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헛 똑똑이가 되지 말라!
교회여~헛 똑똑이가 되지 말라!
  • 한재경
  • 승인 2014.12.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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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경 ⓒ <뉴스 M>

연말 연시가 다가온다. 교회마다 내년 달력이나 다이어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역 사업자를 이용해서 달력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량이 많은 몇몇 대형교회는 한국에 직접 연락을 하고, 가격을 흥정해서 조금은 더 싼 가격에 달력을 구입했을지 모른다.

세상의 논리, 경제적 소비의 입장에서 보면, 현명한 처사다. 같은 품질이라면 더 저렴한 가격을 쫓는 ‘소비행위’를 경제적 소비에서 보면, 탓할 일이 못 된다. 정말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신앙인의 공동체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게 정말 옳은 일인가? 그렇다. 우린 옳은 일(justice)이란 프레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놓쳐서는 안 된다. 낮아져야 높아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신앙 공동체의 운영원리는 정확히 세상이 떠버리는 지혜와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한다.

딱딱한 잔소리는 차치하고, 우리의 눈을 현실에 두면 분명해 진다.

그렇게 똑똑한 소비를 하는 교회, 지역 공동체를 제쳐두고 한국과 직거래를 트는 일부 대형교회를 지역 공동체는 어떻게 느끼는가?

미주리 주 퍼거슨 시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한인이 운영하는 뷰티 서플라이 샵이 방화에 의해서 전소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좀 더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1992년 발생한 LA 로드니 킹 사건 때와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당시 한인가게들이 화가 난 흑인들의 분풀이 대상이었다. 다만, 평상시 흑인 커뮤니티와 완만한 유대를 형성했던 한인가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흑인커뮤니티가 보호해 줬기 때문이다.

만약 한인교회가 한인 지역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지 못한다면, 어디에 선교의 뿌리를 내리고, 고난의 시대에 접어들 때, 어디에 머리를 둘 것인가?

지역을 살리고 더불어 함께 살려는 노력은 세속에서도 중요한 관심거리다. 독일 의회에서 反 아마존 법을 몇 해 전에 통과시켰는데, 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상품의 세일을 온라인에서 금지하는 법이다. 단, 세일은 지역가게에서만 허용된다. 상대적으로 자본력과 경쟁력이 약한 지역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유럽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뉴욕 뉴저지의 대형교회가 세상적으로 똑똑한 소비가 아니라, 바보처럼 소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헌금의 절약은 지역을 제치고 한국에서 저렴한 가격을 찾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먹고 쓰는 데서 찾아야 한다. 담임목사 사례비도 솔직히 줄여야 한다. 목회자를 포함해서 교인들의 불편이 절약의 근거가 되어야 하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힘’이 선교나 구제에 더 투입되어야 한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소비인가? 하지만 얼마나 감동적이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가?

   
▲ ''안전한 교회'라고 써붙힌 퍼거슨 지역의 교회. 오늘 교회는 지역 사회의 문제와 함께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인터넷 소비 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단 1불, 1전이라도 싼 곳이 승자 독식하는 살벌한 시대가 도래했다. 이젠 사람이 아니라, 돈의 힘이 더 집요하게 거칠게 모든 상거래를 지배한다. 교회만큼은 이런 흐름에 맹렬히 ‘저항’해야 한다고 믿는다.

헌금은 세속에서 건져낸 신앙의 거룩함이 담긴 씨앗이다. 감사헌금, 십일조 헌금은 그 자체로는 평범한 지폐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은 거룩함이다.

이 거룩함이 흘러서 만나는 사람과 처소마다 치유와 용서, 감사와 기쁨, 환대와 감격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옳다. 교회의 소비가 바보 같아야 하는 이유다. 손해 보고, 바보 같아야만 성령님이 활동하실 공간을 마련해 드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모습을 세상에서 경쟁하느라 찌들고, 사장이나 손님 비유 맞추느라 맘 고생이 심한 교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공동체의 소비패턴이 손해인 줄 알면서, 지역 공동체를 살리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일 때, 어느 신앙인이 주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제발 스스로 똑똑이가 되지 말고, 멍청이가 되라. 교회가 속한 타운의 잔칫집을 공평하게 돌려가며 이용하고, 인터넷이 싸다는 거 알고 바보 같지만, 지역 책방으로 가라. 교회에 수 없이 들어가는 비품인 화장지, 페이퍼타월, 주방용품을 사러 전국체인점을 갖춘 할인매장을 들락거리지 말자. 지역 델리에 가서 사라. 그 델리 주인이 얼마나 감격하면서, 아마 알아서 최대한 가격을 맞춰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안에 일어난 감동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 교회(the Church)는 영원하지만, 지역 교회(a church)의 역사는 길어야 백 년이다.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역사의 한 순간만을 반짝일 뿐이다. 그 순간에 헨리 나우웬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 말한 것처럼, 상향성이 아니라 하향성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신앙공동체는 더 말해 무엇하랴?

한재경 목사 / <하늘뜻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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