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대부흥운동] 표절 논문으로 미국서 박사 학위 취득
[평양대부흥운동] 표절 논문으로 미국서 박사 학위 취득
  • 박지호
  • 승인 2007.05.16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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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버지니아한인침례교회 양승원 목사, 박용규 교수 책 상당 부분 번역

▲ 양승원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은 번역서에 가까웠다. 중간 중간 짜깁기한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똑같이 번역해서 실은 부분만 전체 225쪽 중에 33쪽에 달했다. 왼쪽이 양승원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오른쪽은 박용규 교수가 쓴 책 <평양대부흥운동>. (박지호)
버지니아에 있는 버지니아한인침례교회 담임 양승원 목사(49)는 2002년 미국 서든뱁티스트신학교(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 'THE INFLUENCE OF THE REVIVAL MOVEMENT OF 1901-1910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CHRISTIANITY'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해 2003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이 논문은 한국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2000년에 쓴 <평양대부흥운동>을 상당 부분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100년 전 회개와 각성을 불러 일으킨 평양대부흥이 한국 교회에 회개할 거리를 하나 더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양승원 목사는 처음에는 "이게 기사거리나 되냐"고 반문했다가, 기자와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직접 만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논문 표절이라는 행위의 심각성보다는, 이 문제가 외부에 알려져서 개인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 학교 당국의 조처, 교회에서 발생할 어려움 등 그 결과에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 참고)


양승원 목사

저자


박용규 교수

THE INFLUENCE OF
THE REVIVAL MOVEMENT OF
1901-1910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CHRISTIANITY

제목

평양대부흥운동

2002년 3월 작성

연도

2000년 9월 20일 발행(초판)

박사 학위 논문


종류

학술 서적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펴낸 곳

생명의말씀사

 58, 62~83, 91, 93~94,
99~100, 105~109

표절
부분

46, 60~87, 175~178, 180~188,
190, 212~213, 243~244, 290~291,
302~310, 316~317, 341


원산대부흥과 평양대부흥 부분은 사실상 번역

양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은 독창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번역서에 가까웠다. 중간 중간 짜깁기한 부분을 제외하고 그대로 번역해서 실은 부분만 전체 225쪽 중에 33쪽에 달했다. 특히 논문의 핵심에 해당하는 원산부흥회나 평양부흥회에 관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박 교수의 책과 일치했다. 일부분만 비교해보자.

"Hardie succeeded in bringing the flame of the Revival Movement from Wonsan through Geasung to Seoul in the spring of 1904. In Gaesung, where the spiritual awakening movement rose in the early part of 1903, the movement was getting powerful, and Bible studies and prayer meetings were prevalent. After the revival meeting the blessed people went back to their families and friends. They gave the message of salvation to them. After the meeting, the spiritual awakening movement continued rising in Gaesung, and it infused power into the churches." (양승원 목사, 박사 학위 논문 64쪽 두 번째 단락)

"이렇게 해서 1904년 봄, 하디는 부흥의 불을 원산에서 개성과 서울로 가지고 오는 데 성공했다. 이미 1903년 초에 영적인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던 개성에서는 하디의 부흥회로 영적 각성이 진작되어 말씀 공부와 기도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와 함께 부흥운동 이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 가정과 친구들에게로 돌아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후 개성에서는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그것은 교회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용규 교수, <평양대부흥운동> 67쪽 두 번째 단락)

인용문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위의 글에서 마지막 문장은 박 교수의 책에는 인용문으로 되어 있지만, 양 목사의 논문에는 인용 표시가 없어 마치 자신이 독창적으로 쓴 것처럼 되어 있다. 베끼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은 또 있다. 양 목사의 논문 75페이지 첫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도 박 교수의 책에는 인용문으로 되어 있지만, 양 목사의 논문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박 교수 의견도 그대로 번역

박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부분을 양 목사는 그대로 번역해서 옮기기도 했다.

"Missionaries believed that in this kind of political crisis the way to help this country was only to evangelize, and Korean Christians who had the Holy Spirit should do the work first. So they prayed earnestly every day that God would guide Korean Christians to tell the Gospel to their folks directly. First of all, they educated the Korean church that to believe in jesus necessitates spreading that good news to others." (논문 71쪽 첫 번째 문단)

"이와 같은 정치적인 위기 속에서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복음화뿐이며 이 일은 일차적으로 성령 충만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진행되어야 할 몫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매일 하나님께서 한국의 형제·자매들을 인도하셔서 그들이 바로 자기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국 교회에 분명히 일깨워 주었다." (책 79쪽 세 번째 단락)

박 교수가 기술한 내용을 그대로 도용한 곳은 또 있다. 글에 나오는 숫자까지 일치했다. 다만 박 교수의 책에는 참석자가 70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양 목사의 논문에는 'seventh'(일곱 번째)로 기록되어 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seventy'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Even though only seventh people attended on the average, the eagerness of the people who attended was amazing. Thirty-eight of them walked there from 5miles, 10miles, 20miles, or even 35miles. some came carrying babies on their backs and lugging food on their hands. others came over the hills, mountains, through rivers and along unpaved, rough roads." (논문 72쪽 세 번째 단락)

