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스라엘 민족인가'
'누가 이스라엘 민족인가'
  • 전현진
  • 승인 2013.04.25 18: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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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당신들이 모르는 이스라엘…추상적 이해가 만드는 '무례한 선교'

<미주뉴스앤조이>는 창간 6주년을 맞아 3월 중순부터 약 3주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한국과 미주 한인 교계가 갖고 있던 '이스라엘'의 모습과 그 실제 모습을 점검해봤다. 매년 4만 명 이상의 한인들이 찾는다는 이스라엘을 조명하기 위해 현지인들과, 오랜 시간 사역해온 현지 사역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다양한 자료들을 검토했다. 복음이 시작된 땅 이스라엘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 준비한 이번 '당신들이 모르는 이스라엘' 시리즈는 2주에 걸쳐 4회 분량으로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유대인들은 모세오경(토라)을 지키며 메시아가 건설할 다윗 왕국을 고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메시아를 고대하는 유대인들의 간절함을 바라보며 예수를 메시아로 바로 알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일부 유대인, '메시아닉 쥬'에게 열광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열심히 지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시아를 향한 소망이 이스라엘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비전이 아니다. 메시아에 의해 세워지는 다윗 왕국은 종교에 모든 것을 헌신한 정통 유대인들에겐 간절한 소망이지만, 이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설화 정도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다윗 왕국을 바라는 정통 유대인들과 이미 세속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시민들. 종교와 세속을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 이스라엘을 파악하는 첫 걸음이다.

극단적 종교성 강조하는 정통 유대인, 현대 국가 이스라엘과 '마찰'

   
  ▲ 이스라엘 19세 이상 남녀는 모두 3년(남자) 또는 2년(여자) 간의 병역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및 이스라엘 곳곳에서 근무하게 된다. 사진은 통곡의 벽에 배치된 이스라엘 군인.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율법에 따라 복장을 갖춰 입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은 극단적 정통 유대인(Ultra Orthodox Jews)들이다. 이들은 1948년 건국을 선언한 이스라엘이 성경 말씀에 따라 메시아에 의해 세워진 국가가 아니가 때문에 현대 이스라엘을 '다윗의 왕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속 국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유대 신앙을 배격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건설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시온주의도 따르지 않는다. 시온주의는 정치적 구호일 뿐, 메시아가 세우는 다윗 왕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체 인구 중 1520%를 종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종교인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을 세속 국가라며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 조사를 거부하고, 일부는 인구 조사를 실시했던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기 때문에 인구 조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녀를 많이 낳는 정통 유대인들의 특성상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여러 가지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납세는 한 국가의 시민이 져야할 기본 의무 중 하나이다. 세금은 국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정통 유대인들은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대신 복지 혜택은 누리고 있다. 종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어와 과학 같은 일반 교육을 받지 않는다. 공교육 질서를 역행하는 일이지만, '이교도들의 교육', '세속 교육'이라며 종교인들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종교인들에게 교육과 관련된 복지 지원금을 삭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통 유대인들은 국방의 의무도 거절한다. 남자(3년)와 여자(2년) 모두에게 부담되는 국방의 의무 역시 종교인들에겐 예외다. 결국 정통 유대인들은 세속 사회를 구성하는 어떠한 의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 시민 사회와 정통 종교인들은 충돌한다. 종교인과 세속 정부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미주뉴스앤조이>와 만난 텔아비브의 한 시민은 종교인들을 향해 불만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그는 "종교인들은 세금도 안 내고, 군대도 안 가면서 끝없이 국가에 요구한다"고 말했다. 세금 안 내는 종교인들을 일반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냐는 주장이다. 종교인들이 세속 사회의 구성원임을 거부하면서도, 복지 혜택이나 종교인 권리와 관련된 입법 활동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이스라엘 대법원이 종교인에 대한 병역 면제 관례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정통 유대인과 세속 시민 사회에서 논쟁이 격화되기도 했다.

