만, 처음 만난 사람으로서는 얼굴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첫인상이 글 전체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게끔 한다. 잔뜩 긴장한 얼굴보다는 가벼운 미소로 나그네를 환대하듯, 서론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조금 가볍게 시작하는 게 좋다.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에 나오는 글 중, 첫 문장을 몇 개 모아 보았다. 논문이나 평론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 길어 낸 맑은 생각인지라 그의 삶만큼 소탈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1937년 9월에 나는 일본 도쿄 혼마치의 '헌옷장수집' 뒷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유랑 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장터 버스 정류장에서 노인들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토록 핏대를 세워 가며 다투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들어 보았다." (십자가 대신 똥짐을)

"1992년 10월 28일 24시. 한국의 기독교인 중 50분의 1이 되는 2만 명이 이날을 간절히 애타게 기다렸다." (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그렇다고 가볍게 쓴다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서론의 기능 중 하나는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 주장과 의도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다. 때문에 글 전체의 주제와 관련되도록 해야 한다. 눈 밝은 이라면 첫 문장에서 글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위의 글도 마찬가지다. 헌옷장수의 뒷방에서 태어났다는 말로 운을 뗀 글은 선생의 고단하고 고달팠던 삶의 여로를 들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면서도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첫 문장에 뒤의 내용이 다 들어 있다. 가볍지만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서론 쓰기에 실패한 내 경험과 권정생 선생의 좋은 글을 보았으니 갓 글쓰기를 수련하는 이의 글을 볼까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서론은 글에서 내용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주제와 주장을 암시하여 본문으로의 교량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 또는 현관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이 예시문은 안성맞춤 대문이요, 집에 잘 어울리는 현관문이다.

"어릴 때 처음 본 바다는 마산 어시장의 선착장이다. 고깃배들이 시퍼런 바다 위를 미끄러져 다니는데, 집채만 한 물결이 무섭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바다를 처음 본 나는 배를 타지도 않았는데,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며 바다가 무서웠다."

'바다를 이기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다. 글쓰기 학교 수련생인 목사님이 성경 이야기를 매주 칼럼으로 써 오는데, 그 첫 번째 글의 서론이다. 구약에서 바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 한 마디로 간단히 거친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다. 주님은 우리 삶에 바다로 상징되는 온갖 겁나고 무서운 시련을 능히 제압하신다. 해서,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그 앞에서 당당하고 담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맺는다. 한 문단이 서론 전부인데, 간결하다. 글쓴이의 경험이라 무겁지 않고, 전달하려는 주제와 호응한다.

기도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요즘도 이런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는 그 능력으로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면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무소부재하셔서 어디에나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니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감찰하시고 보호하시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옵나이다."

부모 자식 간에는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아빠'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화는 시작한다. 자녀가 아빠에게 말을 걸 때처럼, 그렇게 가볍게 독자와의 소통을 시작하면 된다.

글쓰기는 두렵지만, 첫 문장은 막막하다. 글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는 말이 있겠나.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거다. 그럴수록 가볍고 작게 시작하는 게 좋다.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은 짐을 많이 꾸리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짐을 줄인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긴다. 분량을 계산하고 조금 짧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쓰고, 너무 어려운 단어는 되도록 피하고,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을 연습하자. 거창한 문장으로 글솜씨 과시하고, 상대를 압도하려다 뒷감당 못 한다. 지붕부터 올리지 마라. 어깨 힘 빼고 가볍게 시작하라.

김기현 / 부산 수정로침례교회 목사·<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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