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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머징 교회는 여전히 논쟁의 중요 대상이다. | ||
미국의 기독교 서점가를 방문하면 이머징 교회에 관한 다양한 서적과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이머징 교회 관련 도서를 따로 분류해놓을 정도다. 이머징 교회 현상이 미디어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홍보 때문에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젊은 세대가 많고 그 수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유령처럼 서구 교회를 배회하던 이머징 교회 운동이 21세기 교회의 중요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에 대한 비판, '교리'와 '영성'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현상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젊은이들의 급속한 이탈로 고민하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나, 이미 쇠락을 경험하고 있는 주류 교단 교회들에게 이 현상은 뜨거운 감자다. 교회의 미래를 위한 대안인가, 교회를 위협하는 운동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 되고 있다.
보수 복음주의권은 이머징 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D. A. 카슨,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부흥과 개혁사>의 <잘못된 기독교 분별시리즈>를 통해 한국에 소개 된 책들 역시 이러한 관점을 담고 있다.
이들의 논쟁은 크게 교리와 영성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머징 교회들이 보편적 진리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정신을 받아들여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상대화 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이머징 교회가 추구하는 영성이 실제로는 뉴에이지운동 등에 영향을 받은 혼합주의 영성이라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에 대한 비판서인 D. A. 카슨의 <이머징 교회와의 대화: Becoming Conversant with the Emerging Church>(한글로는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로 출간)가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카슨은 이 책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열거한 후, 이머징 교회가 그 영향에 물들어 있다고 진단한다. 그 예로 이머징 교회 운동의 이론가인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스티브 차크를 선택하여 비판한다.
비판은 좋은데, 성급한 일반화는 좀…
그러나 이머징 교회 운동의 참여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피상적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신학적 관점의 이머징 교회들이 존재함에도, 카슨은 특정 부분과 인물을 부각시켜 왜곡했다는 것이다.
스코트 맥나이트는 ‘이머징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이 책이 제목과는 달리 이머징 교회 참여자들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써졌다고 말한다. (비판의 표적이 된 맥클라렌 역시 카슨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표명했다.) 또한 이머징 교회 운동 전반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한 채, ‘이머전트 빌리지’(Emergent Village) 그룹과 같은 일부 진영을 전체 이머징 교회 운동으로 상정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문제는 카슨의 비판이 핵심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카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 인식론이 문제라는 전제 하에, 그에 영향 받은 이머징 교회의 원리 자체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맥나이트는 대다수 이머징 교회가 포스트모더니즘 (탈 근대주의)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티 (탈 근대성)의 현상에 적합한 교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대응한다. 핵심은 인식론이 아니라 교회론이라는 것이다.
도그마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보다, 열린 질문 ▲ 교회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 이머징 교회의 핵심이다.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등은 이머징 교회가 칭의, 속죄와 같은 복음주의 핵심 교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보수주의자인 이들의 관점에서는 복음주의적 교리가 타협할 수 없는 진리다. 하지만 이머징 교회에겐 이러한 교리적 접근 자체가 자신들이 극복하려는 모더니즘의 방식이다.
이들은 진리가 조직신학적 체계의 교리에 갇혀 있지 않고, 종말론적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고 믿는다. 도그마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보다, 열린 질문으로 함께 걷는 믿음의 여정을 통해 진리는 발견 된다고 여긴다.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진리의 핵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진리를 상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진리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고, 복음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교리로 축소된 복음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혼합주의적 영성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개신교 전통이 잃어버린 영성 훈련을 되살리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이머징 교회는 지난 2000년 교회사에 존재해온 가톨릭, 동방정교, 아나뱁티스트 등의 다양한 신학적 관점과 실천에 대해 열려 있다. 수도원 운동, 관상, 신비주의, 아이콘, 급진적 제자도, 공동체 등의 영성을 실험하고 그속에 담긴 소중한 유산을 되살리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문한다.
이 외에도 이머징 교회들의 동성애와 낙태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 전쟁 반대, 친민주당적 정치 성향, 자유로운 문화적 취향, 제도 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 등이 비판이 대상이 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머징 교회들은 이 부분들에서 진보적 입장이고, 비판자들은 주로 보수적인 편이다.
복음주의 내부에서 시작된 이머징 교회 운동은, 현재 복음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포스트 복음주의 입장에 더 가깝다.(포스트 복음주의 신학자 N. T. 라이트는 이머징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다.) 그 실천 역시 개신교 복음주의라기보다는 다양한 전통이 혼합된 형태이다. 이들의 시도는 기독교의 진리에서 일탈하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의심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고, 실험을 통해 '오래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일까?
이머징 교회 배우기 전에 고려할 것
필자는 이머징 교회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이해한다. 새로운 실험은 위험 요소를 동반하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운동은 오늘의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와 미주 한인 교회는 이머징 교회 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대한 민감성과 적절한 실천, 복음의 총체성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 기존 체제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실험 정신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들의 고민과 진의를 이해하고 열린 마음의 대화를 추구할 때 교회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머징 교회 운동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한다.
▲ 이머징 교회에게는 의심을 통해 진리를 찾는 것이 믿음의 방식이다. | ||
이것이 이머징 교회를 그대로 답습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들의 관심사가 우리의 관심사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머징 교회를 하나의 모델로 설정하고 따라한다면 지금껏 한국 교회가 행해왔던 실수, 즉 미국 교회를 그대로 이식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교회가 필요하다.
둘째, 이머징 교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이머징 교회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상황에서 피어난 운동이고 그 현실에 적절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포스트모던 문화에 깊게 영향을 받은 세대를 위한 교회다. 다른 상황 속의 교회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는 스스로의 상황화가 필요하다. 전근대와 근대, 포스트모던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 포스트모던적인 접근이 적절한지 물어야 한다. 이민자, 소수자, 변방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미주 한인 교회의 현실에 교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찾아야 한다.
셋째, 이머징 교회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이머징 교회의 핵심은 교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론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교회의 꿈을 담은 갱신운동이다. 필요하다면 교회의 신학, 구조, 실천, 방향조차 바꾸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교회의 절대적 영향 하에 있는 한국 교회에는 조만간 (혹은 이미) 이머징 교회의 바람이 불 것이다. 미국의 구도자 예배를 수입하여 열린 예배로 만들었듯, 열린 예배가 지나간 자리에 이머징 예배가 시작될 것이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두운 조명에 초를 키고 몽환적 음악 스타일을 도입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진정 이머징 교회를 도입하려면 제대로 그 정신을 살려 교회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게 순서다.
이머징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이 운동은 한국 교회에 의미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몇 가지 형태를 도입한 후 이름을 붙여 교회 성장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머징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이름을 내걸지 않아도, 예수의 길을 따르며 교회 공동체의 갱신을 위해 몸부림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이머징 교회다. 그리고 우리가 꿈꿔야 할 교회는 이머징 교회 그 너머에 있다.
박상진 기획실장/ 미주뉴스앤조이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