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부패, 누구 탓인가?
교회 부패, 누구 탓인가?
  • 신성남
  • 승인 2014.12.09 02:2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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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업자'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 신성남 ⓒ <뉴스 M>

교회의 회복과 개혁을 논하는 글이 올라올 때마다 자주 나오는 반발이 있습니다. 왜 극히 일부 직분자들의 비리인데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오도하거나 과장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 싸잡아 비난을 받는 것 같아 너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실제 '의도적으로'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글은 매우 드뭅니다. 간혹 어쩌다가 문장의 표현상 다소 오해를 줄 수는 있겠지만, 대개는 전체 문맥의 흐름을 보아도 그것이 전부를 의미하지 않음은 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문장마다 '일부'라는 단어를 삽입하여 반복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부와 전부

예를 들어 "한국사람은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게 과연 한국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모두 머리가 좋다는 뜻일까요. 그래서 그런 틀린 말을 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며 강력히 항의해야 옳을까요. 아니지요. 설사 중학생이라도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전반적인 비중으로 볼 때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의 머리가 상대적으로 좋다는 일상적인 표현입니다. 즉 같은 말이라도 언어는 그 말을 한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했다!"는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한국에 있는 지역 교회들 전체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통채로 타락했다는 주장입니까. 그래서 이는 말도 안되게 매우 틀린 말인가요. 아니지요. 그건 단지 '상당수'의 교회가 타락했다는 의미로 쓰여지는 일반적 표현인 것입니다. 정신나간 사람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한국의 모든 교회가 타락했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하겠습니까. 그건 그냥 감자의 한 모퉁이만 썩어도 우린 "감자가 썩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의 표현입니다.

만일 어떤 분이 이 정도 문장의 진의도 제대로 식별을 못 한다면, 그분은 다른 사람의 글을 반박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의 언어 지각력이나 독해력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말꼬리를 잡거나 곡해하지 말고 잘 읽는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논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설사 그 내용이 일부를 지적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체에 큰 영향을 줄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전에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마을의 공동 우물에 개똥이 한조각 떠있다고 가정하지요. 그러면 우린 그까짓거 단지 한조각뿐이니 그냥 무시하고 계속 그 물을 퍼먹어야 할까요. 

   

지금 교회 부패의 문제가 이와 매우 유사합니다. 분명히 전부가 아닌 일부 직분자들이 부패했지만, 이를 그대로 방관하면 전체 교회가 함께 상처를 받고 아울러 복음의 확장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마치 인체에서 암세포를 발견하면 가능한 빨리 분리 제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는 아간이 범죄했을 때 이스라엘 전체가 큰 고통과 징계를 받았던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암과 죄는 그 속성상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전체를 죽게 하는 법이니까요.

따라서 참으로 교회를 위한다면 설사 극히 일부의 부패라고 해도 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고 이의 확산을 막는 차원에서라도 끝까지 추적하고 감시하고 교정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와 화합의 차원이 아니라, 공의와 권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공교회는 회개하는 '죄인'은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는 '죄'를 무조건 용서할 권한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젠 그 일부가 글자 그대로 일부라고 주장하기엔 갈수록 너무 낮 뜨겁고 염치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 탓인가

또 다른 논란은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 부패가 과연 누구의 탓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속임수와 과장이 있슴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자에 어느 유명 목회자의 상습적인 성추행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의견은 대개 둘로 갈라집니다. "직분자로서 도저히 해선 안 될 일을 했으니 즉시 파면하자"는 주장이 있고, 다른 하나는 "너희도 똑같이 연약한 죄인이니 용서하고 무마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 두번째 주장을 얼핏 보면 사랑이 넘치는 듯 하나, 실상은 아주 한심하고 간교하고 답답한 말입니다. 아니 그러면 다른 많은 목사님들은 우리처럼 연약한 죄인이 아니어서 성추행을 하지 않고 사역하시는 것입니까? 저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핑계를 늘어놓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진부한 변명은 목회자들의 다양한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이지만, 이젠 하도 고리타분해서 정말 성도들의 귀에 염증이 날 정도입니다.

부패가 누구의 탓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내가 잘못했으면 내 탓이고, 네가 잘못했으면 네 탓인 것입니다. 아무거나 다 내 탓이라고 하면 안 되지요. 즉 내가 책임질 일이 있고, 네가 책임질 일이 있고,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함께 책임질 일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다른 이가 한 잘못도 무조건 '내 탓'이라고 하면 그게 사랑인가요. 그건 아니지요.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이 있고, 반드시 네가 회개해야 할 것이 별도로 있는 법입니다.

