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와 “다른 예수”!?
나사렛 예수와 “다른 예수”!?
  • 강만원
  • 승인 2014.12.01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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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원 © <뉴스 M>

굳이 ‘나사렛 예수’라고 지명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사렛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성지聖地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성경에서 예언된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인가? “갈릴리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라고 나다나엘이 거침없이 반문했듯이, 갈릴리 나사렛은 성지도 아니고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소도 아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변방인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는커녕, 율법주의의 외식에 맞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가 미쳤다며 조롱하고, 야훼를 향해서 불경不敬을 서슴치 않는다며 아예 죽이려고 했을 만큼 예수와 나사렛 사이에는 명백한 틈이 있다.

그런데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다.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예수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예수가 자랐던 지명을 원래의 이름에 덧붙여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을 뿐이다.

막달라 마리아, 아리마데 요셉, 가룟 유다처럼 지명을 덧붙이거나 ‘세배대의 아들 요한’처럼 아버지의 이름에 연결해서 이름을 정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한 관습이었다.

같은 이름들이 많기 때문에 부득이 선택한 방식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예수가 많다. 병 잘 고치는 예수, 자녀들 좋은 대학 보내주는 예수, 승진과 진급에 특별한 영발이 있는 예수, 재테크에 능한 예수 등...

한국교회에는 교회나 교인들의 숫자 만큼이나 많은 예수가 존재한다. 조용기가 이끄는 순복음교단의 예수가 다르고, 김홍도가 다스리는 금란교회의 예수가 다르며, 회개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전병욱의 홍대새교회에서 섬기는 예수가 다르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바벨탑을 층층이 쌓아올리면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며 번들거리는 유리성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오정현의 예수가 따로 있고, 한국교회 주류목사들의 사교집단인 한기총의 예수가 다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믿는 예수는 오직 한 분이며 우리는 오직 한 분이신 ‘진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진짜 예수,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몸소 ‘비천한 종’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존귀하신 그 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택하신 규범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꺼이 하늘 보좌의 존귀한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채 종의 자리에 오롯이 서신 ‘가난한 예수’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앙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지존하신 하나님과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왜 인간의 비천한 육신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을까? 능력의 근원이신 그 분이, 오병이어의 기적 정도는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그 분이 ‘가난한 예수’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

   
▲ 영화 '선오브갓'의 한 장면 © <뉴스 M>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시쳇말로, “다다익선多多益善 아니냐?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 돈으로 선교에 쓰고, 구제에 쓰고, 건축에 쓰고, 주의 영광을 드높이는 여러 사업에 사용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에 따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라며 당당히(?) 주장하는 배부른 목사들처럼 예수도 그리 하시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가난해서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굶을까 걱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예수가 ‘다다익선’을 주장하는 목사들보다 머리가 모자라고 생각이 짧아서 그리 하셨겠는가? 제자들을 일부러 죽도록 고생시키려고 그들을 파송하시면서, “돈주머니를 차지 말고, 옷도 두 벌 가지지 말고, 지팡이나 달랑 하나 들고 가라”라고 매몰차게 말씀하셨을까?

가난한 자를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마땅히 가난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고, 예수 또한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인간의 비천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가난하게 사셨던 것이다.

자신이 배 부르고 등 따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희생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이 바로 나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오롯이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는가?

"네게 두 벌 옷이 있으면 한 벌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것이 주의 말씀인데 어떻게 주의 종이라는 자들이 그렇듯 제멋대로 돈을 낭비하며 사사로이 부를 축적할 수 있을까? 돈 많고, 거드름 피우고, 탐욕스러운 목회자나 교인들을 보면 즉각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당신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를 믿는 사이비 이단이다!”라고 말이다.

바울이 초대교회에 잠입한 거짓 교사들의 일탈에 대해서 고린도의 무지한 교인들에게 준엄하게 경고한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인하지 말라"고... 그들은 단지 오래전 초대교회에나 있었던 흘러간 이단이 아니다. 다른 예수를 맏는 자들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증한 이단이 아닌가?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단언컨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치명적인 오류는 단순히 목사나 교인들의 타락과 불의가 아니다. 사실상 그런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진부한 문제들인 반면에,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한국 교회의 결정적인 문제는... 탐욕에 찌든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이며, 가증한 이단의 사슬에 꼼짝없이 매인 것이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자. 작가.
성균관 대학교와 프랑스 아미엥 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신의 성경을 버려라"의 저자이며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 단순한 열정,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 신이 된 예수, 루나의 예언,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예수의 역사와 신성 외 다수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아르케 처치'에서 성경강의 및 번역, 출판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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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준행자 2015-09-23 03:34:21
동네 작은 개척교회라도 다니시면서 글쓰세요 가만보면 매우 교만하고 아닌척하면서 사실은 자기의를 드러내고 상관없다고 하면서 매사에 핑계와 변명을 하고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분노하고 낮은자인척 하면서 높은자리에 있는듯한 느낌이에요 당신이 쓴 모든글에서 느껴집니다 당당한 가나안인 강만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