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들의 축제, '파파페스티벌'을 가다
아웃사이더들의 축제, '파파페스티벌'을 가다
  • 박지호
  • 승인 2011.06.30 17:3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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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시골 농장에 모여든 반딧불이들

최근 미국 교계에 두 개의 흥미로운 '페스티벌'이 연이어 열렸다. 파파페스티벌(P.A.P.A. Festival)과 와일드  구스 페스티벌(Wild goose festival). 둘 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비슷하다. 근사한 호텔 대신 텐트 치고 야외에서 먹고 자며 영성과 사회정의와 평화와 예술을 버무렸고, 배움과 놀이와 연대가 어우러졌다. 고루하고 이기적인 종교로 전락한 오늘날 개신교는 웅장한 예배당, 경건한 종교 음악, 성장을 위한 종교 행사, 성공과 부를 찬양하는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종교적 틀로 편 가르며 참된 영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소외시키는 오늘날 미국 교회가 이런 페스티벌을 부추긴 장본인이다. 굳이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두 개의 페스티벌이 연이어 열린 이유가 있을 터. <미주뉴스앤조이>가 '비슷한 듯 많이 다른' 두 페스티벌을 각각 소개한다.  

   
 
  ▲ 펜실베니아 주 노팅햄의 어느 시골 농장에 마련된 파파페스티벌 현장.  
 
펜실베니아 주 노팅햄의 어느 시골 농장, 나흘 동안 작은 '마을'이 생겼다 사라졌다. 6월 16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파파페스티벌(P.A.P.A. Festival)에 참석한 300여 명이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예배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초원에 옹기종기 텐트를 쳤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파파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작은 마을을 만드는 이벤트"다. 다양한 기독교 그룹과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함께 배우고, 놀고, 꿈꾸고, 나누는 작은 마을이다. YACHT CLUB(Youth Against Complacency and Homelessness Today)'이 파파페스티벌을 태동시킨 모태다. '심플웨이 공동체(Simple way)'를 만든 쉐인 클레어본도 YACHT CLUB 멤버였다.

   
 
  ▲ 함께 연주하고 찬양하는 파파페스티벌 참석자들.  
 
   
 
   
 
예배하고 배우고 놀고 꿈꾸다

파파페스티벌은 '프로그램'이 아닌 '사람들'이다. 세상을 본받지 않고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People About Practicing Alternatives)", "대안적 삶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사람들(People Announcing Possible Alternatives)", "예수의 정신에 역행하는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는 사람들(People About Protestifying Alternatives)"이 모인 자리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가난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아픔을 동시에 가진 젊은이들의 새로운 형태의 연합 모임이다.

'모순', '저항', '대안' 따위의 단어가 등장하니 무겁고 투쟁적인 분위기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서커스를 따라하며 웃고 떠들고, 야외무대에서 머리를 흔들 때는 페스티벌이란 이름이 딱이다. 축제를 통해 사적인 존재를 초월한 공동체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사회정의나 평화를 위한 투사를 만들기 위한 선동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기' 위한 라이프 스타일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아이들에게 서커스를 가르쳐주고 있는 심플웨이 공동체 멤버들과 쉐인 클레어본.  
 
   
 
  ▲ 말씀을 마음뿐 아니라 팔뚝에 '새겨버린' 한 참가자는 진지하게 팔뚝에 새겨진 히브리서 13장 6절("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댈 수 있으랴")을 읽어내려갔다.  
 
자유로움과 다양함이 공존했다. 때마다 강의 참석을 종용하는 타임키퍼도, 조원들을 인솔하는 조장도 없다. 워크숍에 참여하든,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든, 텐트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든 참석자의 몫이다. 복장도 제각각이다. 소위 말쑥하고 단정한 '교회 오빠' 스타일과 거리가 먼 젊은이들도 많았다. 일반 교회에서 눈총을 받을 만한 히피풍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했다.

쌀터스의 절규, 발광인가 기도인가

필라델피아 출신의 크리스천 음악 밴드인 '쌀터스(PSALTERS)'가 파파페스티벌의 무대를 장식했다. 시끄러운 음악과 괴성으로 얼핏 보기엔 철없는 뮤지션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탄한 신학적 깊이와 날카로운 예언자적 비판의식으로 무장했다.