일부 목회자의 비리에 대해 대충 얼버무려서 '내 탓'이다, 또는 우리 '모두의 탓'이다 말하는 것은 결코 사랑도 아니고 관용도 아니고 정의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부정을 감싸고 덮어주니 교인들을 늘상 바지저고리처럼 우습게 보고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어 재발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교회를 세습했다면 그건 일차적으로 세습한 목사의 잘못입니다. 따라서 우선 아버지 목사와 아들 목사를 나란히 면직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돈을 유용한 목사나 장로가 있다면 일단 그들을 즉시 파면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회복과 갱신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소위 말하는 '양비론'이나 '물타기' 댓글을 가끔 봅니다. 글쓴이의 의도와 글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오도하는 것입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하며 정당하게 토론하면 될 것을 굳이 인신공격을 하거나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슬쩍 첨가하여 덮어쒸웁니다. 어떤 때는 정말 몰상식해서 그런 것인지 알면서도 고의로 그러는 것인지 영 헷갈릴 정도입니다. 달을 보라고 가르키면 달은 안 보고 "당신 손가락이 더럽다"고 탓합니다.

게다가 그런 댓글을 다는 이들 중에 진정으로 부패와 비리에 대해 그 심각성을 인정하며 고치자고 양심적으로 말하는 분들을 별로 못 보았습니다. 도리어 한다는 말씀이 "거룩한 교회를 해치지 말라"거나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그러면 목회 비리를 감추고 덮어야 거룩한 교회가 완성되고 온전해지는 것일까요.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적하는 자들이 누구인가요. 아니면 한국교회에서는 공금 횡령, 설교 표절, 논문 표절, 성직 매매, 뇌물 수수, 성추행, 교회 세습, 그리고 교권 남용 등이 새로운 하나님의 계명으로 추가라도 된 것인지요.

오늘날 교회 내에서 목회자들보다 더 많이 부정을 저지르는 집단이 따로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사나 다른 교인들도 잘못을 할 경우가 있고 그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그들이 목회자들만큼이나 그렇게 엄청난 부정을 '빈번하게' 저지르던가요. 결코 아닙니다. 아예 비교조차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유독 목사님들만이 이렇게 부정과 비리에 으뜸이 되시고 있을까요.

그 근본 이유는 목사직이 다른 직분의 사역에 월권하며 '과도한 교권과 특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단과 신학교의 난립으로 인해 품성과 자질이 미달인 목사들이 너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한국교회 부패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고 또한 그 주범이 누구인지 모르시겠는지요. 

정작 가장 억울해야 할 분들은 진짜 목사님들입니다. 언제나 가짜들 때문에 진짜가 피해를 입는 것이지요. 사실 진실한 목사님들의 수고와 희생과 헌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성도들이 정녕 분개하는 것은 목자의 탈을 쓰고 양들을 속이며 약탈하는 '종교 업자'들 때문입니다. 비록 겉모습은 경건한 척 멀쩡한 '목사'이나 실상은 세례 요한이 책망했던 '독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 뱀들은 거룩한 교회를 삼키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합니다. 거짓말과 술수와 위선과 표절과 눈물 연기와 사기와 돈과 교권력으로 양들을 기만하고 유린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이 크게 쇠락했다고는 하나 결코 이처럼 저질스러운 목회자들의 부패로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왜 유독 한국의 교회들은 이 모양일까요. 너무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아무튼 교회의 개혁은 이런 사악한 세력과의 영적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순진한 성도들이 대충 싸워서는 결코 이기기 힘든 매우 험한 싸움이지요.    

개혁은 외로운 길

만일 우리의 삶이 이생뿐이라면 '개혁 운동'처럼 피곤하고 손해보는 장사는 없습니다. 바른 말을 했다고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거하게 접대받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넌 뭐가 그리 잘났냐?" 하며 비난과 험담을 듣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귀족 목회의 결과로 맹신도와 병신도가 급증하여 그들이 다수가 된 교회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주장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개혁을 언급하는 신학 교수는 주로 대형 교회들이 먼저 나서서 박대합니다. 그 흔하던 강사 초빙마저 뚝 끊어집니다. 또한 교회 대형화나 세습을 반대하는 목사도 집회 요청이 중단됩니다. 종교 마피아로 뭉친 이 기득권 목사들은 잔머리를 잘 굴리며 보통 고약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교회를 비판하는 장로나 집사도 주위에서 슬슬 피합니다. 담임목사에 의해 위험한 인물로 분류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분명 말세입니다. 개혁을 하고 바르게 살자는 모임엔 겨우 수십 명이 모이고, 사기꾼 유명 목사들이 복을 받으라고 떠벌이는 집회엔 수천 수만이 모입니다. 바른말을 하는 목회자는 불평분자로 몰리고, 돈과 권력에 아첨하는 목사들은 강단과 교단에서 힘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교단에서 노회도 연회도 총회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대안이 없습니다. 도적질이나 성추행한 목사를 단체로 감싸고 도는 것이 그 전형적인 증거입니다.

