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여, '정답' 대신 '신비'를 제공하라
목회자여, '정답' 대신 '신비'를 제공하라
  • 박지호
  • 승인 2010.08.13 04:05
  • 댓글 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2) 포스트모던 시대의 목회

‘포스트모던 시대에 맞지 않는 모던적 목회 방식은 무엇이고, 그 대안은 있는가.’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둘째 날, 김영봉 목사는 새로운 시대를 읽고 그 시대에 유효한 목회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김 목사는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The Church on the Other Side>에서 제시한 ‘12가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김 목사의 강의 내용을 요약해 옮긴다.

   
 
  ▲ 김영봉 목사는 새로운 시대를 읽고 그 시대에 유효한 목회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전 목회 방식과 가능한 단절하라(Maximize discontinuity). 모던 시대의 목회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방식의 목회가 필요하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교회 갱신(Renewed Church)도, 교회 회복(Restored Church)의 차원도 아닌 교회를 재구성(Reinvented Church)해야 한다고 말했다.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어떻게 이들에게 교회가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새로운 목회를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의 목회의 방향에 대해 재고하라(Redefine Your Mission). 목회의 초점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 더 나은 그리스도인들(More Christians, Better Christians)"에 두고 두 초점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교회의 문지방에 서성이는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일에만 집중해서 영적 성장에만 관심을 쏟으면 교인 숫자도 줄고 영적 성장도 저하될 수 있다. 영적인 활력과 변화가 교인들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면 그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숫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세속적 무신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모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현관인가, 거실인가, 부엌인가

시스템으로 사고하는 법을 익혀라(Practice Systems Thinking). 포스트모던 시대는 통합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목회 프로그램을 단기적(quick fix)으로 만들지 말고 연관된 시스템으로 인식하라. 프로그램을 평가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하라. 이 프로그램이 헌신되지 않은 사람들을 헌신자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가. 이것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더욱 헌신하게 만들 것인가? 이 두 질문에 초점을 두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려라. 목회 전체를 조망하며 각 프로그램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교회를 집에 비유하며 세 가지 영역(현관, 거실, 부엌)으로 나눠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현관에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방문자다. 거실에 있는 이들 역시 손님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대신 부엌에 있는 사람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섬기는 사람들이다. 목회를 할 때 교인들이 어디에 있는 사람들인지 잘 구분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설교 시간에 헌금 이야기나 교회 일과 관련된 잔소리는 절대 안 하려고 한다. 반면에 1년에 한 번씩 임직된 분들이 교육 받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는 그야말로 부엌에 해당한다. 그때는 아주 분명하게 교회의 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가르치려고 한다. 가끔 부엌에서 할 이야기를 현관에서 하는 목회자가 많다. 간혹 몇 달 혹은 몇 년을 주저하면서 어렵게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는데, 교회 살림에 관한 잔소리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불편하겠나.

전통을 팔지 말고 예수를 팔아라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이 가진 전통을 버려라(Trade Up Your Traditions for Tradition). 'Church tradition’과 ‘Christian tradition’을 구분하고 후자에 집중하라. 교파 신학에 대한 강조와 충성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얼마 전 교단에서 2세 목회와 관련된 컨퍼런스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하면 한어권 회중(Korean ministry)이 역동적인 영어권 회중(English ministry)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주제였다.

크게 3가지 방법이 나왔는데 주목할 만하다. '한어권 회중(Korean ministry)이 영어권 회중(English ministry)을 통제(control)하지 말고, 지원(support)하라', '차세대(Next generation)라 생각하지 말고 현세대(Now generation)라고 여겨라', '교회에서 감리교주의(methodism)를 팔지 말고 예수를 팔아라'였다.

40세 이하의 젊은 성도들은 칼빈이니 웨슬리니, 침례교니 감리교니 하는 교파적인데 관심이 없다. 특히 이민 교회는 교파에 관한 충성심이 굉장히 약하다. 더 이상 교파의 색깔과 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 내 신학은 매우 감리교적이지만 그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사용하려고 한다.

예술과 과학으로서의 신학을 살려내라(Resurrect Theology as Art and Science). 신학을, 정답을 발견하게 하는 기술적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리와 아름다움(truth and beauty)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매체가 곧 메시지다. 메시지(Message)와 매체(Medium)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완전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주제 강의가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의 전체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종교적 언어 대신 상식적이고 평범한 언어 사용하라

새로운 변증법을 고안하라(Design a New Apologetic). 포스트모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전 변증학(Old Apologetics)의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의 허점이 있고,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Defensiveness)일 수 있고, 대화 상대자들을 적대자(Combativeness)로 만들기 쉽고, 말이 많아지고(Wordiness), 신앙의 본질에 천착하기보다는 고고학 등의 주제로 흐를 수 있고(Distraction),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장과 왜곡이 일어나기(Dishonesty) 쉽다.

반면 새로운 변증학은 '정답' 대신 '신비'를 제공하고(Offer not 'answers' but 'mysteries'), 각론보다 본질을 추구하며(Not minutiae but essentials), 신빙성의 강조보다 납득시키려 하고(Don’t push credibility alone; also stress plausibility),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를 진리를 향한 여정의 동반자로 여기며(People of other faiths or no faith as colleagues on the way to the Truth), 이해를 강요하기보다 눈높이를 맞춰준다(Don’t rush people; keep a healthy pace).

새로운 수사학을 배우라(Learn a New Rhetoric). 언어와 행동의 일치(Words plus deeds)가 중요하다. 말로 설교하고 말로 믿음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삶을 통해서 내가 믿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진리의 언어는 작고, 단순하고, 부드럽지만(Words of truth to be fewer, simpler and softer) 영향력 있다.

