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사랑, 차별 없는 구원
차별 없는 사랑, 차별 없는 구원
  • 천진석
  • 승인 2009.09.12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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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설교] 수로보니게 여인의 울부짖음 앞에서, 막7장 24~30절

최근에 한국에서 한 남성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냄새가 난다'며 면박을 준 이유로 인격 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만간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외국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보았습니다. 이제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만의 이슈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문화와 관행은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현상입니다. 성이 다르다고, 지역이 다르다고, 계층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을 주는 문화는 도처에 있고, 또한 반대로 이에 대한 저항도 거세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철석같이 스스로 믿고 있음에도, 문화적으로나 관행적으로 이런 차별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모든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이나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누구가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요 실천입니다. 나의 가정에서 성차별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직장에서 인종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그 반대로 각종 차별을 당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실생활에서 차별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 우리는 오늘도 차별 가운데 사람됨을 되찾고자 절규하는 '스로보니게 여인'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출처 : God's geography.com)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차별과 관련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방인들’의 거주지역인 두로라는 도시를 여행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행보 자체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그들에게 신성한 복음을 전하러 가시다니…. 예수님의 행보를 관찰하던 사람들은 의아함, 거부감, 분노로 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옛 가나안 땅인 수로보니게에서 태어났고, 그리스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고생하고 있는 어린 딸을 구원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 여인은 삼 중 차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선 여인입니다. 지독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하나의 재산으로 취급받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고난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라도 어떻게 하든 먹고 살기 위해 비집고 들어와 사는 나그네입니다. 그녀의 딸은 더러운 영에 붙잡혀있습니다. 조상의 죄, 하나님의 저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조롱받고, 소외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야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구조적인 차별 속에서 인간으로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씀을 그냥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예수님이 이상한 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개'에게다 비유를 하시나?

그러나 이 말씀은 매우 날카로운 풍자의 말씀입니다.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말하고 행한 것, 그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땅으로 복음을 전하러 오신 예수님을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자신들에게 대한 따끔한 질책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바로 사람을 이렇게 대하지 않느냐.'
 
그 여인은 워낙 이런 차별의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또한 딸을 살려야한다는 일념에, 그 말씀에 개의치 않고 간곡히 간청을 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어린 딸에게 치유의 은혜가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의 대답은 어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를 개처럼 취급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주인도 자기 자식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개에게도 먹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까!'
 
정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만인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당시의 문화 가운데서, 제한된 언어로 이 진리를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구별이 없습니다. 남자냐 여자냐 차별이 없습니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 빙고!'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 이 여인은 상석에 앉게 될 것입니다. 빼앗긴 자가 다시 돌려받게 되니 상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곁에서 이 사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제자들의 입장에 있습니까, 아니면 제발 살려만 달라고 하나님의 '보편' 은혜를 간구하는 이 여인의 입장에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차별 가운데 사람됨을 되찾고자 절규하는 '스로보니게 여인'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별 없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기초한 인간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오늘 우리에게 함께 걷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한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손과 발이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것처럼 차별 없는 인간관계를 삶의 현장에서 뿌리내리는 데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진석 / 살림교회(http://www.sallims.org/)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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