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남의 '칼뱅의 신정통치와 사역적 이단'에 대한 이견
신성남의 '칼뱅의 신정통치와 사역적 이단'에 대한 이견
  • 고경태
  • 승인 2017.06.25 00:2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빈을 사역적 이단으로 주장하는 것은 억측일뿐
 아래의 글은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가 신성남 집사(이하 신성남)의 "칼뱅의 신정통치와 사역적 이단"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 것이다. 파랑색은 신성남의 글이다. 신성남은 ‘칼뱅’을 사용하고, 고경태는 ‘칼빈’을 사용한다. 기승전없이 신성남의 견해에 고경태의 견해로 전개한다. - 편집자 주

1.
"칼뱅은 잔인하고 절대적인 독재자였다." 이는 1974년에 간행된 <옥스포드 교회사 사전>에 서술된 내용이다.[1] 그리고 볼테르(Voltaire)는 "우리가 제네바의 사도로 간주하는 칼뱅은 자신을 '프로테스탄트의 교황 반열'에 올렸다"고 혹평했다. 사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뱅은 매우 뛰어난 신학자이며 열정적인 사역자다. 그는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보통 하루 12-18시간을 일했고 매주 약 5번의 설교를 했다. 그리고 5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성경 거의 전체에 대한 주석을 썼다. 특히 그가 27세에 저술한 <기독교강요>는 개신교 신학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신학적 기여와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신성남이 제시한 옥스포드 교회사 사전(1974년 간행)이나, 볼테르는 칼빈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에 의문이 있다. 편향된 사회에서 정상으로 보면 결국 편향된 방향으로 갈 것이다. 볼테르가 칼빈을 ‘교황 반열’로 평가했다는 것은 독단적인 평가이다.

신성남은 칼빈을 “뛰어난 신학자이고 열정적인 사역자”로 평가하면서, 거부하는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다. 열정적인 사역자는 사상에 동의하지 않아 거부할 수 있지만, ‘뛰어난 신학자’는 ‘바른 신학자’이고, 뛰어난 신학자로 인정하는 것은 사상적 일치를 고백하는 것인데, 거부하는 것은 곧 자기 부정이 된다. 후에 등장하는 신성남의 모든 주장은 신뢰성을 상실한다.

익명의 화가가 그린 종교개혁자들의 초상

2. “그럼에도 그의 사역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흔히 일부 신학자들은 칼뱅이 세르베투스(Servertus)의 화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이단 처형에 큰 책임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그건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매우 심각한 오도이며 궁색한 변명이다.”

칼빈은 ‘신정통치’를 추구했는가? 신정통치란 왕이 종교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 행사이다. 칼빈은 제네바에 사는 프랑스인 목사였다. 칼빈은 파렐의 강권으로 제네바에 체류하며 바른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 제네바에서 추방되었다가, 제네바에서 강권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럼에도 제네바는 칼빈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당시 제네바는 칸톤으로 도시국가였지만, 기독교 제정일치 사회였다. 칼빈은 제네바가 로마 교회에 복속되지 않기를 바랐고(참고. 1539년 사톨레토 편지에 대한 반박), 주의 몸된 교회가 복음에 합당하게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 일에 시의회가 차선 위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갈등했다.

신성남에게는 당시 제네바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1553년 10월 27일까지 칼빈은 제네바에서 매우 힘들게 사역했다. 칼빈을 반대하던 진영에서 칼빈이 삼위일체 반대론자에 대한 처결에 대해서 반대까지 했다. 결국 시의회는 삼위일체를 거역하는 세르베투스를 실정법에 따라서 화형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칼빈은 제네바아카데미(1기 교장은 베자)를 설립하여(1559년), 목회자를 전문적으로 양성하여 유럽에 바른 신학을 확산하는데 헌신했다. 칼빈은 신정통치를 목표하지 않았고, 신학무지로 부패한 유럽 교회에 바른 신학을 정립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세르베투스의 사형은 종교법이 아닌 사회법이었다. 칼빈은 제네바 베드로 교회의 목사였다. 신성남은 칼빈이 파렐에게 쓴 편지를 제시했는데,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도 제네바로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세르베투스는 로마 교황주의자들에게 투옥되었다가 탈옥했다. 그리고 제네바로 잠입했고,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다. 세르베투스는 칼빈의 반대파(방종파/자유파)와 함께 했다. 교회에서 감옥을 운영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르베투스를 체포한 것도 아니다. 사형 제도에서 16세기 문화에서 사형 수준과 20-21세기에서 문화갭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화형 제도는 사형의 일상적인 형태였다. 그럼에도 칼빈은 화형에 대해서 거부 의사를 피력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그렇게 폭정을 했다면, 왜 그렇게 많은 피난민들이 제네바로 들어갔을까? 또 험악한 용병의 나라, 제네바 사람들이 왜 칼빈을 용납했을까? 역사는 정황증거가 있는데, 신성남의 주장데라라면 정황은 전혀 맞지 않는다. 칼빈은 1541년 제네바로 부득불 들어가 사역했지만, 1555년까지 많은 반대에 시달려야 했다. 세르베투스는 칼빈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제네바에는 왜 들어갔을까?

