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공성은?
성경과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공성은?
  • 유영
  • 승인 2016.09.24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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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육과 공공성의 관계 (2)

1부에 이어서 계속

입시와 채용 단계에서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 6일 국회에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내용을 받아들여 법안으로 상정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입시원서와 이력서, 자기소개서 등에 출신 학교를 기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출신학교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기자회견에러 밝히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개인적으로 이 법안을 지지한다. 아마도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던 탓이 큰 것 같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좋은 학교를 나왔다면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여튼 그 이유로 교육학은 물론 기독교교육 관련 서적을 열심히 찾아보며 공부했다. 교육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아진 탓이다.  

관심을 두고 공부하던 주제로 법안으로 나와 참으로 반갑다.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행해지는 기독교교육을 위해서도 입시와 관련한 내용들이 크게 변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출신학교로 사람이 갈라지는 잘못된 방향을 바꾸기 위한 차별금지법안이다. 이는 기독교교육의 자율성과 학교가 회복해야 할 공공성을 위한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법안이 나왔으니 지지하는 입장에서 수저를 하나 얹으려 한다. 이를 생각해 보는 글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기자 주

공공성은 교육이라는 분야에 한정할 수 없다. 공공성 담론이 범람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이 부족하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높아지는 탓이다. 우리는 공공성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를 산다. 권력과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은 정의 문제와도 맞물린다.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공공성이 화두에 오른다. 서로 다른 의도와 목적을 가진 당사자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성의 이름으로 다투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개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개인이나 집단도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하다고 주장하며, 공공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공공성이란 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신세가 되었다. 유동적, 가변적 사용이 넘친다. 이러한 가변성을 줄이기 위해 먼저 공공성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공성의 개념과 우리 사회의 논의

공공성은 ‘사실을 기술하는 서술적인 의미와 가치로서 추구되는 규범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사상적 전통, 사회 제도와 공공성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공성을 논의할 때 기술적인 차원과 규범적인 차원을 함께 말해야 하는 이유다. 

먼저 공공성은 다음 세 가지를 포함한다. 공교육과 공공성을 연구한 서울대학교 나병현 박사의 말이다.

“첫째, 국가와 관계된 공적인 것(official)으로 국가가 법과 정책 등에 근거하여 국민에 대하여 행하는 활동의 특성과 연관한다. 둘째, 특정한 개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 관계된 공통의 것(common)으로 공통의 이익, 재산, 모두에게 타당한 규범, 공통의 관심사 등을 뜻한다. 셋째, 누구에게나 개방된 것(open)으로 어떤 사람의 접근도 거부되지 않는 공간이나 정보를 뜻한다.”

둘째로 사회 규범에서 말하는 공공성은 사회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민주주의에서 공공성은 민주적 합의, 바로 공화에 기초한다. 반대로 개인주의적 입장에서 공공성은 개인 이익의 극대화가 이뤄지면 공익 극대화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따른다. 공리주의나 칸트의 도덕적 개인주의가 이 논리의 주춧돌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공공성 논의는 무엇을 기초로 할까. 우리 사회는 2000년 이전까지 반독재, 즉 민주화를 중심으로 공공성 논의를 키워왔다. 공화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와 국가 기반 공공성을 강조하는 독재 전체주의가 대립구도를 이루었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 논의는 민주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공화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와 국가 기반 공공성을 강조하는 독재 전체주의가 대립구도를 이루었다.

하지만 IMF와 민주적 정권 이양 시기를 맞이하면서 신자유주의 바람이 우리 사회에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기 바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개인주의적 공공성 담론이 커졌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한 시대에 전체주의와 공화주의, 개인주의가 대립하며 공존한다. 즉, 우리 사회에서의 공공성은 ‘공화’라는 정치적 담론 안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가치 실현이라는 개인적 영역의 논의가 이뤄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화, 자아실현, 양극화가 정치, 경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성 논의는 확장되고 있다. 국가 경제의 파탄을 경험한 이후, 경제적 양극화 심화와 직업 유지의 불안함 등 사회 불안 요소가 더해졌다. 이는 그동안 사회와 경제 모든 분야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고,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성경, 공공성을 말하다

공공성 논의는 기독교인에게도 요구된다. 민주화, 자아실현, 양극화를 통해 부당함을 경험한 사람들이 정의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이는 꼭 필요하다. 부당함을 경험하는 같은 민중이자 이웃으로, 이 땅을 돌볼 청지기로 부름 받은 사명자로 자신을 규명한다면 말이다. 공의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나라를 실현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성 논의를 성경적으로 성찰해 보려고 한다. 

먼저 구약의 오경에서는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의 삶이 십계명에 나타난다. 십계명은 하나님, 이웃과의 관계라는 수직, 수평적 이중 구조를 포괄한다. 전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공공성을 이룰 근간을 다진다. 후자는 그 열매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한다.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는 5-10계명은 개인적 차원의 덕목을 넘어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이화여대 구약학 이윤경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부모 공경,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 이웃의 재물 등에 관한 계명을 개인 도덕만 아닌, 공동체를 위한 선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 처벌도 엄격하게 내려졌다. 즉, 십계명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법과 공동체적 차원의 시민법이 함께 만나는 자리로 역할 하며, 공공성을 드러낸다.”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예언자적 사역도 공공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나라의 가치 아래에서 이뤄진다. 하나님나라는 세상 정치와 종교의 통치라는 잘못된 억압에 맞선다. 즉, 로마제국은 물론이고 유대교와도 대립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제국적 정치 체제와 맞서는 동시에 기존 종교 질서인 유대교를 비판하고 전복하는 특징을 지녔다.

개인 차원에서 구원이라 불리는 부분에서도 이러한 예수의 공공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지 않았던 죄인들을 사랑받는 자들로 확인시켜 주었다. 서울장신대 김호경 박사는 이를 다음처럼 설명한다. 

“사회적 음지에 있던 죄인을 양지로 불러들였다. 따라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차원에서 즉 기존의 질서 하에서 비주류였던 죄인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을 주류로 복원시켜서 이들이 공적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공공성의 핵심이었다.”

초대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우세했다.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헬라파 집사를 세웠다. 공공성 회복을 위한 공평한 관계를 구축한 교회적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약의 사도행전에도 공공성을 생각해 볼 좋은 이야기가 있다. 초대교회에 있던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간의 갈등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초대교회는 날로 부흥했다. 교회 부흥으로 초대교회가 힘쓰던 과부를 돌보는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오순절 이전부터 명부를 관리해 왔는데, 갑작스럽게 인원이 늘어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도들은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에서 물러난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기 위해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회중에게 밝히고, 교회 행정을 담당할 7명의 집사를 선출한다. 집사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당시 집사는 현대 장로교회에서 생각하는 집사 개념과 다르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 빌립의 전도 여행 등의 내용에서 나타나듯 성경 기자는 집사를 사도에 준하는 이들로 묘사한다. 

초대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우세했다.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헬라파 집사를 세웠다. 공공성 회복을 위한 공평한 관계를 구축한 교회적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공성은 이스라엘의 교육 전승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집트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이웃을 섬기라고 가르친다. 토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전승 교육은 이러한 내용을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단순한 구절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담긴 하나님의 공의와 해방을 기억하라고 한다. 

기독교의 공공성은 역사적 경험을 통한 전승으로 교육할 수 있으며, 공공성과 교육은 떨어질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음 글에서는 공공성과 교육의 관계를 살피려고 한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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