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아프면서 불편한 이름
위안부, 아프면서 불편한 이름
  • 김기대
  • 승인 2014.08.05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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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모 원작, 연극 봉선화 미주 공연

지난 6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친일 발언으로 불거진 친일 논쟁은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로 까지 옮겨가 결국 상호 고소 사태까지 갔다.  학술 저서에 대한 고소는 너무 과하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친일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제국의 위안부’를 직접 읽지 못했으나 언론을 통해 문제가 된 내용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위안부와 병사들과 동지적 관계가 있었다.’ ‘일본 군대가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라 민간 매춘 업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에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렵다.’ ‘ 매춘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화대가 지급되었다) ‘ 일본의 창기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간 것이다’는 말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분노케 했고 활동가들을 통해 박유하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것이다.

소녀상 건립 1주년에 맞춘 연극 봉선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북부에 있는 소도시 글레데일에는 지난 해 일제하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이 건립되었고, 그 1년을 기념해서  작가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으로 한 연극 ‘봉선화’가 글렌데일 알렉스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런데  위안부 생존자 이옥선·강일출 할머니의 미국 방문에 맞춰 기획된 연극에 두 할머니가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다.

   
▲ 연극 '봉선화'의 한 장면(자료 사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두 번의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첫 공연을 관람한 두 할머니가 지난달 29일 공연된 두번째 공연에서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별다른 식전 식후 행사 없이 연극 ‘봉선화’만 공연되었다. 행사를 기획한 가주한미포럼 측은 “할머니들께서 연극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내용 중 민감한 부분이 사실과 달라 불쾌함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연극 봉선화는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여인의 인생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 군인들은 통상 위안부라든가 위안소라고 부르지 않고 '조센삐'라고 불렀다. 매춘부를 의미하는 prostitute에서 첫 글자를 따서 삐라 부른 것이다

어떤 부분이 할머니들을 불쾌하게 했을까? 교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들이 기모노를 입고 돈을 뿌리는 장면이 사실과 어긋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극 내내 읽지 않은 책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겹쳐졌다.

대학 재단이사장의 사위이며 차기 총장 후보인  주인공은 위안부 어머니와 연락을 끊은 채 고아인 것처럼 행세하며 출세 가도를 달려 왔으나 결국은 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주인공의 딸이 석사 논문을 위해 위안부 자료를 조사하던 중 가족사의 비밀이 밝혀 지는데 결국 위안부는 일본이라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이기에 그분들의 과거는 아픈 일일 뿐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주제로 내 건 연극이다.

학문에도 예술에도 위로가 필요하다

기모노 차림의 여성(민간 포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장면 말고도 연극 곳곳에서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성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적 묘사 역시 할머니들이 불쾌하기에 충분했다. 연극이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위안부의 폭력성을 알리는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할머니들을 그 자리에 굳이 참관시킬 필요는 없었다.

박유하 교수는 자신의 학술적 저작이 명예훼손의 대상이 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사료적으로 본다면 매춘적 형태도 일정 부분 있었을 수도 있고, 동지적 연대라는 말은 과했지만 젊은 남녀간의 연정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오래 전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김성종 원작의 ‘여명의 눈동자’에서도 남자 주인공(최재성 분)과 위안부 여자 주인공(채시라분)의 사랑이 있었다.

문제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분석이 과연 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 해도 ‘객관’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박유하 교수에게는 많이 부족했다. 일부 매춘적 형태가 존재했다 할지라도, 만의 하나 일본에게 속아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일본의 폭력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집단적 성도착증에 걸린 강간범의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박교수는 ‘객관’에 매몰되면서 거기에 자기의 주관을 담아 버렸다. 학술 저작에도 위로가 필요하다. 객관을 빙자한 주관으로 할머니들의 아픔을 ‘사료(史料)’의 문제로 건조하게 만들어 버렸다.

연극 봉선화에서도 그런 점이 보인다. 할머니들의 과거가 부끄러워 덮어야 할 성질의 것이냐, 반드시 기억으로 남겨 만행을 고발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인한 아들과 어머니의 갈등, 아버지(아들)와 그 딸(손녀)의 갈등이 연극을 끌어가는데 여기도 위로는 약해 보인다.  몇 분 안남은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역사의 증언자가 되라고 무거운 짐만을 지워 드리는 것은 아닌지 깊은 여운이 남았다. 그분들의 과거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며 놀던 소녀들의  예쁜 꿈은 어쟀든 훼손되었다.  그 소녀적 감성의 상실에 대해서는 얼마나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있는지, 사회가 당위만 강조했지 정서적으로 깊은 공감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연극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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