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망월동 국립묘지 2005년 9월 ⓒ 김민수 광주민주화운동 | ||
"계엄군이 쳐들어 옵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는 영락없는 북한 여성의 목소리처럼, 빨갱이의 목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 망월동 국립묘지 시민군을 형상화한 작품 ⓒ 김민수 망월동국립묘지 | ||
그렇지않다면 그렇게 많은 목사들이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며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목사는 거짓말이라고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사람인 줄로 알았던 것이지요.
▲ 망월동 국립묘지 그들의 죽음, 그들의 투쟁으로 맞이한 오늘이 부끄럽습니다. ⓒ 김민수 망월동국립묘지 | ||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죽지않았다면 목사가 되었을 류동운 열사는 저희 학교 선배님이셨습니다. 지금이야 학교 안에 '류동운 열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추모비를 처음 세울 때 전경들이 굴착기까지 동원해 학교까지 치고 들어와 학생들과 몇날 며칠을 대치하곤 했습니다.
▲ 망월동 국립묘지 아아 광주여! ⓒ 김민수 광주민주화운동 | ||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지 않았는데 벌써 30년, 그 사이 당신들을 팔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들도 꽤나 됩니다. 이른바, 변절자들이지요. 그냥, 자기들이 구국일념으로 그랬다고 끝까지 우기는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입니다.
▲ 류동운 열사의 묘비 류동운 열사는 대학교 선배이시다. ⓒ 김민수 | ||
대학 1학년 때, 당신의 묘지를 찾았지요.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경기도 성남에서부터 일주일 내내 걷고 또 걸어 망월동 묘지를 찾았습니다. 불어터진 발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장맛비가 억수로 내렸습니다.
▲ 광주민주화운동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주검을 이토록 잔인하게 다루는 계엄군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던가? ⓒ 김민수 | ||
마음 한 편으로 80년대 그 험난한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1987년 6월 항쟁까지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던 대학생활까지도 자랑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역사란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지요.
▲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전시실에 걸려있던 그림의 일부 ⓒ 김민수 | ||
당신들의 뜻을 이어받아 30년 동안 노력했더라면, 벌써 평화통일의 기반도 거의 다 만들어 놓았을 것 같은데, 이 사회도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었을 것 같은데, 모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국립묘지 사진전시실에서 담은 사진 ⓒ 김민수 | ||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좌파로 몰아붙이고, 빨갱이 딱지를 붙입니다. 여전히, 수구보수세력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전두환을 구세주처럼 옹호했던 보수 언론들은 반성도하지 않고, 그 엄청난 기득권을 한 번도 잃은 적 없이, 지금도 여전히 광기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 광주민주화운동 그들의 죽음이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김민수 | ||
▲ 광주민주화 운동 벗들이 신발....80년대 시위현장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다. ⓒ 김민수 | ||
이젠, 젊은 세대에겐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동지였던 이들, 한때 동지였던 변절자들은 그런대로 한 세상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그동안 맞이했던 그 어느해 5월보다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김민수/ 목사
* 한국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