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독교 근본주의 결탁은 반복음적 재앙 초래"
"냉전·기독교 근본주의 결탁은 반복음적 재앙 초래"
  • 백정훈
  • 승인 2011.03.11 13: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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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선생,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 운동은 수레의 두 바퀴

지난 1월,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백종국·오세택·박종운·정은숙)가 2기 출범을 선언했다. 2기에는 6명의 교계 원로가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중에 한완상 선생(새길교회)이 있다.

   
 
 

▲ 한완상 선생. 진보 진영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가 최근 교회개혁실천연대의 고문을 맡는 등 보수적인 복음주의 그룹과 연대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복음주의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한완상 선생은 부총리 겸 통일원(현 통일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상지대 총장 등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그러나 고생도 숱하게 했다.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두 번이나 서울대 교수 자리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망명을 갔고,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생활도 했다. 그는 저 높은 곳에 올라가 보았고, 저 낮은 곳에 내려가 보았다. 영욕의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은 변질하기 마련인데, 한완상 선생은 시종여일했다.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비굴하지 않았던 것은 신앙의 힘 때문이다.

그가 어릴 때는 보수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신학은 미국 망명 시절 진보적인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감성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진보성과 감수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현역에서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주로 진보 진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 진영, 그중에서도 복음주의 진영과 자주 만나고 있다. 이번에 개혁연대에 이름을 거는가 하면, 신학연구원 느헤미야가 개원할 때 격려했고, <뉴스앤조이>에서도 지도위원직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

최근 들어 복음주의 진영의 주요 화두인 교회 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동기나 심정이 궁금했다. 그의 속내를 듣기 위해 2월 말 서울 압구정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한완상 선생은 복음주의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교회 개혁이 사회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복음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복음주의권의 메가 처치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그는 메가 처치가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터뷰는 2시간이 넘도록 진행됐다.

이번에 개혁연대의 고문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그동안 설교 등을 통한 교류는 있었지만 멤버십을 갖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메가 처치 때문에 불거지는 일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개혁연대가 교회를 개혁하는 일을 알차게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주의권에서 교회 개혁을 위해 꾸준하게 일해 온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복음주의권에서 교회 개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 오면서 교계 지도자들을 각성시켰습니다.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은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에큐메니컬 그룹에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한국의 인권, 평화 등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올곧은 목소리를 냈지요. 그런데 지난 10년간은 잠잠했습니다. 동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사실 에큐메니컬 그룹 지도층에는 교회 개혁 운동을 추진할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반면 복음주의권은 그 활동 영역을 넓히며 움직이고 있는 듯합니다. 1960년대에서 최근까지 복음주의권은 건강한 사회적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적 입장에 머물렀죠. 그런데 최근 들어 복음주의권 안에서 교회 개혁이라는 신선한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복음주의권에 희망의 싹이 돋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보시면서 희망을 느끼셨습니까?

최근에 북한을 지원하는 운동 단체의 연차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가 보니 기장, 예장통합, 감리교 등 에큐메니컬 진영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출신 사람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더군요. 예장합동, 고신 등 대개 보수적인 복음주의권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고 힘을 보태 주는 운동에도 복음주의권이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음주의가 갖는 개인 윤리에 대한 성실성과 에큐메니컬이 가진 진보적 실천이 합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게 늘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복음주의권의 활동을 보면서 두 가지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죠.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은 밀접한 관계

복음주의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총재님은 진보적인 신학을 했고, 사회 활동도 진보 진영에서 주로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교회 개혁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의아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이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메가 처치는 급속도로 세속화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커질수록 소통이 없고, 비민주적인 조직의 문제가 두드러집니다. 부패한 모습은 더 속살을 드러내고, 신앙과 신학도 점점 배타적이고 되고, 세속적인 권력을 닮아 갑니다. 메가 처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교회 안에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따지고 보면 교회 밖의 구조적 비리의 표현이구나, 세속 권력의 잘못된 것이 교회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구나 생각했죠.

