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집사가 목사보고 함부로 주의 종이라니'
'어허, 집사가 목사보고 함부로 주의 종이라니'
  • 최태선
  • 승인 2011.06.13 13: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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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목사의 평화의 사람들, '종의 길'

헌신 예배 대표기도를 하던 한 집사님이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목사님을 '주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앞으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주의 종'이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자신이 '주의 종'인 것은 맞지만 교회를 부대로 치면 목사는 부대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목사보다 낮은 집사가 목사를 함부로 '주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교회에서는 그와 같은 생각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특정한 교회, 특정한 목사의 경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교회들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주의 종님'이라는 말도 교회의 그러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목사님을 존경하고 잘 대접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냐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길은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고 잘 대접하려 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서로가 대접 받고 인정받기 원하는 사람들로 변질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제일 큰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제일 작은 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에서 리처드 포스터는 말했습니다. 그의 관찰은 정직하고 정확합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말하는 대로 대부분 제일 작은 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닭의 머리라도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한사코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강력한 저항 세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종이 되어 섬긴다는 말입니다. 입으로는 종이라는 말과 섬긴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실제로는 자기가 대접 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현실이 솔직한 교회의 실상이 되었습니다. 복음마저 이기심에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 입으로만 복음을 말하는 이 시대의 기독교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거나 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가장 거만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합니다.(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리고 세상이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존재이므로, 아무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의 방식과 우리가 즐기는 오락의 방식을 바꾸고, 자신들의 세계관이 문화에 전체적으로 반영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문화를 바꾸는 능력이 자동적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이 세대를 일시적인 세계로부터 영원의 삶이 있는 세계로 해방시켜주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입으로는 종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군림하며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세상의 방식을 전복하셨습니다. 세상은 힘 있는 자와 가진 자가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그것이 완전히 거꾸로 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핵심이지만 그 말에 못지않게 중요한 말은 "너희 중에"라는 말입니다. 그분의 제자가 아니라면 전혀 종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 아무리 섬긴다고 하고,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분의 제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나라와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의 방식으로 커지고 많은 일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오인하고 자랑하는 일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 되었던 가장 어리석은 자가당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낮은 자리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장 낮은 곳에 다다른 사람은 가장 고귀한 사람이 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영적으로 추앙 받는 사람들은 그 시대 가장 성공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를 선택하고 더 이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지 못해 애달파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14:8-11)

주님은 이토록 분명하게 말씀하셨건만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한사코 높아지려 하고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하면서 그것이 섬기는 것이라고 우기고, 섬기기 위해서는 높아져야 하고,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높아지고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따라 가기에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에게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러면 그러는 네가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자 했을 뿐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님께서 머물라고 하는 곳이 낮은 곳이었고 그리고 거기서 제가 얼마나 위로 올라가려 하는 존재인가를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올라가기를 멈추고 제가 처한 상황에 감사하고, 누구든 제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을 섬기고자할 뿐입니다. 물론 그 일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또 반성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는 그것을 실천합니다. 어쩌면 별 볼일 없어 사람들의 무시를 당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그 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제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자신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셨던 방식과 우리의 삶을 사용하실 수 있는 방식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장소에 사는 미미한 존재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만일 자신의 전 삶을 그리스도와 그의 주권 아래 사는 일에 헌신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 세대의 흐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인생을 살아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를 되돌아본다면 아마 우리는 '기쁨으로 놀란' 지팡이가 될 것이다."

제 인생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른 삶의 내용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간에게는 이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아마도 모세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무력하게 보낸 그 시간이 없었다면, 율법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십일을 못 참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을 추며 경배하던 이스라엘을 마른 지팡이로 두들겨 팼을 것이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더 낮은 자리를 선택할 때,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더 쉽게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섬기기도 더 쉬워집니다. 더 높고 더 돋보이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너무도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타락한 인간 마음의 잘라낼 수 없는 쓴뿌리입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날마다 자기를 쳐서 그것을 복종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이 아무리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제자라 생각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삶을 드린다고 생각하여도 그것은 단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의 착각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들을 향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5) 우리의 선택은 작은 자리, 보잘것없는 자리를 향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의 종이 되고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의 종이지 사람들의 종은 아니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복음을 왜곡하는 인간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용하고, 교회가 아무리 혼란해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내려오셨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입니다.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도 당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이 바로 종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야 할 것은 바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진짜 종들로서 어두운 이 시대의 등불이요 혁명가들이 되어 '기쁨으로 놀란' 지팡이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태선 / 어지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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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2011-06-15 00:20:33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 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은 바뀌지 않습디다.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신학교에서부터 확고한 소명의식을 점검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짜장라면 2011-06-15 00:03:19
어쩔 수 없는삶들은 아무리 이야기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신학교때부터 철저하게 소명의식을 강조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수준이하의 목회자들이 걸러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