"비록 매일 평균 70명이 참석해 수적으로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참석자들의 열심은 대단했다. 그 중 38명이 5마일, 10마일, 20마일, 심지어 35마일을 걸어 왔고, 그리고 몇 사람은 아이를 등에 업고 사경회 기간 동안 먹을 양식을 머리에 이고 수많은 고개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포장되지 않은 시골의 거친 길을 따라왔다." (책 82쪽 두 번째 단락)

소제목 순서까지 같아

양 목사의 표절은 뒤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제목이 똑같을뿐더러 소제목의 순서까지 동일하다. 양 목사의 논문 66쪽부터 보면, 'Hardie's Pyongyang Revival Movement'(하디의 평양부흥운동)부터 'Hardie's Jemulpo Revival Movement'(하디의 제물포부흥운동)→'Expansion of the Revival Movement'(확대되는 부흥운동)→'New Year Prayer Meeting of Geasung in 1905'(1905년 개성 신년기도모임)→'The revival Movement in Gangwha and Wonsan in 1905'(1905년 강화와 원산에서 부흥운동) 순이다. 박 교수 책 72쪽부터 보면, '하디의 평양부흥회'를 시작으로 '하디의 제물포부흥회'→'확대되는 영적 각성운동'→'개성의 신년기도회'→'1905년 강화와 원산에서 영적 각성'으로 이어진다.

양 목사의 논문 62쪽부터 76쪽까지 15쪽은 박 교수의 책에 있는 내용을 짜깁기하면서 고스란히 베꼈다. 어떤 부분에서는 박 교수의 책에서 소단락 전체를 거의 통째로 베끼기도 했다. 박 교수의 책에서 1부 2장에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한 부흥운동'이라는 소단락은 40문장 중에서 28문장이 양 목사의 논문에 그대로 실렸다. 하지만 양 목사의 논문에는 박 교수의 책에서 인용했다는 각주도 없었다.

▲ 양 목사는 박 교수의 책에서 소단락 전체를 거의 통째로 베끼기도 했다. 색칠한 부분이 양 목사가 박 교수의 책에서 그대로 도용한 부분이다. (박지호)
▲ 양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중에서 위에 있는 '하디의 평양부흥회'에 해당하는 부분. (박지호)
직접 썼나, 대필인가

양 목사가 논문을 베낀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양 목사 논문의 머리말 두 번째 단락 둘째 줄을 보면 "their assistance with prayer and help has enabled him to complete his dissertation"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번역하면 "그들의 기도와 도움을 통해 그가 그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자신이 직접 썼다면 '나'로 써야 하지만 3인칭인 '그'라고 기록해 누군가 대필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다.

한 역사신학자는 양 목사의 논문을 확인한 다음, 전공과 무관한 비전문가에 의해 번역된 듯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식 영어 표현은 'Pyongyang Revival'인데, 양 목사의 논문에는 'Revival Movement'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 교수가 원문에 있는 내용을 한국말로 번역하면서 자의로 '운동'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그것을 재번역하면서 '운동'이라는 말을 그대로 'movement'로 직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 목사는 대필한 사실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도용 사실, 처음엔 애매하게, 나중엔 분명히 시인

▲ 버지니아한인침례교회 주보 뒷면에는 담임목사 양승원 Ph.D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박지호)
양 목사는 박 교수의 책에 있는 많은 내용을 도용했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양 목사는 "솔직히 (박 교수의 글이) 너무 좋아서 내가 읽으면서 자료에 있는 것은 다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른 글을 써봤자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이 글을 내가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듯 "이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어서 뒷조사까지 하게 됐는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또 "그런 약점(논문 표절)은 다 나올 거다. 나는 지독한 사람한테 걸린 것"이라며 웃기도 했다. 양 목사는 사람들이 출판을 권유했지만, "(논문을) 좀 더 편집하고 (출판)하겠다는 정도로만 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감한 대목에서는 신경질적인 반응도 보였다. "논문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서 "나를 교훈시키겠다는 건가, 아니면 한 명의 목회자를 힘들게 하겠다는 건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대필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만하자. (표절했으면) 어쩌라는 건가. 기사를 써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 같은가. 형제님이(기자가) 불을 붙여주면, 교회만 소용돌이칠 것"이라며 오히려 기자를 탓했다.

미국 대학들, '표절'은 '범죄 행위' 명시

한국행정학회는 표절을 "고의적으로나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난해 말에는 김병준 교육부장관이 교수 시절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장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국민일보>는 "출처를 밝혔다고 해도 너무 많은 단어나 생각을 베끼거나 출처 내용이 논문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경우 표절로 인정된다"고 밝히면서, "미국 저작권협회는 이런 표절을 '완전범죄(Perfect Crime)'라고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표절을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표절한 사실이 밝혀지면 논문을 취소하고 소속 단체에서 퇴출시키는 등 강하게 대처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뉴저지주에 있는 한 대학 부교수가 박사 학위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강단을 떠나야 했다. 또 올해 초에는 샌안토니오에 있는 한 언론사 칼럼리스트가 출처를 밝히지 않고 남의 글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사표를 써야 했다는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대학들은 '표절'(plagiarism)은 지적 도둑질에 해당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홈페이지에는 "Plagiarism is a serious academic offence." (표절은 심각한 학문적 범죄 행위다), "Plagiarism is intellectual theft." (표절은 지적 도둑질이다)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양 목사가 학위를 받은 서든뱁티스트신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course selection planning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Plagiarism is the theft or unattributed use of the intellectual property of another"(표절은 다른 사람의 지적 소유를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도용한 행위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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