메가 처치의 문제는 교회 안팎의 부조리가 합쳐져서 생겼다고 봅니다. 교회 개혁이 단순히 개교회의 잘못된 것을 고친다거나, 교회 정관을 만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개혁이 단순히 개개의 교회를 개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속한 역사적인 상황, 구조, 제도를 개혁하는 차원으로 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교회 개혁 운동을 지지하거나 참여하는 분 중 대다수는 교회에서 상처 받고 나서야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분들입니다. 문제는, 그런 분들 중 상당수가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문제와 사회 문제에 대해서 정반대의 잣대를 가지고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분들을 어떻게 껴안고 가야 하는지 참 어렵습니다.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교회 안의 비복음적, 반복음적 현상들이 교회 밖에 있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이 역사를 후퇴시키는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메가 처치의 비리들이 일반 언론과 비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부각되면서, 세속적인 일에 침묵하던 보수적인 신앙인들도 교회 안에 있는 모순들이 바깥의 모순과 유사하구나, 밀착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과의 관계는 최악입니다. 최악의 상황은 냉전 근본주의에서 비롯했습니다. 냉전 근본주의는 북한은 악이고 우리는 선이다, 북한을 힘으로 흡수 통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냉전 근본주의의 온상이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를 믿는 사람은 냉전 근본주의로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이 둘은 사촌이 아니라 쌍둥이죠. 최근 조계사에서 어느 목사가 불교인을 향해 빨갱이라고 소리쳤는데, 이런 발상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냉전 근본주의가 딱 붙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교회 개혁이 단순히 개교회의 개혁이 아니라 교회 밖의 거대한 이 시대의 이념과 권력에 맞물려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식이 변화되어 간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교육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 문제와 사회 문제가 맞물렸다, 여러분이 착각하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복음주의권에서 복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시 공부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복음주의'에는 관심이 없지만 '복음'에는 대단한 관심이 있습니다. 복음주의가 수구화되는 이유는 '주의'는 갖고 있지만 '복음'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짜 내용을 알면 복음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동시에 요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 영혼 구원만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왜곡

지금 우리 시대에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갈릴리 예수님의 복음 운동입니다. 복음 운동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사랑의 새 질서 운동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준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불가피하게 사랑에 기초해 있습니다. 무력과 폭력, 탐욕에 기초하는 그 당시의 지배 질서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면서 추상적인 담론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옛 질서와 새 질서가 부딪치는 현장에서의 실천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자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옹호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급진적인 변혁 운동이었죠.

예수가 꾸린 밥상 공동체를 한번 살펴보죠. 당시 유대인의 식사 자리에는 죄인, 여자, 이방인이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소위 '쌍놈'으로 불린 사람들이죠. 율법주의적인 정결 체계에서 보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유대교 신자들의 밥상에 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가장 더럽다고 여겨진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 운동을 하신 것이죠. 예수의 사역이 얼마나 구체적이었습니까.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사회의 잘못된 틀을 사랑과 자유, 공의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 한완상 선생은 복음주의가 개인 영혼에 국한된 속죄론적 복음에서 벗어나 예수가 하나님나라 운동을 이끌며 행한 구체적인 실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그러나 복음주의가 가르치는 구원은 사도바울의 입장을 한쪽으로 왜곡시킨, 철저하게 개인 영혼에 한정된 교리적 복음입니다. 예수는 내 개인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서만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돌아가신 분이다, 예수는 개인 영혼의 구원자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복음에 그런 차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는 복음 운동의 끝자락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복음 운동의 실천적인 내용이 추상화되고 배제된 채 속죄론적 메시지의 일부만을 복음의 전부라고 믿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음주의권은 주기도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합니다. 사실 주기도문은 주님이 직접 가르치신, 주님의 비전이 담긴 기도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의 핵심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런데 주기도문에는 '복음'이나 '그리스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속죄'라는 말도 없지요. 거기에는 사랑과 공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공의와 사랑, 평화와 관련된 실제적인 문제이지, 거기에 '개인 구원'이라든지 '복음'이라든지 '교리'라든지 '삼위일체' 등에 연관된 메시지는 일체 없습니다. 주기도문만큼 신성화된 로마 황제 치하에서 저항적인 문서가 없습니다. 모두가 황제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고백할 때 '로마 황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유신 시절에 서울대에서 쫓겨난 이유 중 하나가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성명을 발표할 때마다 감동과 함께 긴박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정말 주기도문이야말로 그런 짜릿짜릿한 역사적, 실존적 느낌을 동시에 주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에는 절박한 역사적 실천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복음주의권에서는 알리고 교육해야 합니다.

