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사나이'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나
'서부의 사나이'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나
  • 지성수
  • 승인 2016.05.0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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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 선생

나의 인터넷 아이디는 ‘없이 계신 이’이다. 그런데 사실 이 이름은 다석 유영모 선생이 하나님을 우리말로 풀어서 부른 것이다. 내가 망령되게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내 아이디로 쓴 이유는 그렇게라도 해서 이 좋은 이름이 좀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다석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분의 글이 난해하기도 하고 당장 소화 해야 할 것들도 많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호주로 이민 올 때 앞으로는 책을 사보기도 힘들고 하니 다석에 대한 공부를 중점적으로 하자는 생각에서 다석에 관한 책을 샀다.

다석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모두 전혀 모르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는 것보다는 희미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구체화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석이 우리 안에 있는 즉 장롱 속에 깊이 넣어두어 잊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해 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지금 시중에서 유행하는 통속적 기독교는 전혀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이 느끼고 있었다. 선교사들에게 얻어 온 서구사상체계 위에 세워진 기독교를 그대로 직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영어 학교에 다닐 때 우리 반에 러시아인 두 명이 있었는데 지금 이름은 분명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배너무고프’와 ‘상노무스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인간은 모두 공산주의 시대에 태어나 교육받고 성인이 되어 사는 인간들인데도 러시아정교회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대단했다. 정작 지들은 교회에는 전혀 나가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사라졌다가 10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정교회에 대해서 아주 친근하게 생각하더라는 거다. 왜 그럴까? 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열심히 아주 오래 교회를 나가도 어쩐지 어색한 것이 있다. 어색 정도가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하여 무지한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제사를 폐한 예 같은 것은 천추에 남을 만한 과오이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원죄란 무엇인가?’ 등의 쓸데없는 의문 때문에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많이 낭비했었다. 쓸데없는 질문이란 의미는 질문 자체가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질문 때문에 보냈던 쓸데없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는 이다.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구사회의 신념체계가 기초를 이루는 헬라철학을 바탕으로 서구 기독교의 폐해이다. 틀린 질문에 답을 하면 틀린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서양 철학적 사고에 젖은 질문을 하면 서양 철학적 사고에 찌든 답으로 해야 맞는 일이다. 

그런데 질문은 동양적 사고에서 했는데 대답은 서양적 사고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 기독교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진짜 기독교란 복음에다 '순'자를 붙여 자칭 ‘순복음’(사실은 잡복음)이 아니고 동양적 체질에 맞는 성서 이해에 기초한 기독교여야 할 것이다.

나는 미국판 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서부영화에는 줄거리와 배경과 배우는 달라도 항상 공통적인 일정한 도식이 있다. 이를테면 한 마을이 잔인무도한 악당들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억눌려 지내고 있다. 보안관은 힘이 없거나 부패해서 악당들의 편이다. 어느 날 낮 선 사나이가 말을 타고 마을로 들어와 우연한 사건으로 악당들과 부딪치게 되고 마지막에는 혼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마을의 질서를 회복한다. 

그 사건이 전개되는 동안에 마을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고 악당들은 여인을 괴롭힌다. 그 사나이가 천신만고 끝에 악당들을 모두 처지 한다. 주민들은 사나이가 계속해서 그 마을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사나이는 여인과 결혼하여 정착하지 않고 다시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서부의 사나이 이미지로 미국을 기억하듯, 서구 철학적 개념으로 하나님과 신학을 이해해서는 동양적 질문에 답을 낼 수 없다.

서부 영화는 전통적인 민담이나 전설과 달리 서부로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계몽적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근대적 산업국가로 접어드는 20세기 초반의 미국인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와 태도를 새롭게 점검하려 했음을 말해준다. 애초부터 단순히 ‘서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 오락물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에게 프런티어 정신과 아메리카니즘이라는 신화를 전파하기 위한 표현물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자기네 나라 국민을 교육, 계몽하기 위하여 서부영화를 활용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좋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날 때 얻은 미국의 이미지는 바로 서부의 사나이 이미지라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받는 교육은 어떠했던가? 도대체 왜 음악 시간에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머나먼 스와니 강’을 불렀어야 했으며 지리 시험에 미국 미시간 주의 5대 호수가 나와야 했단 말인가? 덕분에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미국인들보다도 미국에 대한 일반 상식이 풍부한 교양인이 되었었다. 그러나 철이 들어 역사를 알고 국제 사회 현실을 알고 보니 미국의 실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서부의 사나이 스타일의 하나님이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문화와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 한국 현실의 통속적 기독교는 아마도 앞으로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한다. ‘순수 동양적 한국적 기독교’ 이해는 반만년을 두고 흐르는 동양의 정신에 깊게 뿌리박은 한국인의 영성으로 더욱 쉽게 기독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 길을 개척해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개척해 놓으신 분이 다석 유영모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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