신성남은 카스텔로의 주장을 정설로 받는다. 신성남은 이렇게 명시적으로 말하면 좋겠다. “나는 세르베투스와 카스텔로의 주장을 따르고, 칼빈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칼빈을 대적하는 연속선상에서 볼 수 있고, 칼빈의 후예들인 장로파와 개혁파를 붕괴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것을 ‘바른 교회’라고 독단하지 않기까지 바란다. 그런데 신성남은 칼빈을 위대한 신학자로 세우면서, ‘사역적 이단’으로 공격하는 의도는 분별이 쉽지 않다.

신성남은 1546년에 파렐에 쓴 편지를 공개했는데(Responsio ad Balduini Convicia, Opera, IX. 575 (ccel.org/a/schaff/history/8_ch16.htm), 영어문장은 Servetus suffered the penalty due his heresies, but was it by my will. Certainly his arrogance destroyed him not less than his impiety 이다. 신성남은 이것을 "결코 살려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세르베투스는 이단으로 정죄 당했으며, 나도 그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의 불경건보다 그의 교만은 확실하게 파멸되어야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칼빈이 10월 26일에 파렐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그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내일 세르베투스는 사형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형 방식을 바꾸려는 모든 노력을 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만나면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Opera, XIV, pp. 590, 613-657).

3.
“카스텔로는 익명으로 쓴 그의 책(Should Heretics be Persecuted)에서 제네바의 참상을 더욱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을 모두 생략했지만 차마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교계 일각에서는 그의 글이 너무 악의적이라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묵살한다. 물론 그건 개인의 자유다.”

카스텔로는 칼빈이 사랑했던 재능이 많은 사역자다. 그런데 아가서의 정경성을 부인하고, 단독으로 프랑스어 성경 번역을 추진하기도 했다. 칼빈은 정경관에 대해서 수정을 제시했고, 좋은 번역이 있기 때문에 번역에 회의적이었다. 칼빈의 라틴어 실력과 프랑스어 실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칼빈은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하지 않고, 기존의 번역을 활발하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런데 카스텔로가 다른 프랑스어 번역을 시도했고, 칼빈은 그것을 거부했다. 카스텔로는 제네바에서 바젤로 갔고, 떠날 때에도 칼빈은 추천사까지 보내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선처했다. 그럼에도 카스텔로는 칼빈을 공격하는 위인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몇 년 전에 권현익 목사가 상세하게 밝혔는데, 그 패턴을 신성남이 반복하는 이유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한때 칼뱅의 동료였던 카스텔로는 결코 뜨내기 학자가 아니다. 그는 적어도 7권의 저서를 쓴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다. "그의 증언이 100% 거짓이다"는 주장은 "그의 증언이 100% 진실이다"는 논리보다 훨씬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그의 글은 매우 구체적이다. 피해자의 이름과 정황까지 자세히 서술한다.”

카스텔로가 7권의 저서를 쓴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글이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의 문체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7권의 저술가이기 때문에 그 사상이 옳다고 할 수 없다. 뛰어난 필력으로 거짓 사상을 충분히 유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제네바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있던 일이다. 그 가장 큰 피해자는 유아세례를 거부했던 재세례파 신도들이었다. 중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의 박해자들은 고작 세례에 대한 교리 차이를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종교가 눈이 멀면 이처럼 인간의 손에서 비정한 살인 병기가 되기도 한다.”

신성남은 재세례파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토마스 뮌처도 재세례파 계열이다. 재세례파는 단순하게 유아세례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하려는 세력들이다. 이들의 사상은 동일하지만, 공동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폭력과 비폭력이 있었다. 왕정 사회에서 사회를 변혁하려는 것은 반역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당시 사회에서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반역이고, 반역자는 사형이다.

“가톨릭의 이단 사냥으로 인해 친동생을 잃었던 아픔을 지닌 칼뱅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같은 죄명으로 처형했다는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과오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앙 강요'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당시 상황에서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은 실정법으로 반역이다. 칼빈의 동생이 처형된 것은 로마 교회를 반대하고 바른 교회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세르베투스는 로마 교회에서도 제네바 지역에서도 어느 지역에서도 잡히면 사형에 처해질 중요 범죄인이었다. 그런 세르베투스가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했고, 제네바로 유유하게 들어왔는지가 의문이다.

4.

