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 논란이 고맙다
‘죽어야 사는 남자’ 논란이 고맙다
  • 김동문
  • 승인 2017.07.24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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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일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죽어야 사는 남자' 드라마가 이슬람 희화화했다고 논란이다. (드라마 누리집 화면 갈무리)

때때로 나는 공중파 방송에서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아랍, 이슬람, 무슬림, 중동에 대한 무지와 무식과 무례를 느낀다. 지난 21일, 후배를 통해 '죽어야 사는 남자'라는 드라마가 최근에 막 방송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이슬람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빠져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직접 보았다. 드라마 속 아랍어 대사에 맞춰서 나오는 아랍어와 한글 자막도 짚어보았다. 한국 언론에서 '22일 한 트위터리안은 외국인 무슬림이 MBC의 새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와 관련해 올린 글을 소개'했다고 언급한 한국인 트위터 사용자와 그가 인용했다는 원 글 작성자 트위터도 찾았다. 그의 주장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네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로는 해당 방송과 한국 언론에 아랍과 무슬림, 이슬람, 중동에 대한 무지와 오해, 무례함이 가득했다. 오래전에 거북스러운 감정을 자제하며 보아야 했던 개그콘서트의 만수르 코너(2014)도 기억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에 아랍어가 들리고 아랍인들이 때때로 등장했다. 수 년 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속에서도 벽란도 등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 아랍인(또는 아랍인으로 설정한 배역)이 나오고 한국인 배우들이 짧지만 아랍어를 구사하는 장면도 나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영화 '베를린'(2013), ''해적 : 바다로 간 산적'(2014), 협녀 – 칼의 기억'(2015) 등 아랍어, 아랍인(으로 역할을 한)을 드라마와 영화에서 만났다. 영화 베를린에서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로 등장했고, 다른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로 상인으로 출현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나온 것처럼 표현하였다. 한국 사회 안팎의 사실 왜곡은 무의식적인 것 같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두 번째는 이번 논란을 형성하는 것에 큰 몫을 한 영문 트윗글 작성자의 글에 담긴 사실 왜곡이다. 드라마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마치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왜곡했다. 사실 온라인에서 관련 주장을 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1차 자료에 접근할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 여기에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공유되고 확산될 여지가 있다. 과연 사실인가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수고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번에 절대 다수의 언론도 사실 확인 없이 퍼나르기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세 번째는 논란을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적잖다. 가령 무슬림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무슬림을 희화화한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는다. 각 종교인들이 종교적 가르침 그대로 사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일단 허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현실에는 술 마시는 무슬림도 존재한다. 원론으로 현실을 묘사할 필요는 없다.

한국 교회에는 아랍 사회를 바라보는 경직된 시선과 무지가 밎어낸 별천지가 공존한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네 번째는, 아랍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한국 교회가 생각하는 아랍 무슬림의 모습은 획일적이다. 종교적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아랍어 이상으로 영어를 계층의 언어로 사용하고, 외국인 가사 도우미와 외국인 운전기사와 집사들을 두고 살아간다. 치타나 사자, 아주 특별한 낙타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산다. 취미 활동을 위해 매 몇 마리 소유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의 저택은 온통 아랍인들로만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한다.

다시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 최민수의 아랍어 발음은 너무 엉망이다. 띄어 읽기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애고에 거주하는 쿠웨이트인 압달라는 최민수 씨의 발음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억양은 물론이고 한 단어로 말해야 할 것을 몇 개 단어를 나누는 모습까지 보였다. 예를 글면 '손대지 마라'(라 탈맘싸니)를 '라탈 맘싸니'로 발음하는 식이다. 게다가 자막으로 표시한 아랍어 문장은 때때로 어디서 나온 것인지 도통 모르는 표현들이 보이기도 한다. 소리 말을 아랍어로 음역해서 옮기면서 정확하지 않은 철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아랍어 철자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일부 아랍인 출연자의 발음과 표현은 제대로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옷차림새도 출처 미상이다. 완전 비빔밥 같다.

방송 금지를 요청하는 탄원서,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는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 나오지 않은 불쾌한 정보까지 뒤섞은 왜곡된 주장도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각 괴정에서 보여준 부주의함은 적지 않은 아랍인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집트인 살마는 이 드라마를 보다가 화가 나서 더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랍, 이슬람 사회에 대한 무지와 편견, 기본적인 정보와 이해, 문화적 감수성조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한국 방송과 영화의 현실이다. 이런 바닥난 무지와 여과 없이 드러낸 무례함으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끼리 보고 웃고 말았을 텐데, 지금은 쉽게 인터넷 사회에 퍼지고, 국제화가 된다. 그래서 코미디 하나를 만들어도 조심히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국제망신 당할 수 있다." 중동에서 20여년을 살고 있는 한인 A씨의 지적이다.

아랍어 철차가 완전히 깨진채로 화면에 담겼지만, 그 수고가 고맙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논란이 된 와중에 드라마 제작팀에게 고마움도 느낀다. 구어체 아랍어를 음역하여 아랍어로 표기하는 것은 큰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일부 아쉬운 결정적인 철자 오기도 드러났지만, 감사할 일이다. 종교의 시선이 아니라 생활인의 시선으로 아랍 사회를 볼 수 있는 화면 구성을 해준 것도 고맙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입체적이다. 다양한 영역이 공존한다. 그곳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것, 아니 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 곁의 아랍인, 무슬림으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 맹목적 반대도 비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막의 신기루 처럼 솟아 있는 두바이의 도시 풍경이 낯설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드라마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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