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그 책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 최태선
  • 승인 2010.03.30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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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람들 (17)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살아내는 자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그 책의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 책의 사람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삶 한 순간, 한 순간은 그 책과 관련하여 규정지어지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러한 노력들이 쌓여가면서 그것들이 또 다른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쉬나>, <탈무드>, <미드라쉬>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책들은 분명 '그 책'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새로운 현실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쌓이다보니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이미 그 새로운 책들이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것을 지키려다 율법의 의와 인과 신을(마23:23) 버린 어리석은 소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열심이 특심한 것이 지나쳐 '그 책의 사람들'을 넘어 그 책의 주인들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23:24)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주님을 죽이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권사님 한 분이 날마다 열심히 성경 쓰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천천히 그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쓰시고 또 다 쓰시면 그것을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시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하루는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심이 특심한 것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책을 쓰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무엇에 관한 책을 쓰시냐고 하니까 하나님나라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라는 말이 제게 참 반갑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에 관한 어떤 책들을 읽으셨느냐고, 그리고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하나님나라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쓰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책은 어떤 책일까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분에게도 열심이 특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박사 학위가 청빙의 기본 요건이 되었듯이 책을 쓰는 것이 목회자들에게 또 하나의 필수 코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쓴 책에 의해 집회의 초청도 이루어지고 세미나의 강사나 패널로 초청되기도 합니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 대해 작은 우려를 표하고 싶습니다.

"책은 그러나 지식의 창고일지언정 아직 지혜는 아닙니다. 책에서 지혜가 나오지 않고 지혜에서 책다운 책이 나옵니다. 진정한 지혜의 인격은 책을 쓰지 않습니다. 지혜를 전할 뿐입니다. 아니 지혜의 삶을 묵묵히 살아낼 따름입니다. 예수도 석가도 소크라테스도 책을 쓴 일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받아썼을 뿐입니다." (이우근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 중에서)

진정한 지혜의 인격은 책을 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지혜의 삶을 살아가신 분들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요? 지혜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다 바칠 때에라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기가 발 딛고 선 곳에서 최선의 삶을 다 살아내려는 사람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온전히 받아드리고 자기 몸을 불살라 태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몰입이 일상화되면 책을 써서 기록해 두거나 보충해야 할 부분이 더 이상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위에 말씀드린 열심이 특심인 분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의 인격은 자신을 추구하지만 자신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에 몰입하기에 자신을 설명할 필요도 자신의 일을 해설할 필요도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남에게 인정받고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업적이 쌓여 자신을 얽어매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충분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기억되고 보존될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이해되어지고 판단되어진 그 자리에는 거짓이나 감정적인 과장이 사라질 것입니다. 좀처럼 객관적이 되기 어려운 인간들의 이해관계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거기에 가라앉은 앙금들은 순수한 결정체로 진리를 가장 많이 함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위한 소중한 지혜로 오래도록 세상 한 구석을 밝힐 것입니다. 

서가에 만 권 서책이 꽂혀 있어도 거기 담긴 지혜의 열매들을 마음속에 고스란히 옮겨 담을 수는 없습니다. 지혜는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돋아나는 싹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지혜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오직 책의 내용을 살아 내가 그 책의 사람이 될 때 책에 담긴 지혜는 나의 지혜로 살아납니다.

'그 책의 사람들'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복음은 항상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어졌습니다. 그런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나라 백성들입니다. 저 또한 그런 하나님나라 백성 중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책 한 권 쓰지 못한 자의 변이나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가들의 생각을 조금씩만 비틀고 그것들을 모아 잘 정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의 독서가 대가들의 어깨를 딛고 서는 지혜로운 방법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쓰기보다는 책을 살아내는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엔 신부님의 글이 그런 제게 힘을 더해줍니다. 사상과 견해와 개념과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은 좋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잘 받은 성직자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선악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어떻게 가는지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서 그 날의 여러 사건 속에서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의 경험을 담은 여러 책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생각의 가난입니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 속에서 책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보았던 불붙은 떨기나무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온 몸을 불사르고 싶습니다.

가난에 처하면 훌륭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난이 우리를 훌륭한 주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사실은 환대(hospitality)가 주는 역설입니다. 가난은 우리의 방어태세를 풀게 하고 원수를 친구로 바꾸어주는 내면의 경향입니다. 무언가 움켜쥐고 지킬 것이 있는 한 우리는 방문객을 적대자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 집으로 들어오세요. 제집은 당신의 집이고 제 기쁨은 당신의 기쁨이고 제 슬픔은 당신의 슬픔입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에게 지켜야 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가난을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과연 제가 원하는 대로 가난을 살아낼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입니다. 하지만 가난과 환대에 관한 신부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지식도 권위도 날선 판단력도 물질도 시간도 모두 내려놓고 환대의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렵게 책을 쓰신 분들에게 박수 쳐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 남은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듣는 '그 책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가난한 자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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