종교인들은 유대교 전통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또 다른 의미의 국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것은 아무리 세속 사회가 되어 간다하더라도 그 종교성이라는 것이 이들이 주장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종교성이 세속 사회와 부딪치고 있다는 신호는 현대 이스라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정통 종교인들의 극단적 종교성은 세속 유대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정통 유대인이 가두 집회 중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인터넷 블로그 갈무리)

 
 
하레디(Haredi)라고 불리는 정통 유대인들이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세속적인 유대인들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등의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일이 흔치 않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정통 유대인 중에서도 종교성이 약한 이들에게도 도를 넘은 비난과 공격을 하는 경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모든 정통 유대인에 적용해 단순히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정통 유대인과 세속 사회의 갈등은 이미 현대 이스라엘에서 무시 못 할 수준으로 확장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들 정통 유대인들은 자신의 종교성을 대변할 정당도 갖고 있다. 이스라엘 내각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정당들이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소 정당 규모이지만 연정을 해산할 수 있을 정도의 의석은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도로와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남녀를 분리하는 법안 상정을 시도하기도 하면서 종교를 세속 국가에 극단적으로 적용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산 바 있다. 예루살렘의 일부 버스는 남녀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분해놓은 곳도 있는데, 정통 유대인들이 종교 정당을 통해 실시한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 정통 유대인들의 인구가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고, 이들이 세속 사회에서는 '무능력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 경제 발전에 큰 제약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통 유대인 남성은 매일 같이 토라를 외우고 기도하는 일에 매진한다. 일반적인 사회의 일과 완전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종교 학교를 다니며 종교인으로 길러진다. 여성들은 종교 기관 등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를 기르며 토라를 공부한다.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는 정통 유대인들의 인구 성장률은 일반 세속 이스라엘 인구의 성장률을 크게 상회한다. 결국 정통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을 배우고 암송하는 일 뿐이다. 이들이 세속 사회 구성원들과 부딪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앞으로 이런 갈등은 더욱 심화될 거란 예측은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복잡한 이스라엘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정통 유대인과 세속 유대인이라는 종교적 열성에 따라 구별했지만, 이 역시 모호한 개념이다. '종교적'이라는 말을 정확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속적인 유대인들을 '세속적'이라는 말로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어느 나라든 진보와 보수와 같은 정치 지향에 따른 차이, 그리고 소득에 따른 차이, 출신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종교성이라는 기준과 함께 사회·문화적 기준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반적인 현대 국가라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 정통 유대인들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지만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종교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군인들 중에도 종교적인 이들이 있고, 세속적인 이들이 있다. 사진은 기도문을 읽고 있는 이스라엘 여군.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반응이다. 텔아비브와 같은 대표적인 세속 도시에서는 매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다. 이 집회에는 많은 이스라엘 운동가들이 참여한다.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행정 수도 라말라에서도 매주 시위가 열리곤 하는데, 이스라엘 출신 운동가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지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있다. 그밖에 동성 결혼 지지 여부, 종교인에 대한 평가 등이 '세속적인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현실의 이스라엘은 이렇게 복잡한 사회 구성원이 만드는 모자이크와 같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그동안 바라본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세속적인 것도 아닌, 전혀 현실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구약의 이스라엘'이라는 지적이 많다. 결국 이런 불분명한 이해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만든 배경이 됐다. 이번 기사에서도 계속해서 지칭해온 유대인, 즉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이들을 말하는 것일까.

누가 이스라엘 민족인가

흔히 유대인이라고 하면 창백한 비부에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백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장사에 능하고, 절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으며, 털이 많은 이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유대인의 음모'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스라엘에서 만나게 되는 '유대인'들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유대인들의 다양성은 그들의 피부색이다.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찾는 유월절은 말 그대로 인종 전시장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온 서구 외모의 유대인들이 가장 흔하다. 동유럽과 러시아 혈통이 섞인 이들은 유대인들이 세계로 흩어지면서 동유럽 쪽에 진출한 경우가 많았고, 전쟁을 겪으면 피가 많이 섞였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아랍인을 떠올리게 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아랍계 유대인들은 성서 속에 등장하는 고대 유대인들과 가장 가까운 피부색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 받는다. 흑인 유대인들도 있다.

   
   
 
 

▲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맞아 통곡의 벽을 찾았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주해오면서부터 현대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유엔이 이스라엘 민족 국가 건립을 승인하고 적당한 지역을 물색하던 당시 가장 먼저 순위에 올랐던 곳 중 하나가 에티오피아였을 만큼 이곳의 유대 역사는 오래됐다고 한다. 이들의 뿌리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성경 시대의 에티오피아 환관을 거슬러 솔로몬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추정되고 있다.

