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탄생 증인목자, 삯군목자 맞다
예수탄생 증인목자, 삯군목자 맞다
  • 김동문
  • 승인 2016.12.14 0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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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탄 이야기, 동화가 아닌 역사로 다시 읽기 (2)

아래의 그림을 보면서 성탄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한 캐릭터의 하나인 목자의 이미지를 잘못 묘사한 것을 찾아보라. 최소한 5가지 이상을 찾아보라. 목자의 들판의 환경에 관련된 것, 양떼의 움직임, 목자의 옷차림 등에서 오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밤에 양떼가 서있거나 움직이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베들레헴이나 일반적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의 목축현장은 저렇게 무성한 풀밭이 드물다.

'세 번째 장면. 증인으로 삯군 목자를 내세운 것은 반전?'

복음서를 읽는 이들 가운데, ‘삯군’ 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목사나 유급 교역자에게 “당신은 ‘삯군 목자’”라 말하면 분노할 이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삯군 목자가 정말 문제였을까? 예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삯군 목자 아니었을까? 다시 아래의 본문을 읽어보자.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눅 2:8)

예수 시대, 가장 천한 직업이 있다면,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가 있다면, 목자를 꼽을 수 있다. 자영업자가 아닌 삯을 받고 목축을 하는 이들이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삯군 목자도 고용된 직업 목자들이다.

직업 목자들의 존재는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은 물론 믿음의 조상들과 당시의 부유했던 유목민들에게는 고용된 직업 목자들이 있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 이삭과 그랄 땅 왕 아비멜렉의 목자들 사이에 영토 다툼이 벌어진 장면이 성경에 나온다. 이집트(애굽)로 들어간 야곱의 자녀들 가운데는 바로의 가축을 관리하는 목자도 있었다. 다윗과 갈등을 일으킨 나발도 목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예수님 시대 때 예루살렘 거주자들의 시선에 의존한다면, 목자는 아주 천하디 천한 직업이었다. 요아킴 예레미야스의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 따른다면 당시 목자와 더불어 천한 직업들이 등장한다. 낙타몰이꾼, 당나귀몰이꾼, 마부, 뱃사공, 의사, 푸줏간 주인 등이 부정직하고 도벽이 심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천직으로 취급받았다. 이런 분위기는 목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양이나 염소, 낙타나 소를 소유한 사람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 목자 즉 삯군 목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이미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도시 밖 광야에 살면서 가업으로 목축을 하던 유목민들도 무시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지만 도시 안팎에 살면서 목자를 직업으로 가졌던 삯군 목자들이 받은 수모나 차가운 눈초리는 만만치 않았다. 양떼의 주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양떼를 지켜야 하는 목자들의 삶의 특성은 다분히 독립적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여야 하는 거친 직업이었다. 위험한 상황은 광야의 맹수들의 공격이나 양떼를 노략하려고 하는 도적떼의 공격이다. 이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양떼를 돌봐야 하는 목자들은 낮과 밤, 뜬 눈으로 지내야 하는 험한 직업이었다.

베들레헴 지역의 양떼들은, 대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 부자들의 것이었다. 육식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 시절(오래되지 않은 시절, 한국도 소고기국을 먹는다는 것이 부의 작은 상징이기도 했다.) 양과 염소는 성전 제물로 공급되는 특수한 존재들이기도 했다. 양과 염소털은 옷감이나 생활에 필요한 직물을 짜는 재료이기도 했고, 치츠나 발효 음료의 원천이기도 했다.

험한 삶을 살아가는 목자들이지만, 이들의 성실함에 대한 좋은 평판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직하고 도둑질하고 남의 땅을 무단히 침범하고 그 땅의 소산물을 슬쩍하는 등 나쁜 짓을 일삼는 이들이 그 시절 삯군 목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하나였다. 이것은 적잖이 예루살렘 힘 있는 자들이 만든 가공된 이미지였다.

이들이 조작한 이미지 덕분에, 목자로부터 직접 양털이나 젖이나 양 새끼를 사는 것도 삼가야 했다. 대개의 경우 남의 것을 슬쩍한 장물일 경우가 많다는 평판이다. 예수님도 당시 삯군 목자에 얽힌 평판을 인용하셨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라."(요한복음 10:12~13).

이런 평판 때문에 목자들은 재판관이 될 수도 없고,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도 없었다, 이런 권리는 당시 평범한 시민들이 누릴 수 있었던 당연한 권리였다. 이들 목자는 2류 시민도 아니고, 외국인보다도 못한 경계인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런 목자들은 쓸모없는 존재들이고, 구덩이에 빠져있어도 유대인들은 그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무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이런 목자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신분은 '죄인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이들, 즉 증인들이 도시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의 공간인 들에 머물던 이들, 그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다는 것은,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예수의 구주 탄생을 믿을 수 없는, 증거 없음으로 내몰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도 있었다. 증인으로 목자를 내세운 것은 하나님의 충격적인 인물 캐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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