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전쟁의 잔해
[번역] 전쟁의 잔해
  • 최봉실
  • 승인 2007.05.0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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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그게 바로 전쟁이야. 그래서 난 전쟁이 정말 싫어"

몇 주 전 나의 부친 짐 월리스 1세가 방문했다. 그는 현재 82세이지만 여전히 건강하다. (이 글은 2006년 7월에 쓴 것이다. 짐 월리스 1세는 2006년 11월 8일 타계했다. 2007년 2월 <소저너스>에 ‘A Faith of Man’이라는 제목으로 부친을 기리는 글이 실렸다. - 역자 주) 두 손자들을 보러 워싱턴 D.C.까지 홀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언제나 할아버지가 방문하는 주는 의미 있고 신나는 시간이다. 손자인 룩이 2학년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도, 룩의 동생인 잭이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 생활이 어떤지도 들여다볼 테고, 어린이 연맹 경기(리그전) 연습과 토요일에 있을 큰 시합도 관람하고, <소저너스>의 새 사무실도 둘러볼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곳을 다 가 보았다.) 그는 특별히 멕시코식 식사도 맛볼 요량이다.

내가 룩의 야구팀을 지도하는 동안 부친은 관람석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나는 아련한 향수에 젖었다. 어린 시절 우리 야구팀을 지도해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습을 하던 룩이 아주 잘 했다는 소리를 듣고 무척 흐뭇했을 텐데, 기쁜 것은 룩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기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관람석에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룩은 학교에서 개인 발표 시간을 가졌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것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마침 할아버지가 방문한 터라 룩은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2차 대전에서 해군으로 활약했다는 얘기를 하자, 한 아이가 누가 전쟁에서 이겼냐고 물었다. 미국이 이겼다는 말에 반 전체가 환호했다. (그리고는 몇 점으로 이겼냐고 묻는다.) 물론 고만한 나이에 전쟁이 무엇인지를 알 리 만무하다.

주말 가까이에 하루 휴가를 내어 나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신축된 지 2년째인 2차 대전 전쟁 기념관을 갔다. 워싱턴 D.C.에 있는 큰 기념관이나 유적지 중에서 그가 보지 못한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나도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둘 다 그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을 어마어마한 내용이 궁금했다.

기념관은 근사했지만 과도해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구축함-소해정의 신참 공병(엔지니어링) 장교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모든 태평양 섬의 이름들을 기억할 수 있는 대로 다 확인해보고 싶어 했다. 당시 그가 탔던 함선은 일본 침투를 앞두고 있었고, 따라서 높은 사망률이 예상되었다. 많은 이들처럼 부친도 원자폭탄이 자신의 생명도 구했고, 지금의 우리 가족도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믿었다. 그때 그는 막 결혼한 상태였기에 고국에서는 신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 신부는 자칫하면 젊은 과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념관 주변 그늘에 돌로 된 편안한 긴 의자(벤치)가 있는데, 거기서 우리는 전쟁 당시와 그의 학교생활, 그리고 부모님들이 결혼한 직후 겪게 된 첫 얼마간의 세월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결혼은 전쟁에 의해 극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놀랍게도 해군 장교로 임관되고,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는 이 모든 일이 한날에 이뤄진 것이다!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를 감당할 새로운 장교들을 급히 지원받았고, 아버지가 배치된 지 단 몇 달 만에 태평양 전쟁이 종식되었다. 아버지는 일본이 항복하기 직후 최종 소탕 작전 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핵폭탄이 떨어진 지 바로 몇 주 후 히로시마를 방문했다고 한다. 2인 조사반의 일원으로 공장과 같은 주요 건물에 폭탄이 미친 영향을 조사했다. 그 황폐함이란 결코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핵폭발이 그 지역의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는지를 설명하며, 두 번째 핵폭탄이 돌진해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심지어 거대한 공장들마저도 모조리 산산조각이 되어 온 땅을 덮어버렸다고 했다.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한 후로는, 특별히 동맹국인 독일과 함께 일본이 자신의 수많은 친구들을 죽인 후로는, 일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자신과 수많은 동료 군인들은 일본이 원자폭탄을 받을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와 동료들은 거의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히로시마를 본 것이다. 두 명의 젊은 미국인이 온천지에 깔린 파편들을 밟으며 지나가던 중, 임시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작은 벽돌 더미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어린 소녀 한 명이 벽 뒤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소녀는 다섯 살쯤 되어 보였으며, 옷은 더럽고 헤어져 몸에서 떨어져나갈 것 같았고, 돌볼 사람 하나 없이 완전히 혼자인 것 같았다고 한다.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아주 생생히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어 보였다. 그리고 안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느낌으로 괴로워했다. ‘그 아인 아주 어렸어. 그 아인 아무 잘못이 없어. 이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거야.’ 그들은 방사능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현재 82세의 전역 군인인 그는 60년 전의 그 하루를 회상하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전쟁이야. 그래서 난 전쟁이 정말 싫어.’ 부친은 지금도 여전히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시민들이, 군사적으로 전혀 중요하지도 않는 도시들이, 왜 폭탄의 목표가 되어야 하냐고 묻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한 섬에 떨어뜨려도 충분한 경고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는 그때 이후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 그리고 특별히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에 분개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야. 전혀 필요 없는 전쟁이었어’라고 말하는 동안, 그의 눈물은 분노로 변해갔다.

부친은 전 NBC 아나운서인 탐 브로커(Tom Brokaw)가 ‘위대한 세대’라고 칭한 그 시대의 사람이다. 그가 한 주간 동안 방문하고 돌아간 뒤, 어린 두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참 훌륭한 분으로 회상했다. 그가 돌아간 후 우리는 모두 그를 그리워했으며, 더 가까이서 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룩은 잠자리에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부친은 그의 세대가 은퇴한 이후 이 나라가 나가고 있는 방향이 영 탐탁지 않다. 지금도 종종 CNN을 볼 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쟁을 할 수가 있지?’라며 전화로 묻는다.

기념관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떻게 전쟁 참전자가 전쟁 반대자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무분별한 끔찍한 고통이 일으키는 감정을 그가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금의 전쟁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전혀 참전한 적이 없으며,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자격이 없다.

다섯 살 소녀가 전쟁의 파편 뒤에서 걸어 나와 지금 당장 그들의 길을 멈추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그 전쟁의 파편 가까이 다가가 결코 그 아이의 고통을 목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짐 월리스는 <소저너스>의 편집장이다. 
* 번역 / 최봉실


<미주뉴스앤조이>는 <Sojourners>의 허락을 받아
Jim Wallis의 칼럼 원문, 번역문, 해설을 동시에 게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양심적인 미국 지성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수준 있는 글로 영어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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