신비를 제거하는 언어가 아니라 신비를 드러내는 언어(Words as servants of mysteries, not remover of them)를 사용하고, 종교적 언어를 제한하고, 상식적이고 평범한 언어 사용(Words to be less religious, more common, more earthy)하는 게 좋다. 이야기의 힘을 강조(Power of story to be appreciated)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두막> 같은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신학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이고 이야기지만 웬만한 신학책을 읽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좋은 스토리가 갖는 힘을 잘 보여준다. 

과감하게 버려라

교회가 변할 시점이 되면 과감하게 버릴 것을 버려라(Abandon Structures as They Are Outgrown). 교회의 크기, 교인의 숫자, 가지고 있는 자원, 전략에 따라서 교회 구조를 바꾼다. 구조나 제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한 시대에 유효했던 구조가 다른 시대에는 장애물이 된다. 성령의 역사와 흐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민첩하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리더를 보호하라(Save the Leaders). 교회의 변혁을 시도하는 지도자들은 대단한 모험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 개인에게 요구하는 희생은 엄청나다. 이 같은 지도자들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는 조직 운영 전문가(organizational technician)가 아니라 영적인 현자(spiritual sages)여야 한다. 교회 지도력은 ‘사랑과 영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 정책의 변화를 꾀하라(Subsume Missions in Mission).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있고, 그 결과도 점점 부실해지고 있다. 기존의 선교와는 다른 정책과 전략을 세워 새로운 선교 활동을 시도하라. 기존의 미션을 돌아보면서 바른 미션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기존 선교와는 다른 지난 금권과 뭔가 시혜적인 태도를 가지고 제3세계를 복음화하려고 했던 선교적 태도가 수정이 되고 선교 신학적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좀더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멀리 내다보고 목회하자는 것이다.

“모던 시대는 경영자형 목사를 원했지만”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시대는 어떤 목회 리더십을 요구할까. 모더니즘 시대의 독점적 일방적 리더십에서 공유와 참여적 리더십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위가 권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선 리더십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제시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리더십 패러다임 전환이다.

“성경 분석가보다 영적인 현자가 되라(From Bible Analyst to Spiritual Sage). 계속 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From Broadcaster to Listener). 테크니션이 되지 말고, 영적인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가 되라(From Technician to Spiritual Friend). 전사나 세일즈맨이 아니라 댄서가 되라(From Warrior/Sales Man to Dancer). 아마추어가 되라(From Careerist to Amateur). 목사는 언제나 대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다(From Problem-solver to Co-quester). 변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하는 사람이다(From Apologist to Apologizer). 위협하고 가르고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품고 끌어안는 사람이다(From Threat to Includer). 모더니즘 시대는 목사가 해답을 알고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구도자로서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존재다(From Knower to Seeker). 원맨쇼보다는 팀 빌더가 되라(From Solo Act to Team Builder).”

존 오키프는 “모던 시대는 경영자형 목사나 카리스마 있는 목사를 필요로 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는 시인, 예언자, 이야기꾼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모더니티 시대는 교인들을 제자화하기 위해 만들고(making), 찍어내고(molding), 훈련하고(training), 연습시켰다(drilling).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는 제자를 기르기 위해, 다듬고(forming), 여행하고(journeying), 함께 자라간다(growing together). 제자됨은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지속적인 여정을 걷는 데 있다. 지도자는 ‘답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함께 묻는 자’여야 한다.

* 후속 기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eony73@yahoo.com 2010-09-20 09:17:50
몇번이고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황남덕 2010-08-25 00:21:27
많은 분들의 격려와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완성시키리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걸음씩 함께 가고 싶은 것입니다.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기사를 보고 글을 남기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함께 가는 여정위에서 서로 의지하는 길 동무들이 되고자 합니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징검다리가 되겠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일반 성도님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이번 컨퍼런스에 한 집사님 부부도 참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achoi 2010-08-22 23:25:14
미국에 계신 목회자분들의 도전과 고민이 많이 논의된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평신도인 저로서도 이런종류의 주재들은 관심이 많습니다. 평신도를 위한 이런 세미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pearlfisher 2010-08-16 10:46:31
참석자로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저 자신의 목회에 큰 도움과 도전이 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다만 내용이 정말 많고 깊었기에 현장의 진지한 분위기를 기사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 새겨 볼만한 내용이니 판단하시기 전에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yy 2010-08-16 08:40:43
인신공격과 별로 유익하지 않은 비판이 꽤 있군요. "너나 잘해라" 식의 태도는 곧 닫힌 마음의 증거라고 봅니다.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다면, 과연 무엇이 현학적이었고 형이상학적이였는지 그 이유를 말해야 비판다운 비판이 될 것 같네요.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라고 하는데, 과연 형이상학적이 뭘 의미하는지 아시고 하는지 일단 궁금하고요, 컨퍼런스의 주제 자체는 포스트모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아닌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선포하고 시대에 예언자적 소리를 내느냐가 주제였던 걸로 압니다. 오히려 위의 글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라기 보단 아주 실용적인 이야기들로 들리는데 말이죠.

비판다운 비판을 위해 몇가지 제안합니다.
1. 수맥원님: 왜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지요? 님께서는 형이상학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2. dap님: 뭐, 별로 제안할 건 없네요. 말꼬리 잡기라서...
3. 교인님: 김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서운하게 있으셨나 보군요. 직접 김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시는게...
4. 쓸데없는님: "쓸데없는" 비난 (비판이 아닌) 입니다.

댓글 잘 안다는데,,, 이런 비판같지 않은 비판, 즉 비난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불쾌해지는게 영 불편해서 이렇게 댓글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