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 천천히 낯설게 읽기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 천천히 낯설게 읽기
  • 김동문
  • 승인 2017.07.02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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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도 주목하는 성경읽기
아프리카 분위기로 표현된 갈릴리가나 혼인잔치 이야기 (출처 : http://www.mh2.dds.nl/port/africapix/bodas.jpg)

우리는 빠른 속도로, 눈으로, 정보를 챙기면서 성경을 읽어가곤 한다. 어떤 본문을 마주하면서 이전에 들었던 설교 내용을 떠올리거나 육하원칙에 어우러지는 정보를 꿰곤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경읽기의 혜택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다 생각하는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적 사건 이야기를 통해 낯설게 천천히 성경일기를 짚어본다.

3월 말에서 4월 초, 유월절 직전의 어느 화요일(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갈릴리 가나의 한 가정에서 결혼 잔치가 벌어졌다. 그렇다고 이 잔치가 집 안에서 벌어진 것을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나 주요 명절 때 결혼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다보니, 토요일 저녁(안식일이 끝난 그 저녁이다)이나 화요일 저녁을 선호하였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천지창조 중 바다에서 육지가 드러난 날인 사흘째 되는 날(화요일)에 결혼하면 두 배의 축복이 임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창세기 창조이야기에, 사흘 째 날의 창조 묘사에는 창조의 다른 날과 달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등장한다.

갈릴리 가나에 자리한 혼인 잔칫집에서 가까운 마을 공터에 천막을 치고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 자리 중앙에는 네 기둥으로 받쳐진 ‘후파’로 불리는 천막이 쳐져있다. 그 곳에 신랑과 신부가 자리 잡았다. 늦은 밤에 시작한 이 결혼 잔치는 일주일 안팎 계속되었다. 곳곳에 횃불을 밝혀 두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 지역에서는, 지방 도시에서는 이 같은 전통적인 모습을 갖춘 결혼 잔치가 벌어지곤 한다.)

봄날 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한 날씨였다. 잔치 자리에 자리 잡은 하객들의 소리와 노래와 춤을 이끄는 이들, 연주자들의 흥겨운 가락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때때로 바람소리가 흥겨운 노래 소리를 주변 마을로 실어 날랐다. 잔치 자리지만, 음식이 차고 넘치는 공간은 아니었다. 결혼 잔치는 풍성하게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신랑 신부를 축하고는 자리, 넉넉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자리, 그리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들으면서 흥겨움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잔치 집에는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을까? 어떤 장단과 가락이었을까? 어떤 춤을 얼마 동안, 어떻게 추었을까? 혼인 잔치에 여자 손님은 있었을까? 아이들도 초대받았을까? 남자 하객과 여자 하객은 섞어 앉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합석이 아닌, 경계를 두고 구분되어 앉았을 것 같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의 식사 자리는 누워서 식사하였는데, 여성들의 식사하는 자세도 남자들과 같았을까? (그러보니 나는 그동안 성경을 익으면서, 음식 먹는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르다, 마리아 예수 초대 이야기에서처럼, 단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여성들의 모습만 떠올린 것 같다.)

이제 눈길을 돌려,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떠 올려 보자. 예수, 예수의 어머니(그런데 요한은 왜 마리아라고 그 이름을 안 적고 있을까? 공공연한 비밀을, 궁금하지 않은 신비 모드를 넣을 것일까? ), 예수의 제자들, 하인들(누구의 하인들? 일시로 동원된 하인들? 아니면 혼주나 신랑의 하인들? 아니면?), 연회장(연회장과 신앙의 관계는? 연회장의 혼인 잔치 과정에서의 역할과 권한과 책임은?) 그리고 하객들(그런데 하객들이라는 표현이 본문에 나오지는 않는다.)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결혼 주례자인 랍비가 있었을 것 같고, 잔치의 흥을 돋워주는 연주자들과 춤꾼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신부와 신랑의 들러리들도 조연급의 하객들이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신랑신부의 좌석이 있는 천막 후파(Huppa)의 네 기둥을 붙잡고 있었을 4명의 신랑 친구들이 있었을 것 같다.

