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종교가 아니다
예수는 종교가 아니다
  • 신성남
  • 승인 2017.02.14 0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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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삼키는 종교는 사교 집단

만일 하나님께 물질을 많이 바쳐야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면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피조물의 돈을 필요로 하시겠는가. 돈이 꼭 필요한 건 인간이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예배 순서에도 하나님께 돈을 바치는 헌금 행위란 결단코 없었다. 단지 가난한 형제를 구제하기 위한 모금(연보)이 있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예배는 물질을 바치는 게 아니라 형제나 이웃과 함께 서로 나누며 사는 것이다.

(일러스트: ㅍㅍㅅ ㅅ)

널리고 널린 게 종교

물론 다른 오해도 있다. 만 원 헌금보다 십만 원 헌금이 더 복 받는다고 믿는 것, 5분 기도보다 5시간 기도가 더 효험이 있다고 믿는 것, 교회 봉사가 사회 봉사보다 더 고상하다고 믿는 것, 그리고 일요일이 평일보다 더 성스러운 날이라고 믿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신자에게는 안식 후 첫날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다 '주의 날'이다.

현대 사회에는 온갖 미신과 사상이 범람한다. 그리고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종교다. 다양한 신들이 있고 다양한 신앙이 있다. 덕분에 기복이 넘치고, 무당이 넘치고, 우상이 넘치고, 잡신이 넘치고, 그리고 어리석음이 넘친다. 나는 타종교를 비하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진리와 상관 없는 맹신적 종교 행위에 대해서는 부득이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제물을 바치고, 주문을 외우고, 종이를 태우고, 돌탑을 돌고, 종틀을 돌리고, 물을 뿌리고, 그리고 천조각을 건다고 하더라도 그런 주술적 행위가 인간을 변화시켜서 바른 진리에 이르도록 인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래 참된 진리가 있는 곳에 빛이 있고, 정의가 있고, 헌신이 있고, 화평이 있고, 그리고 사랑이 있는 건 매우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신실한 목사, 경건한 장로, 충직한 집사, 그리고 선량한 신도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다. 그건 굳이 나서서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개신교는 요즘 남의 말을 할 형편이 못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다. 다른 기도보다 새벽 기도가 더 영발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교회당에서 기도해야 더 능력있는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 목사나 장로가 자기보다 영적으로 더 높은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교회 생활이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그들은 모두 종교의 틀에 빠진 무속적 신도다.   

종교는 아주 값비싼 마약

오늘날 종교라는 덫이 개신교를 망치고 있다. 어느 대형 교회의 목사는 "십일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하며 "오늘이 아닌 다음에 헌금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성령의 음성이 아닌 마귀의 소리"라고 열변한다. 툭하면 마귀를 동원하며 함부로 말한다. 저 정도면 정말 "염병하네!"라는 폭탄이 절로 터질 만하다.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별로 관계 없는 '목사님의 잡설'이 수시로 하나님 말씀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진리를 제대로 구분 못 하는 목사교의 맹신도들은 그런 설교에 세뇌되어 주야장천 무속적 아멘을 열창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교회로 한번 흘러들어간 돈은 세상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 하고 있다. 구제비는 생색내기일 뿐이고 대부분 교회당 건물 운영비나 교역자 인건비나 자체 사업비로 소비한다. 예수의 복음이 기복적 종교로 전락하여 아주 값비싼 마약으로 변질되었다. 평생 허리띠를 조르며 십일조를 바쳐도 그 약은 못 끊는다. 환각제나 진통제보다 더 독한 게 맹신이다.
 
사탄은 성경을 인용하며 예수를 시험했다. 오늘날도 사탄의 하수인은 성경을 인용하는 자들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가장 경건해 보이고 가장 인자해 보이고 가장 종교적으로 보이는 자들을 통해 사탄이 역사한다. 그건 예수님 당시나 중세 시대나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온갖 구실을 들이대며 신도들을 돈과 교단법과 인간의 유전으로 속박하는 자들은 모두 삯꾼으로 보면 된다. 사실 종교라는 간판을 건 집단들 중에 신도들을 미혹하여 앵벌이 시키지 않는 집단은 매우 드물다. 종교판의 삯꾼들은 어찌 하든 신도들 주머니를 털 궁리만 한다. 이들에게 맹신도보다 더 좋은 먹이감은 없다. 이는 한국 개신교의 약 사분의 일이 이단이라는 심각한 관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예수 살기'가 본질이다

한국교회는 각성해야 한다. 돈을 삼키는 종교가 아니라 돈을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복을 탐하는 종교가 아니라 복을 전해주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목사를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목사가 섬기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세상의 지탄을 받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그리고 엉뚱한 계시를 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미 주신 성경으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하나 종교는 사람을 속박한다. 따라서 제 아무리 거룩함과 신성함으로 겉치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속박하는 무리들은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그건 십중팔구 사교 집단이다.

종교에 속지 말자. 종교는 인간의 억지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매우 무서운 장치다. 화려한 예배당, 많은 교인수, 웅장한 예배, 유창한 설교, 그리고 넘치는 헌금에 속지 말자. 그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무리들은 그것들을 악용하고 포장하여 종교라는 치명적 마약을 제조한다. 그리고 일단 그 마약에 한번 중독되면 백약이 무효하다. 종교 개혁 500년의 개신교 실패도 결국은 '진리의 종교화'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예수를 종교의 틀에 가두지 말라. 예수의 복음은 종교가 아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는 나의 친구이며 형제이며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예수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생각해야 옳다. 가난한 목수 예수는 언제나 값없이 고쳐주고 값없이 나누어 주며 살다 가셨다.  

성도는 '예수 믿기'를 넘어 '예수 살기'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1:13-14)."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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