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
  • 양재영
  • 승인 2017.04.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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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되살아난 라인홀드 리버의 신학
다음 글은 미국 미디어인 <종교와 정치>에 실린 진 주보비치(Gene Zubovich)의 글을 번역, 재구성한 것이다 - <편집자 부>

[미주뉴스앤조이=양재영 기자] 미국의 대통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는 라인홀드 리버(Reinhold Niebuhr)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데이빗 브룩스와의 대화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니버’라고 대답했다.

지미 카터는 “니버는 내가 대통령으로 재직 중에 가장 영향을 준 신학자이다. 특별히 핵의 위협으로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에는 더욱 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2007년 존 매케인은 자신의 저서의 한 챕터를 니버의 이야기로 채웠으며, 보수 칼럼니스트인 데이빗 브룩스는 “9.11이 발생한 후에 라인홀드 니버의 철학이 부활하지 않은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라인홀드 니버(사진: Getty 이미지)

니버의 철학은 오늘날 신학자, 역사학자, 대중연설가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생생하게 부활하고 있다.

얼마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미국의 양심: 라인홀드 니버 이야기’는 왜 니버가 오늘날 또다시 ‘르네상스’를 이루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감독한 마틴 도블마이어는 “니버가 그의 시대에 제기한 문제들은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니버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는 '핵무기 시대'의 신학자였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니버의 신학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었으며, 그를 위대한 신학자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초 유니언신학교 교수였던 니버는 ‘아마겟돈’, ‘휴거’, ‘종말’과 같은 것들을 믿지 않던 주류 개신교인들에게 ‘종말은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당시 니버의 신학에 대해 “죄, 아이러니, 비극. 이러한 단어들은 니버의 책과 연설에서 사라졌다. 니버는 인류애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속만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속은 늘 불완전하여,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없었다. 오직 우리의 한계를 인정함으로, 우리는 불완전한 상황에서 최선을 이룰 수 있다”고 정의했다.

니버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죄악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때론, 선을 위해 악한 일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미 카터는 니버가 1932년에 쓴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을 통해 가장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고 말한다.

“개인은 죄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와 공동체들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살아야하는 숙명 속에 있다”

“냉전시대의 ‘정통’이 되다”

니버는 이 책의 출간과 함께 평화주의와 결별한다. 코넬 웨스트는 그의 책 <한 미국인의 양심>을 통해 “니버의 위대함은 스스로 정직하기 위해 명성도 버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고 말하고 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하지만, 니버의 주장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미국 교계는 ‘기독교인들은 공동체를 다룰때 때론 폭력에 의지할 필요가 있다’는 니버의 주장에 대해 “만일 그의 책이 기독교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을 비웃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니버도 기독교의 평화주의를 공격하고 나섰다.

“만일 교회들이 그들의 진짜 신앙을 보여주려면, 제단에서 십자가를 끄집어 내리고, ‘악은 없어’라고 가르치는 세마리의 작은 원숭이로 십자가를 대체해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니버가 내세운 ‘사실주의’는 더욱 힘을 얻었다.

“한편엔 악의적인 파시스트 세력들이 서있다면, 다른 한편엔 악과 싸울 것을 거부하는 순진한 평화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 선을 위해서 악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니버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평화주의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평화주의자들은 계속되는 미국의 군사행동은 꼬리를 물고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미국은 제국이 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니버의 ‘사실주의 신학’은 이미 냉전시대의 ‘정통’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불완전한 곳이다. 미국인들은 소련과 싸우려면 순진함을 벗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공산주의의 위협에 굳건히 맞서라. 결코 오만한 전쟁에 굴복하지 말라”

“21세기에 되살아난 니버 신학”

하지만, 니버의 후예들은 그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그의 신학적 이론은 광신도의 행위에 면죄부를 제공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는 이러한 니버의 신학을 ‘힘있는 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교리’라고 비난했다.  

니버의 인기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시들해졌다. 신학교에서는 '해방신학'이 니버의 '기독교 사실주의'를 대체했다. 또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전쟁을 보면서 많은 비평가들은 니버를 미국의 군사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의심을 보내기 시작했다. 개신교인들은 교회를 가지 않았고, 복음주의자들은 니버의 신학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은 9/11이라는 비극적 사건들과 함께 니버의 ‘죄’, ‘아이러니’, 그리고 ‘비극’이라는 용어들을 다시 꺼내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가장 힘있는 사람중 하나인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라인홀드 니버’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

9/11에서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코미는 “악이 이땅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악이 결코 승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11 다음해에 뉴욕주 법무부장관이 되었다. 주 법무부장관으로 뉴욕에 폭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던 호세 파딜라에게 ‘변호사 선임권’을 없앴으며, 군사감옥에 적군포로로 수감시켰다. 또한, 2004년 부시 행정부의 부 법무부장관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CIA가 물고문과 다른 형태의 고문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코미와 오바마, 그리고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은 라인홀드 니버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니버는 결코 악을 추구하는 ‘힘의 제국’의 대변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이 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힘을 추구하는 이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아이러니’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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