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인 클레어본, '사랑의 극단주의자가 되라'
쉐인 클레어본, '사랑의 극단주의자가 되라'
  • 셰인 클레어본
  • 승인 2011.10.05 12: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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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체스코 기일에 즈음해서, "칼 없이도 평화는 가능하다"

10월 4일은 성 프란체스코의 인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세상을 밝게 비춘 교회의 빛이었으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 중 하나다.

900년 전의 그의 삶은 여전히 지금 이 세상에도 유효하다. 그는 최초로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최초의 기독교 환경운동가였고, 대담한 교회 개혁가였으며,  양심적인 전쟁 반대자였다.

프란체스코의 아버지는 매우 부유한 의류업자였다. 프란체스코가 태어날 무렵, 세상의 빈부 격차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심해지고 있었다. 그 시대는 모슬렘과 기독교인이 "신" 의 이름으로 서로를 학살하던 십자군 전쟁 때였다. 왠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인가?

다시 반복되는 오류의 역사

프란체스코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대단한 걸 해냈다. 그는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와 "백합과 참새도 내일을 걱정 안 한다"와 "네 원수를 사랑하라"를 읽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곧이곧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프란체스코는 그가 살던 세상의 물질주의와 군사주의를 배격했다. 그리고 예수님만 바라봤다.

그가 남긴 말들은 세상에게 간단하면서도 통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재물을 늘이면 늘일수록 그걸 보호할 더 많은 곤봉을 필요로 하게 된다." 만약 오늘 그가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서 있다면 무엇을 했을까?

   
 
  ▲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총회 현장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윤영석)  
 
어린아이의 순수한 동심으로 프란체스코는 벌거벗은 채 그가 살던 아시시를 떠났다. 그는 참새와 백합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새들과 피조물들의 친구로 지내셨던 것처럼 프란체스코도 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형제, 자매로 불렀다. 그래서 지난 주일 많은 교회들이 자신이 기르고 있는 반려 동물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그 시대에 가장 강력했던 악령에 대적했다. 그 악령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악령과 매우 비슷하다.

가장 유명한 프란체스코의 이야기는 그가 5차 십자군 원정 시절 이슬람 국가의 통치자를 만났다. 그때는 격동의 시절이었다. 전쟁은 습관처럼 일어났고, 많은 교회들이 전쟁을 축복했다. 프란체스코는 군인으로 징병되어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은총과 전쟁의 폭력을 함께 섬길 수 없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칼을 버렸다. 그는 카디날 펠라기우스 사령관에게 싸움을 중단해달라고 애원했다. 펠라기우스 사령관은 그의 애원을 거절했다. 그는 오히려 이집트의 지도자인 말릭 알 카밀과의 모든 외교적 관계를 중단시켜 버렸다.

오직 주님만 붙들고 칼을 내려놓다

   
 
  ▲ 5명의 친구들과 버려진 도시 켄싱턴에 'The simple way'를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웃된 셰인. (ⓒ박지호)  
 
이에 대해 말리 알 카밀은 칙령을 내려 기독교인의 머리를 베 오는 자에게 동로마제국의 금 조각을 하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절대적 신앙에 기초한 자신의 비전을 추구해 나갔다. 그는 말리 알 카밀을 만나기 위한 위험한 여정에 올랐고, 한창 전쟁 중이던 시리아를 지나갔다. 가던 길에 모슬렘 군인들에게 붙잡힌 그는 사슬에 꽁꽁 묵인 채 술탄 말릭 알 카밀 앞에 불려갔다. 술탄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감동을 받아 프란체스코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했다. 그는 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선물을 거절했다. 단 하나, 모슬렘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 사용하는 상아색 뿔만 하나 챙겼다.  그는 그 뿔을 가지고 돌아와 자신의 공동체 구성원들을 기도 시간에 그것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불렀다. 술탄이나 프란체스코 모두 두 사람의 대면을 통해 변화를 이룬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시대에 프란체스코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준다. 우린 여태 모든 종교의 극단주의자들을 목도해왔다. 유대인, 모슬렘, 기독교인의 형태를 한 이 극단주의자들은 종교를 빙자하여 증오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신문 일면 머리기사를 장식해 왔다.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은 쿠란을 불태우고 낙태시술소를 폭파시켰고, 폭격에 쓰일 폭탄들에 은총을 내려주는가 하면, 월스트리트를 위해 기도했고, "신은 '호모'(fags, 동성애자를 비하해 일컫는 속어)를 싫어해"라는 팻말을 들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우리가 사랑의 극단주의자, 은총의 극단주의자가 되라고 손짓한다.

사랑의 극단주의자가 되라

교회가 프란체스코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이어가거나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온 세상이 그의 급진적 활동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프란체스코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누리고 싶은 대로 누리기 위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경제 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었다. 우리는 프란체스코의 땅 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가 황폐화 시킨 이 자연을 돌봐야 한다. 우리는 그가 입증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칼을 쓰지 않고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들은 하나님의 속삭임을 기억하라. "망가지고 있는 교회를 고치거라."

오늘은 성 프란체스코를 추모하며 그를 위해서 자그마한 일이라도 하나씩 실천해 보자.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노숙자들에게 주거나 우리의 시간의 일부를 내서 노숙자 돕는 일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행복은 살 수 있는 거예요"라고 당신에게 속삭이는 광고를 보고 한껏 비웃어 주자. 아니면 숲에 가서 백합과 참새들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보자. 아니면 원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성 프란체스코의 유명한 기도가 있다. 이 기도가 우리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글·셰인 클레어본 / 번역·김성회 기자

셰인 클레어본은 심플웨이의 창립 멤버이고 활동가이며 영성가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at www.redletterchristians.org and is being reprinted here by permission.
http://www.redletterchristians.org/st-francis-pray-f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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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카/지/노★ w w w . w a 2011-10-19 19: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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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1-10-08 13:00:26
프란체스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새롭고 신선하고 감동적입니다. 아, 우리가 보고 겪고 느끼고 있는 기독교가 얼마나 본류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 오늘도 한숨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