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노래를 배웁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노래를 배웁니다'
  • 최태선
  • 승인 2010.04.12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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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목사의 '평화의 사람들', 희망은 한마리 새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한다.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의 이 아름다운 시를 번역한 이는 장영희입니다.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인 그녀는 한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어렵사리 학교를 마치고 똑같은 교수가 되었는데도 늘 '장애인 교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유방암에 걸려 두 번의 수술 끝에 완치되었다고 안심했는데 척추로 전이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 그녀는 "나는 걸림돌이 디딤돌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오는 동안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걸림돌이었지만 언제나 디딤돌로 쓸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희망은 한 마리 새>를 번역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일 것입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제 끝날 거야. 넌 해낼 수 있어'라고 그칠 줄 모르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위 시의 내용은 변역자인 그녀 자신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하게 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인간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장 멀리, 가장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피조물인데, 대개는 마음을 잘못 먹어 눈앞의 현실에 매여 가장 좁고 작게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직 인간만이 지난 역사를 돌아볼 수 있고, 오직 인간만이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생명이 있는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시야가 제일 크고 넓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장 근시안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공중의 새보다도 들에 핀 들풀보다도 오히려 더 멀리 보지 못하고 더 많이 즐기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염려와 불안과 욕심에 눈이 멀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좁은 울타리를 치고 그 속에 갇혀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장벽을 가진 그녀이기에 집착한들 더 나을 것이 없는 그녀의 현실이 그녀로 하여금 현실 너머를 바라보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골짜기에는 언제나 불신과 불만과 절망이 있습니다. 막히고 꼬여 있고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몇 번 주먹을 휘두르며 원망의 소리를 질러댈 지도 모릅니다. 감정에 북받쳐 한동안 서러운 눈물을 쏟아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 감정의 격랑이 휘몰아친 이후에 알지 못하는 평안이 스며들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들었던 한 마리 작은 새의 속삭임은 막다른 골목이 사실은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합3:19)

이 노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터져 나온 노래입니다. 인간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노래를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절망의 구렁텅이가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희망의 노래를 배우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막장,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란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의 통로일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열어야 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걸어야 하는 그녀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만일 사흘 동안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그녀는 처음에는 답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후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걸어가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콘을 먹으며 걷는 모습을 보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조카 손을 잡고 파도치는 백사장을 걷고 싶어요. 파도가 치면 종종 뒷걸음치며 물러서는 소박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녀다운 대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대답에서 울려나오는 메시지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그녀의 소박한 마음입니다. 감사는 삶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또는 기쁜 일이 생겼을 때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찬미하고 감사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인생을 진솔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는 찬양이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높은 곳에 다니며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을 수 있다면 인간은 삶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것이라 말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삶을 완성했던 것일까요? 그녀는 2009년 5월 척추에 전이된 암으로 57년간의 길지 않은 인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허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녀가 살아서 보여준 모든 삶의 여정이 작은 감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극복할 수 없고 항거할 수 없는 장벽도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살았습니다. 감사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녹여내는 엄청난 위력을 지녔습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제 끝날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죽음 너머로 그녀의 생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까지도 이겨낸 그녀에게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고난과 죽음까지도. 그러기에 고난과 죽음까지도 우리 인생에게는 감사한 일이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녀에게 또 다른 '사랑의 빚'을 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사랑의 빚'은 빌려 준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제 삶을 살아 "아주 추운 땅, 아주 낯선 바다에" 있는 그 누구에게 꼭 그 빚을 갚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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