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뛰고, 웃고, 그렇게 행복했던 하루
먹고, 뛰고, 웃고, 그렇게 행복했던 하루
  • 박지호
  • 승인 2007.05.07 0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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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뉴욕·뉴저지 밀알선교단의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큰 잔치'

▲ 율동과 함께 '싹트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쑥스러운 듯 웃고 있는 문요한 군.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인 5월 5일 토요일, 뉴욕·뉴저지 밀알선교단에 속해 있는 장애우들을 위해서도 즐거운 잔치가 마련됐다. 재미있고 다양한 프로그램, 맛있고 풍성한 음식, 자원봉사자들의 세심한 손길은 장애우들이 맘껏 먹고 뛰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하루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잔치가 열린 뉴저지연합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우선 배부터 채웠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어머니와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그리고 푸짐하게 만들어준 밥과 반찬이 있고, 오랜만엔 만난 친구들과 함께 먹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 맛있었을 게다. 먹다가 얘기하다가 웃다가, 시끌벅적한 밥상이었다.

▲ 12학년인 안은소 양은 1년째 봉사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장애우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우들 곁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수저로 밥과 반찬을 골라주었다. 너무 정성껏 먹여주기에 친누나인가 하고 물었더니, 토요일마다 열리는 사랑의교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12학년인 안은소 양은 1년째 꾸준히 봉사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장애우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 이날 페이스 페인팅은 '사랑의교실' 자원봉사자들이 맡았다.
식사가 끝나고 한 사람 한 사람 건강 상태를 검진했다. 내과·치과·한의과 진료 부스가 마련되었다. 내과와 한의과는 북적거렸는데 유독 치과 부스는 썰렁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치과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팔에 소름이 싹 돋지 않는가. 보호자의 손에 붙잡혀 끌려오다시피 치과 부스에 온 한 장애우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치료하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하겠다면서 짓는 의사 선생님의 미소도 효과가 없었다. 치과 의사 선생님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호소(?)를 했지만, 장애우들은 못들은 척 딴청만 피웠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장애우들을 일일이 쫓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치아 상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종현 씨가 내과 진료를 담당했다. 부부가 함께 자원봉사하고 있다.
건강 검진이 끝난 다음에는 미니 올림픽이 열렸다. 승패도 없고 규칙도 없는 올림픽이다. 재미만 있으면 된다. 앉아서 하는 좌식 배구를 했다. 일단 상대편 코트로 넘어간 공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공이 땅에 닿든지 네트 밑을 지나든지 상관없었다. 그냥 공을 잡고 던지는 재미다. 청중이 맞장구를 치며 응원을 해주니 장애우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공을 던졌다. 애초부터 점수에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한 번도 던져 보지 못한 장애우에게 공을 넘겨주는 여유도 보였다.

▲ 좌식 배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장애우들.

▲ 힘들게 잡은 기회. 여자친구가 꺾어준 꽃을 귀에 꽂고, 진지하게 공을 던지는 정태영 군.
이날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장기 자랑. 평소에 인사하면 수줍어하던 장애우들도 무대가 마련되니까 화려한 율동과 가창력을 뽐냈다. 선글라스와 넥타이로 잔뜩 멋을 낸 세바스찬 군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폴란드 노래를 한 소절 뽑았다. ‘마카레나’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던 이순영 씨는 언론에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안타깝지만 현란한 댄스를 담은 사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됐다. 뇌성마비로 몸도 가누기 힘든 박지혜 양은 정상인도 소화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노래를 열창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정태영 군과 김캐빈 군의 요란한 막춤은 분위기를 한껏 달구어 놓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최나리 양은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지만, 건반도 보지 않고 어려운 곡을 곧잘 연주했다.

▲ 선글라스와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세바스찬 군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폴란드 노래를 한 소절 뽑았다.

▲ 정태영 군과 김케빈 군의 현란한 막춤은 분위기를 한껏 달구어 놓았다.
훌륭한 잔치는 수고의 손길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잔치를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9학년 학생부터 60세 할머니까지 자원봉사자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그저 기저귀나 갈아줄 뿐 하는 일도 없다”며 몸을 낮추던 안계주 씨(61)는 “장애우들이 반가워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잔치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유명 연예인의 공연도, 화끈한 이벤트도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장애우들은 이날 구경꾼이 아니라 잔치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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