인도 혈통의 유대인과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유대인도 있다. 유대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이스라엘이지만, 어떤 피부색이나 혈통이 '유대인이다'라고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이라고 할 수 이들은 누구일까. 이런 질문은 누가 이스라엘 민족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유대인을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 번째 정의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결국 유대인이라면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어야 하고,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유대교 전통을 따라 유월절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예배하기 위해 찾은 이들은 모두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정의는 혈연이나 개종에 의해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의 후손인 고대 유대 민족이 된 사람을 가리킨다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성이 없어도 결혼이나 개종 등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그것은 '현대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유대인 개념을 정립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말이다. 유대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담고 있는 종교성이 세속 사회에서 희석되고 있고, 이미 너무 다양한 인종들이 유대인이 되어 나고 자라다 종교를 떠나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논란까지 더해지면 그 복잡함은 더욱 커진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그 다양성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이 예이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대 회당은 유대인들을 위한 종교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종교 안에 담겨진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브루클린에 모여 사는 정통 유대인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종교가 아닌 문화적 관습에서 찾고 있다. 유대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과 문화적인 범위에서만 유대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일종의 관습적 유대인인 셈이다.

누가 유대인인가라는 논쟁은 랍비들 사이에서도 의견 충돌을 보이는 부분이다. 개종 절차를 밟거나 유대인과 결혼한 이들을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 종교성을 완전히 버렸지만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들을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등 랍비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현대적 의미의 시민 개념을 받아들여 자국민들을 종교적 의미가 배제하고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시민 자격을 얻은 외국인은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역시 복잡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이다. 결국 현대적 의미에서 '유대인'은 명확한 개념이 아니고 문화나 관습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국 교회가 눈물로 외치는 '이스라엘 민족'은 명확히 그 대상을 가리킬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인 셈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종교적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관습적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백인·흑인·황인 혈통의 유대인 중 일부 혹은 모두를 말하는 것인지, 세속적 유대인을 말하는 것인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성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두를 통틀어 부르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한국 교회에서 추상적이고 감정적으로 사용돼왔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 이스라엘 민족 국가 건설에 사상적 배경이 된 시온주의는 그들 민족의 순결성을 강조해왔다.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그 땅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이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을 향한 공격과 핍박은 정당화되었다. 21세기 이스라엘 민족의 개념은 추상적이고 복잡하지만, 정치인들이 단순화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 세계 서방 국가의 도움을 일방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되었다.

'무지'가 만든 이상한 열정

결국 현대 이스라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권에 정치적으로 눈먼 힘을 실어주었다. 또 이스라엘 회복을 주장하는 일부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현실의 이스라엘에 대한 아무 이해 없이 '회복'과 '백투예루살렘'을 외치며 청년들의 열정을 자극해 동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날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감상적이지만 추상저인 메시지는 많은 청년들을 '묻지마' 선교의 현장으로 몰아넣게 됐다. 현지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 없는 선교는 결국 현지인들과 갈등을 빚게 하고, 일방적 '전도' 행위는 '무례한 선교' 전락하게 했다.

   
  ▲ 아브라함의 무덤 터에 모여 기도하는 유대인들. 역사적 의미도 있는 곳이라 종교인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유대인들이 방문한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이스라엘에서 5년 간 사역한 한 선교사는 "이스라엘은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한 나라"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 종교와 정치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팔레스타인과의 함께 지내는 상황은 항상 위태롭기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매년 4만 명이 넘는 성지 순례객들은 예루살렘만 찾고 몇몇 성서 유적만 보고 이스라엘의 대한 피상적 느낌만 안고 돌아가 실체 없는 '이스라엘 회복'을 응원하게 된다. 이런 피상적인 이해가 이스라엘 선교에 독이 되고 있다고 현지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현지 선교사들은 이스라엘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결국 겸손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복음이 시작된 땅에 복음이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선교적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선교적 태도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어느 장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이 땅과 민족에 복음이 필요하다고 현지 사역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진심이 담긴 헌신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구호로만 선교를 외쳐왔다는 손가락질은 계속되어 왔다. 이런 소통과 이해가 없는 열정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현진 기자 /
jin23@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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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2013-04-26 20:54:44
지금의 이스라엘의 현실에 관하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백투예루살렘, 이스라엘 회복 ... 이런 구호가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현재의 이스라엘의 문제와 실상도 왜곡하는지 알았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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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 교회가 눈물로 외치는 '이스라엘 민족'은 명확히 그 대상을 가리킬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인 셈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종교적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관습적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백인·흑인·황인 혈통의 유대인 중 일부 혹은 모두를 말하는 것인지, 세속적 유대인을 말하는 것인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성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두를 통틀어 부르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한국 교회에서 추상적이고 감정적으로 사용돼왔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