복음주의의 배타성에 대하여

복음주의가 복음에 대해 편협하게 이해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복음주의의 배타성입니다. 이런 배타성은 봉은사 땅 밟기, 얼마 전 일어난 조계사 소란 등의 사건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런 사건은 기독교만이 진리를 갖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하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흔히 배타성의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줄 수 있는 분이고, 교회만이 구원의 방주이기 때문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속 좁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랑의 '아빠'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주 만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지배는 독선이 아니라 열린 소통의 사랑을 통한 지배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의 참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걸린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때 신앙이 얕은 베드로에게 이런 유혹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처갓집에 치유 센터 간판을 걸면 장사가 되겠구나'.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어느 공간이나 집을 센터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그곳에 모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직접 그들을 찾아가셨죠. 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메가(mega)의 센터가 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을 찾아가야 하는데. 센터가 되면 문자 그대로 중심이 되어 그곳에 파워가 집중되고 서열과 차이가 생깁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인이 아닌 객체가 됩니다. 중심만 살찌고 그곳에 힘이 쏠리게 되지요. 반면 변두리는 을씨년스러워집니다. 예수는 바로 그 세속적 권력의 중심을 해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의 비전을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떠돌이가 되어 복음을 실천하셨지요. 중심을 해체하는 것이 복음의 한 실천적 모습입니다. 복음의 실천에는 각자가 다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에 어떻게 배타성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디를 중심으로 확고하게 잡으면 거기에 배타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을 때 자기 해체의 길을 안내하신 것 같습니다. 길은 밟아야 하니까, 밟아야 길이 되니까 나를 밟아라,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또 나를 밟고 자유롭게 하는 진리로 나가면 마침내 모두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메가 처치는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

복음이 중심을 해체하고 센터를 지양한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씀에 따르면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는 메가 처치는 복음에 위배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당했다는 것의 참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내용에 절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믿어요. 젊은이들이 판사·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절에 들어가 머리를 빡빡 깎고 수양하듯 처절하게 공부합니다. 그곳에서 나중에 판사·검사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비전을 한때 품기도 합니다.

세속적으로도 이런데 예수님처럼 엄청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려면 운동의 목표가 뭐가 되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뇌하고, 깊이 성찰하고 싶은 것은 너무 당연하죠. 하나님이 이 절박한 시대(로마의 식민지 시대)에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예수님은 굉장히 고심했을 겁니다. 그 고심에서 비롯한 것이 광야의 시련과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의 비전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려는 유혹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 시험의 내용 전부가 메가(mega)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사탄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시작합니다. 저 돌을 떡으로 바꾸면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힘을 보여 줌으로써 메시아 운동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구름처럼 너를 따를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 곧 메시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유혹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떡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죠. 사탄은 두 번째 시험에서 예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어서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엄청난 힘의 과시입니다. 떨어져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어기고 살아난다면 초자연적 카리스마를 보여 줄 수 있죠. 예수님이라고 왜 그런 초자연적 권력을 갖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 유혹을 물리치셨죠. 세 번째 시험은 세상 모든 걸 다 주겠다는 것이었죠. 그것은 군홧발로 확장한, 세계를 정복한 로마 권력을 주겠다는 유혹이었죠. 그러나 예수님은 권력으로 지배하려는 유혹을 이겨 냈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꼬드길 때 엄청난 메가적인 힘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니 사탄의 시험에 낙방한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여 메가 권력, 메가 금력, 메가 교회를 차리고 싶어 하지요. 나는 메가 처치 목사님들이 광야의 시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 복음서의 저자들이 광야의 시험 메시지를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하기 직전에 강조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운동을 하는 내내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예수 운동을 하려는 수만 명이 구름처럼 따라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주님은 조용히 메가(mega) 군중을 떠나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유혹과 씨름하는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졌습니다. 목회자들은 광야의 시험에 담긴 이 깊은 의미를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하는 현장에서 항상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 한완상 선생은 복음에 충실하다면 메가 처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메가 처치 목회자들이 예수의 공생애 시험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그렇다면 메가 처치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은 무엇입니까.

