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은 짧게
서론은 짧게
  • 김기현
  • 승인 2009.12.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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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김기현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신앙'(1)

첫 문장 쓰기는 웬만한 작가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글 한 편 완성하는 만큼 어렵다. 할 말은 많은데 막상 쓰려고 하면 첫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막막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의외로 간단하다. 첫 대면인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만나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고 연습도 하지만, 결국 첫말은 "안녕하세요, 김희림입니다" 라거나 "저는 김서은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정도다. 그렇게 간단한 말 한마디로 말문을 트면 대화도 이어간다.

서론을 문학적으로 멋있게 쓰려고 하고, 강력한 인상을 주려고 거창하고 거대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글이 길어진다. 허나, 너무 길면 글은 무너진다. 그러면 본론까지 잡아먹는다. 서론을 쓰면서 이미 본론까지 다 썼다. 정작 본론에서는 쓸 말이 없다. 할 수 없어 같은 말을 되풀이하거나 억지로 이것저것 끌어오다가 난삽하기 이를 데 없다. 본론보다 서론이 많고, 결론은 없다시피 한다. 서론이 장황하면 읽기 싫다. 좋은 글은 서론이 간결하다.

이건 글 쓰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우리말과 글의 구조도 한몫한다. 한국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안다고 한다. 예컨대, 영어 문장은 "I go home"이라고 하면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오든 상관없이 집에 가고 있다. 반면 우리말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집에 가다"라는 문장을 하염없이 늘릴 수 있다. "나는 집에 가다가 빵집에 들렀다"로 끝내면 좋은데, "들렀는데 친구를 만났다"로 이어질 수 있다. 말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글은 그러면 못쓴다.

서론의 기능, 독자의 관심 끌어당기기

해결책의 하나는 서론의 기능을 잘 인식하는 것이다. 서론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내용을 암시하거나,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읽게끔 만들어야 한다. 읽는 이는 쓰는 이와 다르다. 저자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쓴다. 독자는 읽을지 말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온통 다른 생각과 선이해로 꽉 차 있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켜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서론은 초전박살이 중요하다. 너무 뜸들이면 안 좋다.

설교의 서론과 글쓰기의 서론이 하는 일은 같다. 설교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주의를 집중시키고, 설교의 주제를 소개하는 일이다. 때문에 설교의 서론도 간결한 것이 좋다. 전병욱 목사는 그날 설교의 제목을 일러 주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거나,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첫 번째 시간입니다. '떠난 후에 남는 것이 진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주제를 압축적으로 잘 전달한다. 가능한 한 서론은 짧게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예화로 시작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사실 예화는 글의 시작으로 일반적이고, 권장할 만한 좋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가급적 피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분량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쓰려는 주제에 알맞게 이야기를 각색하고 압축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결국 잔뜩 늘어나서 글이 엉킨다. 마치 자장면을 주문해 놓고는 맛있다고 단무지만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화를 사용하되 간결하게 줄일 자신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는 게 좋다.

세 번째 해결 방법은 서론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것이다. 서론의 길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글 전체를 가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문의 칼럼은 대개 7-9매 어간이다.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는 기사를 A4 2장 내외를 선호하고, <창작과 비평>의 주간 논평은 원고지 20매, A4 2장 분량이다. A4 1장은 원고지 9매 정도다. 글 프로그램의 환경 설정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 경우다. 그래서 통상 A4 1장을 원고지 10매로 생각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서론은 전체 글의 1/5, 즉 20%를 차지한다. 신문의 칼럼은 A4 1장을 넘지 않는데, 문단은 5개에서 7개가 된다. 그중 서론은 한 문단이면 족하고, 두 문단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약간 적다 싶어야 장황하게 길게 쓰지 않게 되고, 글 전체의 짜임새가 있다.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 아는 것을 다 털어놓으려는 과도한 열정을 자제해도 서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A4 2장의 글은 단락 2-3개는 되어야 한다. 이 글도 원고지 20매로 계산했기에 두 문단만 썼다. 서론이 길어지는 원인을 분석하는 단락을 덧붙이면 3개다.

글이 길어질수록 서두가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고, 문단 수는 늘어난다. 논문 한 편은 100매에서 150매다. 이 경우 20%면 A4 2장에서 3장이다. 서론으로는 많은 편이다. 논문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A4 1장 이상, 그러나 2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10%선이면 무난하다. 논문을 쓰기 위해 사전 정비 작업들, 예컨대, 배경 설명이나 개념 정의, 문제 상황 등, 설명할 것이 많아지면 독자적인 글로 만드는 게 낫다. 글이 길어질수록 서론도 짧아져야 한다.

설교의 경우, 시간으로는 2-10% 내외라는 게 전통적인 견해다. 혹자는 20%에서 심지어는 30%도 가능하다는 이들도 있다. 서론을 너무 짧게 하는 바람에 청중과의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설교 시간은 25분에서 길게는 50분이다. 30분을 기준으로 보면, 10%는 3분이고, 20%는 6분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가면 설교자의 말은 늘어지고, 청중의 긴장은 약해진다.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의도는 희석되고 샛길로 새기 십상이다.

설교와 칼럼 예문을 각각 하나씩 분석해 보자. 며칠 전에 읽은 김지찬 교수의 <하나님의 백성이 전 생애로 대답해야 할 6가지 질문>(죠이선교회)은 잘 구성되어 쓰인 글이므로 설교 에세이의 좋은 모범이다. 이 책에는 도합 6편의 설교가 오롯이 담겨 있는데, 한편 설교가 20쪽에서 26쪽 가량 된다. 서론은 2쪽에서 많아도 5쪽을 넘기지 않는다. 10%에서 20% 폭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서론이 좀 긴 경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설명할 것이 많았거나, 소개하는 내용을 직접 인용해 주기 때문이었다.

서론은 짧게, 단 정석은 없다

그러면 반드시 이 비율에 맞추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서론의 목적을 달성만 하면 된다. 짧은 글은 20%, 좀 긴 글은 10%라는 공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공식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달하려는 바와 주장하려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 그만이다. 통상적으로 '이 정도면 좋다'는 것이지 딱히 일점일획이라도 손댈 수 없는 율법이 아니다. 다만, 짧게 쓴다는 의식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다음 글은 글쓰기 학교 수련생인 목사의 부인이 쓴 글이다. 제목은 "자녀들에게 성경 묵상을 가르치려면"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두 아이의 친구들을 모아 어린이 묵상 모임을 시작한 지도 벌써 두 해가 넘었다. 그동안 자녀들에게 성경 묵상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부모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에게 주는 내 대답은 "함께, 지금 당장 시작하라"다.

A4 1장에 7개 문단 중 서론은 한 단락이다. 서론의 길이로 적당하다. 자기가 쓰려는 글이 어떤 주제인지를,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정리되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말씀 묵상을 잘 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이럴 경우, 서론을 다르게 쓸 수도 있다. 예컨대, 글쓴이가 묵상 모임 지도하면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이때도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글쓰기는 기도하기와 비슷하다. 하여, 외람되게도 주님의 가르침을 살짝 비틀어 서론 쓰기의 첫 번째 지상 강좌를 마친다.

"너희는 서론을 쓸 때 초보자와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길게 하여야 남들이 읽는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짧은 듯해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쓴 너희의 글이 읽을 만한 좋은 글이라는 것을 너희 독자들이 다 아느니라."

김기현 /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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