이 결혼 잔치 집에 모여든 이들은, 신랑과 신부 아니면 신랑 집과 신부 집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을까? 예수의 제자들까지 정식 초대를 한 가정은 신랑 측이었을까, 신부 측이었을까? 물론 이 혼인잔치는 신랑 측에서 마련한 자리이기에, 신랑 측과 어떤 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떤 점에서는 신부 측과 연관된 경우라도 신랑 측의 초대를 받았을 것이긴 하다. 혹시, 예수님의 여동생이 시집을 가는 결혼 잔치는 아니었을까? 12세가 넘으면 시집가던 당시 풍습을 고려한다면, 전혀 그런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신랑 집에서 하는 큰 결혼잔치는 신랑이 호스트가 된다. 신랑과 연회장의 이름으로 초대도 한다. 결혼식의 혼주는 물론 신랑의 아버지이다. 그렇지만, 신부 측의 혼주도 존재한다. 아버지 요셉이 없던 예수님의 가정에서 장남 예수는, 만일 그의 여동생이 결혼하는 잔치였다면, 당연히 혼주가 되었을 것이다. 신부 측 혼주였다면, 마리아나 예수의 잔치의 흥을 깨뜨릴 것 같은 상황은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

예수는 제자들 모두와 함께 이 잔치에 참여했을까? 잔치 집에는 모두 몇 명이나 모였을까? 초대받지 않은 이들을 통제하는 제한된 이들만이 참석하는 자리였을까? 야외 공간에서 벌어진 잔치라고 생각하면, 잔치 집의 불청객들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도대체 잔치 자리에는 몇 명의 하객들이 몰려 들어왔을까?

이제 눈길을 더 모아서 또다른 등장인물에게 주목해 보자. 오늘의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으로 간주한다면, 가장 많은 방송 분량을 확보한 이들은 물 떠온 하인들, 하인들이었다. 앞서 살펴본 잔치 이야기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없는 이들이 이 하인들이었다. 잔칫집 풍경을 통해, 하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하인이 되고, 종이 되는 경우가 너무 일상적이었던 시대가 바로 예수 시대였기 때문이다. 물 떠온 하인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이들이 선천적인 종이나 노예가 아닌 하인이 된 것은 후천적인 것이었다. 이들 하인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 집(또는 이 집의 잔치에 동원된)의 하인이 되었을까? 그 당시 비일비재했던 도시 빈민들처럼, 도시로 올라온 몰락한 농민이나 목자 출신이었을까? 경제 난민들은 아니었을까? 하인이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하인의 가족들도 하인이나 종으로 팔려갔을까? 아니면 여전히 자유민으로 남아 있었을까? 부모나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자신만 하인으로 팔린 것이었을까? 이 하인들의 연령층은 어떠하였을까? 이 하인들은 유대인이었을까? 갈릴리 주민들이었을까? 이방인 하인들은 없었을까? 잔치 집에서 일을 거들던 하인들은 다 남자였을까? 그 시대에 여자 하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하인들은 어떤 복장을 갖추고 잔치를 돕고 있었을까? 잘 차려입지는 못하였을 텐데, 옷 두벌(속옷과 소박한 겉옷)은 입고 있었을 것 같기는 하다. 그 옷의 색감과 재질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새 옷은 아니었을 듯한데, 얼마나 낡은 옷이었을까? 주인집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어먹고 무엇을 마시며 살고 있었을까? 주로 무엇을 먹었을까? 주식인 생명의 빵의 양은 하루에 얼마나 제공되었을까? 다른 음식들 예를 들면 야채나 고기 같은 것은 얼마나 자주 먹었을까? 이들이 섬기고 있는 주인집은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로마식 빌라였을까? 아니면 어떤 규모, 어떤 형식의 집이었을까? 하인들만의 공동 거처가 있었을까? 이 외에도 질문은 이어진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성경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다.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성경 시대,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열쇠로 다가와 있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그 때 그 자리에서 ‘공감’하라. 우리가 지난 사건이나 상황을 떠올리면서 온 몸과 인격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성경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옴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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