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알바 현장에서 마주치는 주님
극한 알바 현장에서 마주치는 주님
  • 김정주
  • 승인 2015.01.07 07: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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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5시반에 기상해서 6시반에 출발 밥먹고 8시반부터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한 시간 정도만 쉬고 저녁 8시에 오늘 일이 끝났다. 하루 종일 올라가고 내려가고 닦고 또 닦았다. 어제보다 더 높이 스카이차 최고 높이에 올라가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데 참 이거 나름 목숨걸고 하는 극한 알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간 해보았던 알바 중에서 최고 난이도였다. 함께 온 사랑하는 형제들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일에 대한 경험도 많이 없는데 묵묵하게 화이팅 해가면서 일을 하는 모습이 애틋하고 좋았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알류미늄 캔을 만드는 공장이어서 기계소리가 정말 대단하다.

쿵캉쿵쾅  지그덕 퓨슈 케케 삐뽀삐뽀 에에엥

이런 소음들 때문에 대화도 할수 없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면 엄청나게 샤우팅을 해야했다 소리들이 어찌나 때려박는지 고막이 메드 크라운 랩을 반복재생으로 들은 것처럼 먹먹했다. 오늘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일하며 그 소리의 비트에 맞춰서 오만가지 생각들을 했고 일이 다 마치고 나니까 머리가 초기화 된 것 처럼 맑고 투명했고 몸은 정말 피곤에 쩔어 있었다.

끝나고 나니 작업반장 집사님께서 오늘은 공장 식당에서 밥먹지 말고 삼겹살을 먹자고 하셔서 그게 큰 위로가 되었고 이걸로 제 2의 본전을 뽑아 보자는 마음으로 먹어 대었지만 그리 많이 먹지는 못했다. 숙소에 오니 10시였다. 한명씩 샤워하러 들어간 틈에 글을 써본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먼저는 많이 숙연했다. 나야 뭐 극한 알바라 해봤자 3박4일 (내일 해야할 분량을 다 마치면 무려 일당 2만원을 추가해주시고 조기퇴소라고 한다. 내가 조기퇴소할수 있게 기도를 부탁드린다...)이지만 매일 매일이 극한이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거 힘들다고하면 정말 엄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만 해도 극한이다. 퇴근도 없고 숙소로 가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신다. 그리고 내일 또 새벽같이 출근 반복 또 반복.

 극한의 일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시며 하루하루를 보내는걸까?  그분들이 주일날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을때 과연 그 메시지들은 어떻게 들릴까?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누구일까? 그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

내가 그분들처럼 일한다면 십일조를 정직하게 잘 낼수 있을까? 그분들이 요즘 교회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되길 바라고 있는걸까?

나는 그들에게 누구여야 하는걸까. 이러저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멈춰서 보기를 좋아하는 한 스님이 “쉬는 날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보세요. 봉사활동을 하시던가 외국어나 미술,  악기를 배우거나 뮤지컬이나 전시 여행을 가세요. 내 삶의 내용이 알차면 남의 일에 거품 물지 않습니다” 라고 썼는데 멈춰서 보기를 좋아라 하시더니 참 계속 멈춰있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극한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나마의 유일한 쉼이 텔레비전 틀어놓고 쇼파에 누워있는거다. 나도 오늘 숙소 오니까 책은 개뿔 하루 종일 들었던 기계소리 말고 좀 사람 사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티비가 보고 싶었다. 사는게 봉사활동이고 새빠지게 번 돈가지고 외국어나 악기 배우고 싶겠는가. 뮤지컬은 한 편에 도대체 얼마인지 몰라서 하는 얘기인가. 알차게 안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채울 일조차 없다는게 슬픈 현실이지 멈춰서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는 걸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못하는게 아니라 삶 자체가 그렇게 멈출만큼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구조속에서 사니까 도저히 못 멈추는거다.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늘 새벽 6시쯤 일어나서 일을 나가셔서 8시나 되야지 들어오셨다. 나는 고2때 회심을 했는데 어머니는 그때 집사님이셨는데 몇년이 지나서 문득보니 어머니가 일이 끝나고 오면 맨날 티비 앞에만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성경책을 보고 기도는 안할 망정 수요예배 금요철야 갈 생각은 안하고 맨날 티비만 보냐 생각하고 실제로 말한 적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티비만 보셨다.

우리 엄마는 집사님인데 신앙이 저렇게 없어요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어머니가 왜 티비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지를 거의 다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그리고 신앙이 없는게 아니었다. 신앙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렇게 강하게 꿋꿋하게 나와 동생 그리고 몇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에게는 시어머니)까지 다 끌어안고 사셨던 거다.

내 기준에 말씀보고 기도 안하고 예배 안드리고 맨날 티비만 보니까 신앙 없다고 단죄한거지 어머니의 신앙은 내 그런 어줍잖은 교리의 틀이 담을수 없는 더 크고 광대한 영역이었던 것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축복은 돈을 버는게 아니라 많은 좋은 사람들을 일터에서 만나서 알아가고 교회밖에서의 관계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과 교회 안에서만 있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다른 영역의 신앙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옆에 안에 예수님이 계셨는지 안 계셨는지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잘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그런 마음 속에서 살았다. 깊이 말씀을 볼 시간도 깊이 기도할 시간도 없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가까이 계신 주님을 깊이 느낀다.  

왜 책상이 아니라 공장에서 모텔에서 이렇게 내게 가까이 와 계신건지 잘 모르겠다. 외진 곳이어서 이곳은 해가 지면 정말 어둡다. 그렇게 정말 어둡기 때문에 이전에 조금 어두웠을 때는 보지 못했던 별들을 볼수 있었다. 그 별 거 참 아름답더만 ㅡ 오늘도 수고했어 정주야.

김정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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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형 2015-01-07 14:41:32
깊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