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교'는 변하지 않는다
'목사교'는 변하지 않는다
  • 신성남
  • 승인 2017.06.15 11:5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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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개혁의 한계

목사교라고 하면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사실상 장로나 집사는 허울뿐이고 목사가 주도하는 교회라는 데에 대해 큰 이견이 없다고 본다. 개교회의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을 대부분 담임목사가 홀로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영구 집권이다. 교단 정치도 장로나 집사는 들러리고 목사들이 주도한다.

교회가 목사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말하는 '삯꾼 목사'들 때문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다. 교회를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이들의 도의는 위선이고 이들의 정의는 탐욕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개혁과 회복은 쉽지 않다. 삯꾼 목사와 그의 제자인 맹신도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면 가히 천하무적이다. 그 둘이 작심하고 악을 행하면 누구도 막기 힘들다. 이단이 따로 없다. 교회법도 무효하고 사회법도 무기력하다. 교단에 고발해도 소용없고 법정에 고소해도 다시 나온다.

자신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교회 돈을 마구 가져다 쓴다. 결국 많은 경우 개혁적 성도만 지쳐서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니 바른 말이 사라진 교회에서 삯꾼들은 더욱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이다.   

더구나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만일 약간의 변화라도 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그나마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죄성을 다소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에선 그걸 흔히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교회에서 가장 잘 안 변하는 족속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삯꾼 목사들이다. 이들은 손에 성경을 들고 사기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이 안 변하고 중세 종교 귀족들이 잘 안 변한 것처럼 삯꾼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 쉽게 변할 인품이었다면 애초에 삯꾼이 되지도 않았을 거다.

근자에 나는 자비량 목회를 확대하자고 주장한 바가 있다. 자비량 사역은 삯꾼을 척결하는 가장 좋은 대안 중에 하나다. 구태여 자기 돈을 들여가며 열심히 사역할 삯꾼은 없기 때문이다. 근데 사방에서 "목사를 거저 부려먹으려고 한다"며 성토한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하다. 목사는 왜 자비량 사역을 하면 안 되는가. 성경엔 사실 영구직 유급 사역이 거의 없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조차 24개의 성읍에 주어진 초장에서 평생 농업에 종사했다. 각 반차에 따라 극히 제한된 숫자만이 매년 2번 정도 제사를 담당했다. 그래서 어떤 레위인은 일생 동안 기껏 해야 단지 한두 주 정도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대교의 스승인 랍비들도 생업에 종사하며 사역했다. 예수님 당시의 유명한 랍비 힐렐(Hillel)은 목재 절단사였고 샴마이(Shammai)는 목수였다. 사도바울을 가르친 가말리엘(Gamaliel)도 힐렐의 제자다. 그러니 당시 유대 전통에 따라 랍비 가말리엘과 랍비 예수의 제자였던 사도바울이 자비량 사역을 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초기 교회의 자비량 사역 전통을 유급 사역으로 변질시킨 주범은 중세 교회다. 그들은 교회의 직분을 제사장적 '사제직'으로 직업화하여 교권과 이권을 동시에 찬탈했다. 그 결과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부패했었는지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가나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안 나가'는 성도다. 그런데 삯꾼 목사의 교회당엔 예수가 없다. 성경은 설교를 멋지게 펼치기 위한 포장용일 뿐이고 인간의 잡술이 난무한다. 그러니 가나안 성도는 교회를 떠난 게 아니라 교회당을 떠난 거다.

나는 교회의 내부 개혁을 적극 지지한다.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개혁이다. 그러나 그게 도저히 안 될 경우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목사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인간 역사에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변화한 삯꾼은 거의 없다. 부패한 중세 교회도 무려 천 년이나 변치 않고 버텼다. 1세기 예수와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유대교를 떠나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의 로마교를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은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꿈꾸어야 할 때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2:22)."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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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tiger 2017-06-16 22:57:58
신 집사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한국기독교장로회 예수로교회 김강호목사입니다.
집사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게 늘 따끔한 일침을 주시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세희 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으로 만든 노래가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가사가 이렇습니다.

‘오긴 올까요 그 꿈의 나라가 아버지가 서럽게 그리던 그 꿈의 나라가 그 땅의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그 땅의 사람들은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을 비를 내리게 하고....’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네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나라가 바로 이런 나라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저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혜가 감사하여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제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집사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집사님이 지금 이 시대의 아모스 선지자처럼 귀한 사명을 받아 힘쓰고 계심에 감사하는 것과 동시에 사탄이 집사님을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집사님도 각별히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 있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너무도 기가 막히게 우리를 속이기에 집사님이나 저나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 모두가 늘 깨어있지 않으면 사탄의 속임에 걸려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영웅이 되려고 해서도 안돼고 자만하거나 교만해서도 안돼는 아주 위태로운 외줄 위에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억나는 데로 집사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늘 성령충만한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붙잡힌 바 되어 맡으신 사명 잘 감당하시고 그 날 주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칭찬받는 집사님이 되시길 늘 응원하겠습니다.

잠잠하라 2017-06-16 15:30:56
같은 글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 '매도'입니다.
그리고 삯꾼은 자비량과 무관합니다. 삯꾼은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자입니다.
기독교를 목사교라 부르고 성도를 맹신도라 부는 것은 명백한 왜곡입니다. 아니, 신성모독입니다.

잠잠하라 2017-06-16 08:38:46
한국 교회의 절반에 가까운 교회가 미자립 교회다. 이민 교회는 80% 가까이 된다.
미자립 교회의 목사는 현실적으로 자비량 목회를 할 수밖에 없다. 자비량 정도가 일부든 전부든. 그렇다면 상당수의 목사가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대형 교회의 경우를 빗대어서 이런 글을 쓴 것이라면 대단히 왜곡되고 편파적인 내용이다.
특히 글을 읽다 보면 자비량 목회가 아닌 경우는 죄다 삯꾼 취급을 하고 있으니 편견과 왜곡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오늘도 새벽 청소에 밤 일에 땀을 쏟으며 목사라는 소명을 위해 불철주야 매진하시는 목사님들을 매도하지 마시라.
하나님이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을 것이다.
잠잠하라. 그리고 개인 영성과 신앙에 매달려라. 그 잘난 가나안 교회에만 신경써라.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