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복음이고 정답이다?
'혐오'가 복음이고 정답이다?
  • 김동문
  • 승인 2016.12.29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년 결산] 한국교회, 특정 인종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키워드

“당신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가?”

A 목사는 때때로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들의 항의성 질문들이다. “기독교 정신은 특정 인종이나 대상에 대한 맹목적 배제나 혐오가 아니다”는 원론적인 목소리조차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더욱 늘고 있다고 A 목사는 생각한다.

2016년 한국교회 키워드는 '혐오'

한국 교회는 기본적으로 종북 혐오에 동성애 혐오, 이슬람 혐오, 이민자 혐오 등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기독교 정신을 표방하는 정당과 교단, 교단 연합체에서도 거의 동일한 입장을 드러냈다. 한국교회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극우의 목소리가 곧 하나님나라의 선포인양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기독자유당은 4.13 총선에서 정당 득표 62만6,405표를 얻어 득표율 2.63%를 기록했다. 이들은 이슬람 IS 테러반대, 할랄 식품 공장 설립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합법화 반대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3%를 확보하지 못해 비례대표를 내지는 못했다. 기독민주당은 12만9978표로 0.5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2년 총선에서 정당득표 25만 7,190표(1.2%)를 얻었던 기독자유민주당은, 종북좌파 척결하여 국가 정체성 확립, 수크크법, 동성연애법 등 반복음적 법 저지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2016년 기독자유당의 선거 공보물. 이들의 공부물은 혐오를 조장하는 문구로 가득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이슬람에 대한 반대와 혐오, 무슬림에 대한 배제가 마치 복음과 교회, 한국 사회를 지키는 것인양 외쳐졌다. 이런 와중에 IVP에서 펴낸 책 ‘알라’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인가 하는 논쟁이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 논쟁의 바탕에, 책과 저자에 대한 무지 또는 편견을 깔고, 그 논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념 논쟁을 하듯 다가선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학자 집단의 무성의함이나 무지, 편견이 드러난 계기였다.

수시로 이슬람 혐오를 조장하는 괴담들은 끊임없이 교회의 강단과 카카오톡, 그리고 다양한 공간에서 번져갔다. 교회에서는 자주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하고 반기독교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1천만 서명운동에 전 성도들이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는 식의 내용들이 전파되곤 했다.

혐오의 근거는 '조작' 또는 '과장'

지난 1월 29일 벌어진 아랍어 경고문이 담긴 인천공항 폭발물 의심물체가 발견 사건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용의자인 유 모씨는 대학원을 나온 비올라 전공자로 무직 상태로 알려졌다. 그는 "취업이 안 돼 돈이 궁했고 짜증이나 평소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그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항공보안법 위반 및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지난 9월 27일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김현미 부장판사)는 그에게 징역 8월의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혐오의 근거가 희박하거나 조작, 과장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이들 사안의 객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나 역량이 부족해 보였다. 다분히 선언적이고 선험적인 주장을 앞세우곤 했다. 괴담성 정보에 바탕을 둔, 한국 교회 안팎의 맹목적인 배제와 혐오는 한국 교회의 판단력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한 정치적 보수화를 자극하는 매개로 사용되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 테러방지법 제정의 근거와 이유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혐오와 배제는, 주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의 이런 류의 정보의 유통 경로를 살펴보면,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세대주의 성향, 친이스라엘 경향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또한 정치적으로 맹목적인 친정부, 맹목적 종북 반대 논리를 갖추고, 기도운동에 적극적인 이들이 많았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를 반대하고 트럼프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국교회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그 바탕에는 동일하게 반동성애, 반이슬람 정서가 깔려있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강화되는 측면이 있고, 반이슬람, 반이민자, 반동성애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맹목적인 배제와 혐오의 목소리를 반대하는 기독교계 일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2017년도에도 이들의 위세는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나는 "무슬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격체다"고 주장했다는 것만으로도, 2016년에도 종종 들어야 했던 말이 있다. "선교사님을 하나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는 애정 가득한 어떤 이의 메시지도 기억난다. "당신은 이슬람을 전파하는 기독교계에 숨어들어온 무슬림 선교사다" 거나 "당신은 친이슬람이니, 기독교인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비아냥 거림의 목소리를 2017년에도 여전히 듣게될 것 같다.

배제와 혐오에 깔려있는 정치적으로 극우적 편향은 보수 정권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무비판적 지지로 기울곤 한다.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강화하고 드러내기 위해 더한 혐오, 배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른바 혐오하기 경쟁인 것 같다. 약한 자에 대해서는 강하게, 강한 자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그 목소리를 조절하는 비뚤어진 모양새를 보이곤 한다. 인종, 성, 계층 등에 바탕을 둔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 복음이지만, 이런 목소리를 오히려 장벽이 되고, 장벽을 더 두텁게, 높게 쌓아올리고 있다. 기독교 정신은 배제가 아닌 포용이고, 혐오가 아닌 사랑이라는 주장은, 동성애자, 무슬림에게는 무의미한 듯하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의 이웃도 하나님의 피조물도 아닌 것 같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움이고 부끄러움이다. 씁쓸한 현실이 다가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