“개신교 신학의 토대를 세운 칼뱅마저 그 사역에 큰 오류가 있었다. 신학은 정통인데 그 사역은 밥통이었다. 마치 구약의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지옥의 땔감' 정도로 생각했던 것처럼 그는 이단과 불신앙을 진멸과 강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신성남은 칼빈을 ‘신학적 이단’은 아닌데, ‘사역적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신성남의 사상 구조가 미숙함을 드러내는 행태이다. 교회는 사역, 윤리로는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는다. 부패한 인간으로 추방하고 정죄할 수 있지만,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는다. ‘사역적 이단’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아마도 신성남은 지겹도록 거부하고 싶은 칼빈에게 오명을 씌울 유일한 단서가 ‘포악한 행동’인 거 같다. 칼빈이 포악했다면 왜 추방당했고, 왜 그토록 반대에 시달렸고, 그럼에도 왜 피난민들은 제네바로 유입했겠는가? 죽이겠다는 세르베투스까지 제네바로 들어왔다. ‘칼빈이 독재적인 신정정치를 추구했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규정은 더 황당하다.

개혁파는 부패한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사회는 교회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 성취되어 탈권위 사회가 되었다. 21세기는 16세기 칼빈의 제네바 상황과 전혀 다르다. 부패한 교권에 대항해서 거역하고 교회 이탈을 주장하는 계몽주의와 교회 회복을 주장한 개혁파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를 설립을 주장하는 아나뱁티스트 계열이 있다. 칼빈은 바른 교회 회복을 위해서 사역했다. 그리고 그 사역의 토대 위에 바른 교회 근거가 형성되었고, 지금도 매우 소수가 칼빈 계열을 따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 안에 신정통치 형태가 있고, 그것이 칼빈의 연속이라는 주장은 시대를 아집(我執)에 짜 맞춘 억측이다. 혹시 현재 신정통치를 하는 곳이 있다면 자유롭게 이탈할 수 있다. 거기에 있으면 동조하는 동류이다. 현재 신정통치를 주장하는 교회는 칼빈파가 아니다. 칼빈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칼빈파가 아니다.

신성남은 매우 예리한 문필가이니, 교회가 이단을 잔혹하게 죽였다는 주장을 재고해야 한다. 4세기 니케야 공회의에 정통 교리를 결정하고도, 아타나시우스는 유배와 바리데기 삶을 살았다. 아직도 단성론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교회도 황제도 이단을 엄중하고 잔혹하게 죽인적이 없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아나뱁티스들을 처형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반복하지만, 교회 권력이 아닌 세속 정부의 권력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 거의 대부분은 로마 교황주의 정권이었다. 제네바는 피난처에 속한 지역이지 박해 지역이 아니었다.

신대륙 아메리카에는 청교도뿐만 아니라, 아나뱁티스트 등 다수의 사람들이 이주했다. 그리고 교파가 이단을 박해한 적은 없다. 흑인을 대상으로 노예 제도를 운용하기는 했다. 신성남은 교회가 이단을 박해했다고 주장한다. 이단이 교회를 공격하고, 교회는 이단에 대해서 방어한다. 그럼에도 이단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데, 신성남에게도 그런 흔적이 보인다.

5.

신성남의 마지막 결론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이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헌금 강요, 헌금 남용, 거짓말, 설교 표절, 뇌물 수수, 성추행, 재단 사유화, 목회 독재, 그리고 교회 세습을 일삼는 자들이다.”

도대체 그것이 칼빈의 가르침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동격서(聲東擊西)인가? 회심의 일격인가? 신성남이 칼빈을 사역적 이단으로 주장하는 것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견해와 카스텔리옹의 견해를 반복하며, 그가 만든 억측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 권현익 목사가 섬세하게 제시한 것이 있다. (참조 : 권현익, “칼뱅은 잔악한 학살자였는가?”, 기독개혁신보, 2015.11.27. http://repress.kr/3071/) 신성남은 그 부분에 대해서 먼저 명료하게 답변해야 한다.


글쓴이 고경태 목사는, 주님의교회(광주 망월동) 목사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강 2017-06-26 09:27:04
평소 신성남집사님의 글들을 보면 삯꾼 목사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이 대부분이고 그 분의 글이 현재 한국교회의 현저한 문제에 대한 통찰력있는 시선이 있음을 봅니다.
이번의 글 자체에 있어 역사적인 칼빈에 대한 오류가 있을 지라도 그 분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아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전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관점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관점으로는 소위 말하는 평신도의 비판적인 글에 속앓이 하다 찬스 잡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목사들로 서로 감정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춰 질 수 있습니다. 서로 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잘 살아보자고 나누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단편적인 오류로 인한 글이라 하더라도 그 단편적인 글로 그 분의 전체를 폄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의 이제껏 살아오신 삶과 정신을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2017-06-25 06:30:50
매일 쌈박질이나 하고, 평신도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글 쓴 두 분이 그 시대에 살지 않았는데,
역사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떠들어 됩니까?
그리고 칼빈이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그게 우리들 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 믿는 것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 필요한 분은 예수님이시지,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병들면 골골한 인간 칼빈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서로 물고 뜯고 싸움질 좀 하지 마세요.
평신도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잘 전해주세요.
복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