세리와 창기는 가슴을 찢으며 회개했지만, 거짓 목사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양들은 회개하지만, 이리와 염소들은 결단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기 개혁을 끝까지 거부하며 '죄악의 낙'을 누리던 바리새인들이 가르쳐 준 역사의 진실입니다. 따라서 어떤 교회들은 앞으로도 계속 부패하고 타락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땅은 갈아 엎어야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다행히 루터와 칼뱅이 이미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웠을 뿐입니다. 이제 나머지는 우리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 거룩한 임무을 방관하거나 무시하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섭리하실 것이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허술한 논리가 정말 옳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계속 기다리며 중세 가톨릭교회에 남아 그냥 잘 먹고 잘살 것이지, 뭐하러 굳이 피흘리며 싸우고 나와 '개혁 교회'를 세웠는지 정녕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징계와 권징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전도도 선교도 안 해도 되겠군요. 그리고 총회는 또 뭐하러 합니까. 모두 하나님께서 처리하시고 처벌하시며 다 알아서 하실 텐데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속에 거주하시며 어부와 세리를 불러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지는 화려한 왕궁이나 거대한 성전이나 부촌이 아니라, 가난한 어부들이 사는 갈리리 해변과 작은 회당과 메마른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로마제국의 수도로 가셔서 황제와 귀족들과 품위있게 교제하고 고상한 스승으로 대접받으며 호사스럽게 사신 것이 아니라, 평생 유대 땅 시골 촌구석 민초들 속에서 초라한 목수로 사셨습니다. 

개혁은 외로운 길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루터, 위클리프, 후스, 칼뱅, 그리고 웨슬리 등 순수한 개혁자들치고 이단이란 말을 안 들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개혁은 부패한 인생들이 좋아하는 '부귀'와 '명리'와 '권력'과 '사치'와 '방종'과 '허수'와 '허세'를 결코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야말로 타락한 유대교의 진정한 개혁자이셨습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번듯한 성전 속에서 편리한 기득권을 누리며 안주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기 위해 궁전을 버리고 광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샬롬!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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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의 추종자 들에게ykim0216 2014-12-20 04:23:29
할렐루야
집사님 의 좋은 말씀 제발 주안에 교회 밸리채플 산토스 채플 및 최혁 의 밑에서헐덕거리며 개노릇 하는추종자들이여 이글좀읽고 회개하고 참신앙 참믿음 가지세요

최혁 의 추종자 들에게ykim0216 2014-12-20 04:22:47
할렐루야
집사님 의 좋은 말씀 제발 주안에 교회 밸리채플 산토스 채플 및 최혁 의 밑에서헐덕거리며 개노릇 하는추종자들이여 이글좀읽고 회개하고 참신앙 참믿음 가지세요

carrollton 2014-12-10 11:39:12
원래 어느시대건 간에 진리가 세상에서 승리 한것은 보기 드문일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따르겠다고 했지만 십자가의 도를 행할 때 그 사람들 오히려 예수 못박으라고 소리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면서 따르고 그러면서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보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연출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주신 믿음을 누구나 다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늘 소수의 사람들을 선택하는데...그중에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자인가? 아니면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가?
우리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제니퍼 2014-12-09 13:42:10
집사님의 말씀이 다 옳고 개혁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몰라 기도만 하고 있을뿐이며 다니던 교회에 헌금만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답답한 이심정을 누가 알아줄까요? 이교회가 아닌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마땅히 다닐 교회도 없고요.

우리 주님의 명예 2014-12-09 13:19:03
할렐루야
정말 옳은소리만 골라사시고 있네요. 가나안성도 정확히 말하면 가나안교회를
한번 만들어 볼려고 준비하고있는 집다도 아닌 성도입니다. 뉴욕에 살고요.
이글을 쓰신 신집사님과는 종씨고요.
뉴욕에 한번 오실 계획 없나요. 한번 모여 conference라도 합시다.
속터져 못살겍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