가사의 대부분이 시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회정의, 평화, 화해를 노래한다. <Seven times 'round>라는 노래로 성경의 안식에 대한 가르침을 사회정의에 연결시켜 세상의 억압의 굴레를 멈춰야 한다고 노래한다. 감미로운 목소리 대신 절규하듯 찬양하며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담아냈다. 출애굽기 13장으로 만든 <Carry the bone>이라는 곡은 인디언 학살과 서아프리카의 노예 시장으로 얼룩진 과거와의 용서와 화해 없이 약속의 땅에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크리스천 음악 밴드인 '쌀터스(PSALTERS)'가 파파페스티벌의 무대를 장식했다.  
 
   
 
   출처 : 파파페스티벌 페이스북 홈페이지  
 
파격적인 형식과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 강렬한 비트로 쌀터스의 공연을 기존 제도권 교회에서 불편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은 교회에서 공연하다 쫓겨나기도 했단다. 파파페스티벌에 참석한 참석자들은 쌀터스의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몸을 흔들며 찬양했다.

겉으로는 종교적 억압과 산업 문화에 반발하며 신앙적 본질을 가벼이 여길 것 같지만, 파파페스티벌에서 예전과 예배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언덕 위에 예배당을 만들어놓은 것도 이런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예배와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배치했다. 매일 아침 요가를 통해 체조와 기도를 병행했고, 아침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일 점식식사 시간 전후로 기도회 시간이 있었고, 저녁에는 치유예배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 채플 옆 언덕 위에서 찬양하며 율동하는 참석자들.  
 
   
 
  ▲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예배와 영성이 강조됐다. 파파 페스티벌 준비위원 중 한 명이었던 이태후 목사가 첫날 저녁 예배 때 설교했다.  
 
학문적 강의 아닌 라이프 스타일 나누기

오전과 오후는 주로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 배치되어 있다. 총 30여 가지의 워크숍과 30여 가지의 스킬 쉐어(Skill Share) 시간이 있지만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저명인사의 학문적인 강의가 아닌 자신의 경험이나 특기를 공유하는 식이다. 거대담론보다는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주제들을 살펴보자. '불의한 세상 속에서 분노 다루기', '공동체에서 차이로 인한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다룰까', '군사주의 문화 속에서 피스메이커로 살아가기', '예수는 어떻게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위해 풀뿌리 운동을 일으켰나', '기독교 전통 속에서 예술의 재발견', '아웃소싱을 통한 현대판 노예 제도 바로보기', '평범한 세상 속에서 자녀에게 급진적 제자도 가르치기', '신앙과 이민법 사이의 다리 놓기', '다인종 사회 속에서 백인의 정체성이란' 등이다. 

   
 
  ▲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부르더호프 공동체 멤버들.  
 
   
 
  ▲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필라델피아에 있는 샬롬하우스라는 공동체의 멤버들이 공동체적 삶을 소개했다. 주중 회의, 월간 회의, 오픈대화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방법이나, 공동체 멤버가 고급 자전거를 구입하려 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공동 재정(Common Pulse)을 사용할 때 생기는 갈등을 나누기도 했다. 또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필요와 당면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돕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파파 페스티벌의 참석자들 중 백인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다인종 사회 속에서 백인의 정체성’이란 워크숍도 있었다. 워크숍을 진행했던 카우프만 호너 씨는 이 시대를 사는 백인들을 “회개하지 않은 삭개오의 자녀들”이라 규정했다. 과거 백인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들에 대해서 백인들과 교회가 아직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백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스킬 쉐어 순서는 더 실제적이다. 정원 다듬는 법, 자동차 수리하는 법, 워십 댄스서부터 천연 재료로 물들이기, 자동차 고장 해결하기, 바느질, 자전거 수리 방법 등을 가르치고 배웠다. 스스로 주변을 가꾸고 살릴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다.  

먹고 싸는 데까지 에코 비전?

   
 
  ▲ 공동으로 사용한 개수대.  
 
파파페스티벌은 기존 수련회나 컨퍼런스와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등록비는 따로 없지만, 20불 정도의 후원금을 내는 걸 제안한다. 모든 진행은 자원봉사자들과 기부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핵심 운영진 5명과 30여 명의 준비위원들이 무보수로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 진행에 필요한 모든 일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자원봉사 신청 부스에 도움이 필요한 목록을 적어놓으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식이다. 식수 떠오기, 화장실 휴지 갈아주기, 참석자 안내하기, 픽업해주기 등등이다.

