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과 종교개혁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검찰개혁과 종교개혁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 조경윤
  • 승인 2017.06.25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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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헌정 이래 유일의 사건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고, 현직 대통령이 파면을 당했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았고 그 결과로 직선제 이후 최대의 표차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 탄핵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구속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제서야 밝혀지는 진실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서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그리고 검찰과 국정원의 정보라인과 핵심요직을 꽉 잡고 있는 우병우 사단에 의해서 철저하게 자기 방어가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이 또다시 국민들을 조롱하고 있다. 검찰출석에 앞서서 기자를 바라보는 우병우의 교만한 레이저 눈빛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검찰청에서의 그의 오만한 자세, 오히려 군기가 바짝든 검사들의 긴강한 모습,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자는 것인가?

심지어는 그 일의 핵심 당사자들이 우병우 불구속을 축하하고 기뻐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벌인 만찬이 화제가 되고 있다. 돈봉투를 돌리며 법 위에 군림하는 검찰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우병우와 1000번 이상의 통화를 통해서 그의 지시를 받았고, 김수남 검찰총장도 우병우의 지휘아래 충실한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처음부터 그가 구속되는 것이 기적인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관한 논문들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개혁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법에 정통한 학자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앉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며 어느 정권을 막라하고 법을 어긴 범법자들은 모조건 구속시켜서 법의 처벌을 받게 했던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검찰개혁은 이제 첫 시작을 하게 된 것 같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의 의지는 있었으나 준비 부족으로 그리고 강력한 내부저항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달라진 시대와 높아진 시민의식은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검찰개혁을 독려하고 있다. 돈봉투 만찬사건은 타오르는 검찰개혁의 불씨에 기름은 부은 꼴이 된 것이다. 나는 쉽지는 않아도 검찰의 개혁은 이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시는 이 땅위에 권력의 시녀노릇 하는 정치검찰은 있어서는 안 된다.

과거 이정재와 같은 정치 깡패들이 득세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2017년도를 살아가는 지금은 정치 깡패라는 말이 없어진 것처럼 머지않아 정치검찰이라는 검찰 양아치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이상 국민들의 눈높이가 그런 저질의 정치세력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정이래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고, 역사가 평가할 박근혜, 이명박 보수 정권은 국민들이 부여해 준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날려 버렸다. 보수 기득권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국민과 나라를 배신했다. 국민들은 더이상 어리석지 않다. 정치인들 머리 위에 있으면 있었지 결코 무지하고 무식하지 않다. 검찰개혁은 어렵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국민들이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그 길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개혁의 대상들이 어떤한 통제나 제제없이 개혁을 짓뭉게 버리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이런 저런 개혁의 말은 난무하지만 개혁을 위한 행동은 없다. 말잔치, 말놀음이다. 이 역시도 사기치고 있는 것이다. 행동은 곧바로 결과로 나타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개혁을  행사화하여 어물쩡하게 넘어가려는 것이다. 말은 필요없다. <들려주세요>가 아니라 <보여주세요. 확인시켜 주세요> 해야 한다.

현재의 종교법은 철옹성이다. 종교개혁 원천봉쇄이다. 그 누구도 개혁할 수 없다. 심지어는 예수님 조차도 할 수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다. 예수님이 한다면 그것이 불법이 된다. 전병욱 사건을 보라. 피해당한 여성들의 증언이 책 한 권으로 나왔는데도 그는 당당하다. 회개도 없다. 그에게 있어서 성폭력, 성추행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전병욱은 신이다. 감히 누가 신에게 딴지를 건단 말인가? 부끄러움도 없다. 자신의 허물과 죄를 비판하면 오히려 비판당한다. 그의 이런 자만감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에게서 나온다. 사이비 이단의 교주와 하나도 다를바가 없다. 수 백 억원의 돈을 불법으로 사용해도 심지어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무지목매한 저들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요 하며 개의치 않는다. 오직 나의 길을 갈 뿐이다. 묵묵히 이전에 행하던 대로 그대로 행할 뿐이다. 이역시 그것을 문제삼지 않는 성도들의 압도적인 지지때문이다.

오직 종교개혁의 해답은 국민들과 같은 성도들에게 있다. 평신도가 일어나면 개혁은 이루어질 수 있다. 평신도가 깨어 있으면 개혁은 성취될 수 있다. 평신도가 정신 바짝 차리면 개혁은 실패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과 같은 지금 이 시대의 썩어빠진 종교지도자들은 개혁의 대상들이지 결코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타락하고 변질된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유화하고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평신도들이 일어나야 한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과 같은 삯꾼들, 거짓 선지자들은 강단에 설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는 이들의 감언이설로 영혼들이 지옥 불구덩이로 달려가지 않도록 소경인 지도자는 인도자가 될 수 없게끔 면허증을 찢어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탄 사람은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살고 싶으면 운전수를 바꿔야 한다.

목사는 신이 아니다. 그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위에 올바로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의 정신을 높이 세우면 그와 함께 동역하라. 그에게 힘을 보태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부귀영화와 일신의 안위에 목적을 두고 교회의 부흥과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영적인 사기를 친다면 감옥에 처 넣어야 한다. 사이비, 이단의 교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믿음은 좋은 것이지만 맹신과 광신은 배격해야 한다. 종교개혁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그래도 지각있는 평신도들에게 소망을 걸어본다.

조경윤 목사 / <푸른초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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