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성공한 교회에만 관대할까?
왜 우리는 성공한 교회에만 관대할까?
  • 최태선
  • 승인 2017.12.1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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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진짜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

"명성교회가 미워서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명성교회를 편드는 사람들이다. 명성교회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 명성교회 세습 반대 기도회의 설교를 맡으신 분이 하신 말씀이다.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에는 참 관대하다. 삼성전자 종업원 가운데 아무리 암 환자가 많이 나와도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그들 일가 모두가 수천 억, 수십조 단위의 재산가가 되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그리고 말한다. 삼성에 딸린 식구가 얼만데?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크고,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한데? 등등의 말에서 보듯이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이 된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관대하지 않다. 오히려 신랄하기 이를 데 없다. 힘들어 허덕이는 사람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잔인할 만큼 지독한 판단을 내린다. 안타깝게도 나는 노숙자들에게 관대한 그리스도인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시대 루저들과 신용불량자들이나 재소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기껏 위로의 말이라고 하는 게 더 노력하면 된다든지, 우리 땐 더했다든지, 인생이란 원래 힘든 거라는 말 등등이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 집회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그분들처럼 정의감도 없고, 불의에 저항할 용기도 없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나 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인가? 개인적인 영성에 함몰된 신앙인인가?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남을 탓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보여줄 만한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의해서 바라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사람들이라는 것을.

종로 3가 주위를 돌아보라. 이 추운 날씨에 비닐을 뒤집어 쓴 노인분들이 있다. 늦은 시간에 영등포역을 가보라. 자리를 잡으려고 쏟아져 들어오는 분들이 있다. 쪽방촌엘 가보라.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 추위를 견디는 추운 분들이 있다. 어디 그런 곳들뿐이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예수님 시대의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옳았을까? 그들은 모두 양심이 깨끗한데도 옥에 갇힌 것일까? 열심히 일했는데도 굶주렸던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철저히 그들을 향해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 역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들을 향해 있다는 것이 성서의 일관된 증언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관심은 부자들과 성공한 사람들과 명성교회나 사랑의 교회와 같이 큰 교회에만 머무는 것일까?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너스레를 떨지 말고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렇다. 이제 우리도 진짜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 마침 대림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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