자원봉사로 진행되는 행사지만 어설프지 않고 촘촘했다. 300여 명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화장실을 즉석에서 만들었고, 최소한의 물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공동 개수대도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여행 삼아 온 사람들도 부담 없이 참여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마약, 음주, 신상(idols) 등은 휴대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파파페스티벌은 먹고 싸는 것까지 에코 비전(echo vision)을 적용했다. 애초에 일회용기는 가져오지 못하게 했고, 퇴비 처리가 가능한 음식은 따로 분리 수거했다. 화장실은 깜찍한 글씨로 'Poo Town'이라 이름 붙였다. 버튼 한 번 누르면 시원하고 깔끔하게 처리되는 수세식 변기 대신, 무독성 퇴비로 뒤처리하도록 만든 자연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다. 앞이 훤히 뚤린 'ㄷ' 자 형태로 된 숲속 화장실이 처음엔 다소 불편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자연조차도 이용과 착취의 대상이 된 시대에 환경을 생각한 것이다.

   
 
  ▲ 무독성 퇴비로 뒤처리하도록 만든 자연식 화장실.  
 
   
 
  ▲ 공동 취사장 한켠에는 참석자들이 가져온 여분의 음식을 쌓아놓고 아무나, 언제든 가져가도록 했다.  
 
파파페스티벌은 돈 없이도 3박 4일 동안 먹고 자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천막촌 가운데 공동 취사장을 설치해놓고 자유롭게 이용했다. 공동 취사장 한켠에는 참석자들이 가져온 여분의 음식을 쌓아놓고 아무나, 언제든 가져가도록 했지만 음식은 끊이지 않았다. 차를 얻어 타며 정처 없이 떠돌던 에즈라는 한 남성은 우연히 파파페스티벌 참석자의 차를 얻어 타게 되면서 행사장까지 오게 됐다. 텐트도 없고 먹을 것도 가져 오지 않았지만 행사가 진행되던 3박 4일 동안 에즈가 먹고 자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한인 교회에서는 디딤돌교회(최용하 목사)에서 참석했다.(왼쪽부터 최용하 목사, 밴 홍, 김세은, 박하늘). 최용하 목사는 자원봉사로 이런 행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위원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들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며 공동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버클리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김세은 씨는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진정성이 엿보였다며 무대 공연을 평가했다.      
 
   
 
   
 
세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파파페스티벌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기뻐했다. 파파페스티벌이 열렸던 농장에 밤이 찾아오면 사방에 반딧불이가 흐드러졌다. 꽁무니를 반짝이며 여기저기 빛을 흘리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흡사 원형 경기장에서 카메라 플레시가 터져대는 느낌이다. 불빛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제 꽁무니뿐이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며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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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2011-07-14 00:58:49
감사합니다..... 좋은 모임이 있다는걸 이제사 들었네요. 요즘 현대의 교회의 역할과 모습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는데, ^^ 감사합니다. 그리고 댓글들에 상당히 비판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늘 야외에서가 많았단거 생각해 보셨어요? 화려한 교회당이 아니고...생활속에서, 괴리감이 없는 장소, 시간에서.....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지나가다... 2011-07-11 10:55:59
말 그대로 아웃사이더들일 뿐입니다. 저러한 공동체를 본받자는 겁니까?
아랫분 말씀처럼 실험정신은 인정해 주고 싶네요...
동네 교회 열심히 섬기면서 성경을 읽으세요. 괜한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려고 하지들 말고...

짜장라면 2011-07-08 13:39:03
솔직히 그다지 성경적인 모습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교회론의 차이겠지만, 제가 보기엔 60년대 후반 히피운동의 연장... 크리스챤 히피들의 21세기 버젼 정도...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를 합니다만...

아톰 2011-07-02 13:27:41
참 좋고 귀한 기사 감사합니다.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바로 '예배가 정의이고, 정의가 예배가 되는' 연습이 될 것 같습니다. 삶에서 체험이 없이는 그 어떤 그럴듯한 주장이나 논리적 분석.설명도 탁상공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는 좋은 모임 같습니다.

누지문서 2011-07-01 20:27:37
좋은 기사입니다.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박지호 기자님.
이런 일들이 계속되어 참된 영성에 갈급한 젊은분들이
다소나마 숨통이 트일수 있다면 실제적인 대안이것 같습니다.
썩어빠지다 못해 흉물스러운 대교회들에게 좋은 경종이 되기를 바랍니다.현대 교회는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시도이며 좋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