목회자들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엄청난 부를 쌓으려는 유혹에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메가 처치를 이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교인 머리 하나하나가 떡이 될 돌같이 보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야, 우리 교회가 1만 명이 되면 100억 원의 빵의 힘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쉽죠.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큰 교회일수록 담임목사와 그 밑의 부목사, 전도사 등 부교역자의 월급 격차가 세상의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근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스캔들을 보면 그 교회 목사는 수억 원을 연봉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일수록 부교역자들의 월급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교회를 키우면 그 안에 사특한 불평등이 생기게 되지요.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교회 재정을 자기 쌈짓돈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크게 되면 부패는 불가피해집니다. 또 거기서 불평등과 불만이 생기면 사탄이 활동할 마당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개신교 지도자가 없는 이유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여쭈어 봅니다. 다른 종교의 경우 고 김수환 추기경,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 고 법정 스님 등 존경받는 지도자들 때문에 그 종교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에는 그런 인물이 없습니다. 얼마 전 김준곤 목사님이나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개신교 내에서만 안타까워했지 사회적 반향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20년이 됐습니다. 초기 개신교 지도자들은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했죠.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월남 이상재,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선생 등 하나같이 기독교 신자이면서 민족의 지도자로서 존경받았습니다. 장공 김재준, 함석헌 선생 등은 기독교 복음과 민주화가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개신교 안에서 그런 지도자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왜 씨가 말랐나요. 왜 그런 리더십이 내려오다가 지난 20~30년 사이에 맥이 끊어졌을까요. 그만큼 한국 개신교가 민족사, 정치사에 있어서 소금과 빛이 될 인물을 못 길러 냈다는 것입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교세가 약했던 개신교 역사 초기에 오히려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가 나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메가 처치 지도자들은 자기 교회에 수십만 명의 신자들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런 지도자가 거기서 안 나오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원인은 예수의 복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워요. 요즘 교회를 지배하는 가치는 값싼 축복과 승리주의, 특히 천박한 편법주의, 속도 지상주의가 되었습니다. 지난 3년간 더 심해졌습니다. 이 정부가 소통이 없는 것도 속도주의 숭배 때문입니다. 불도저로 밀어붙이는데 무슨 소통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런 속도주의 숭배가 교회 안에서 갈채를 받는 형국입니다. 오늘 신앙의 선배들이 살아 계셨다면 잘한다고 하겠습니까. 천박한 출세주의와 성공주의가 판치는 교계 풍토 속에서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겸손하면서도 용기 있는 사회적 인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풍토가 계속되면 50년 후에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더 없어질 것입니다.

   
 
 

▲ 한완상 선생이 그동안 보관해 온 수첩을 펼쳐 보였다. 수첩에는 성경 구절이 빼곡했다. 현재 자서전을 쓰기 위해 수첩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기억력이 감퇴한다고 하지만, 엄살처럼 들렸다. 쉬지 않고 쏟아내는 이야기는 마치 잘 정리된 신학 강의 같기도 하고, 사순절 즈음에 듣는 설교 같기도 하고, 고난 행전 간증 같기도 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메모지에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깨알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날도 서재에서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자서전을 집필하기 위해 그동안 메모해 놓은 수첩들을 하나하나 뒤적이고 있었다. 옛날 정보기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암호처럼 깨알같이 써 놓은 수첩에는 성경 구절이 빼곡했다. 서재 한쪽은 '역사적 예수' 연구 관련 책들로 차 있었다. 역사적 예수 최근 연구서를 보면서 갈수록 은혜를 받는다고 했다.

거실에는 서울대 교수 시절 젊은 화가 김병종에게 받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하나님나라가 펼쳐져 있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 그런 그림이었다. 한완상 선생의 신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 한완상 선생이 삶의 비전으로 삼은 이사야 11장의 하나님나라를 표현한 그림. 이 그림은 화가 김병종 씨가 그렸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백정훈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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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kim 2011-03-25 17:30:07
한경직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오늘의 천박한 기독교를 만드는데 기여한 인물로 조용기 목사, 김삼환 목사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성공주의 복음?을 전하는 선수들이지요. 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개혁의 물꼬가 터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